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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깡패의 칼이 되다

등록 2004-11-11 00:00 수정 2020-05-02 04:23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이선근에서 와쓰지까지 ‘민족과 전통’을 들먹이던 문화주의적 국가주의자들의 비극적 종점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근대 동아시아 폭압 정권의 역사를 조감해보면 천황폐하, 각하, 수령 옆에는 꼭 ‘민족의 운명’ ‘우리 국민성’ ‘국가의 역사적 과제’ 등을 들먹이면서 ‘민족·역사·문화’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 고문·살인·착취를 합리화하는 ‘국가적 지성인’이 끼어들어 있다. 야수 정권들을 ‘유구한 민족사’와 결합함으로써 집권자들에게 역사적 권위를 선사해주는 이 ‘국가적 지성인’들의 주된 특징은 무엇인가? 젊은 날에는 나름대로 이상주의적 자질을 가졌다가 자기가 당해야 할 고초가 얼마나 심한지 깨달은 뒤 지배자들에게 ‘항복’하거나, 고대문화 특히 불교·유교 등의 전통사상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듯하면서도 과거 문화를 현재의 정치적 필요성에 뜯어맞추거나, 서구에 대한 내면적인 열등감이 대단하면서도 겉으로는 ‘서구 물질주의에 대한 동양정신의 우월성’과 같은 논리와 ‘동양·민족 정신’의 이름으로 반대자들을 눌러버리는 전술을 구사하는 이들이다.

어용 이데올로기를 살포하라

1930년대 초기에 개화기 역사 정리에 공을 세웠던 사학자 이선근(李瑄根·1905~83)은 일제·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섬겨가면서 종교·교육 조직인 화랑도를 무사 단체처럼 서술하여 ‘전국(全國)과 전군(全軍)에의 화랑정신 보급’에 전력을 다했다. ‘신라통일의 뒷받침인 화랑정신’과 ‘10월 유신의 정신’을 연결시킨 이 박식한 연구자 덕분에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마치 ‘민족사의 연속’으로 보이게 됐다.

3·1운동 세대로서 20대 초반에 미륵반가사유상이나 석굴암에 대해서 심오한 글들을 발표하기도 하고, 최신 서구사상도 폭넓게 섭렵한 철학의 천재 박종홍(朴鍾鴻·1903~76). 전통과 근대를 한 몸에 담은 그는 국민교육헌장의 저자이자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으로서 ‘동양적 사유’와 ‘유일한 참된 것인 민족 얼’을 끌어들였는데 그가 만들어낸 ‘긍정과 건설’의 논리야말로 어용 이데올로기 중 지식인들에게 가장 큰 호소력을 가졌다.

지적 수준으로 봐서 전체주의의 추악한 실체를 분명 파악할 수 있었던 최고급 인문학자로 하여금 무법 통치 집단에게 면죄부를 주게 한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물론 개인적 기회주의나 정권에 무조건 의존하려는 후발 자본주의 지역의 ‘시민성 없는 자산계급’ 구성원의 계급적인 논리를 얼마든지 상기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격자로서 정평이 났고 학계에서의 위치가 공고해 굳이 정권에 빌붙지 않아도 얼마든지 생존이 가능한 수많은 ‘정직한 보수주의자’들의 경우, 신라의 정복전쟁을 ‘통일전쟁’으로 격상해 반북 군사주의에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거나 조선왕조가 승려들에게 강요한 군사적 부역에 ‘호국불교’라는 고상한 이름을 붙여 종교계를 군사주의 논리로 오염시키는 등 국가주의의 입맛에 맞는 ‘전통 날조’의 행각이 과연 단순히 개인적·계급적 이해타산으로만 저질러졌는가? 그 밖에 ‘문화적 민족주의’가 몸에 밴 전통 연구자들의 ‘국가에의 귀환’의 문화적 요인들도, 전통의 냄새를 풍기는 고급 인문학자와 파시즘의 이상한 동거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 한국의 근대적인 ‘국가적 인문학자’의 원형이 되는 일제의 친국가적 학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자.

1980년대 일본 신우익 이데올로기가 된 ‘일본문화론’의 원조 격인 와쓰지 데쓰로(和?哲郞·1889~1960).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인’으로서 불교에 대한 고급 전문지식과 칸트·헤겔·하이데거 등의 서구 철학자에 대한 애정도 겸비하고, 모교인 도쿄제국대학의 교수가 되는 등 학계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늘 겸손한 인격과 문학적인 취향으로 인기를 모았던 와쓰지는 전전(戰前) 일본 인문학의 총체적 대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러나 그의 지적인 변천의 추이를 지켜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처음으로 명성을 안겨준 처녀작들, 즉 (1914)와 (1915)를 보면 1910년대 후반~1920년대 초반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개성의 발견’을 예견하는 듯한 유럽의 개인주의적 반역아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5년 뒤에 나온 그의 (1920)는, 이제 모든 구속을 벗어나려는 니체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천황이 폭압을 쓸 것도 없이 모든 백성의 마음을 표현했던 군신일체(君臣一體)의 무비의 고대 국체’를 찬양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니체적인 표현법을 당장 포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에게 ‘선악의 피안’이 모든 틀을 벗어난 개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개인의 윤리적 집착 없이 집단에서 조화롭게 어울릴 줄 아는, 나와 공동체 사이의 윤리적 장벽이 없는 ‘일본인이라는 총체’는 바로 ‘선악의 피안에 도달한 자연아들의 집단’이었다. 남들과 ‘어울려서’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선악 판단을 하지 않는 일- 예컨대 전쟁터에서 살육을 하는 일- 을, 한때 개인주의자였던 와쓰지가 ‘일본의 특색’이라며 긍정적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그러한 변신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정치적으로 와쓰지를 민족주의쪽으로 끌어들인 동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과 미국의 일본인 이민의 인종주의적 배척과 유럽인들의 아시아에서의 침략·폭력 등으로 인한 ‘유럽에 대한 환멸’이었다. 만약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했다면 폭력의 행위자가 모호한 ‘유럽인’이 아닌 일본 통치자들과 같은 서구의 야만적 지배층인 줄 알았겠지만, 사회과학과 인연이 닿지 않은 ‘순수 인문학도’인 와쓰지의 세계사에 대한 근본적인 카테고리는 단순히 관념적 ‘문화’였다.

니체와 천황 사이에서

유럽 문화에 환멸을 느껴 ‘민족문화’로 회귀한 와쓰지는 유럽과 본질적으로 다른 일본의 표상을 구축하는 일에 착수했다. 유럽인의 폭력성과 대척점을 이루어야 할 것은 ‘일본적인 공동체적 사랑’이고 ‘이익단체에 불과한’ 유럽 사회에 대비돼야 할 것은 ‘일본의 유기적 전체성’이다. ‘서양적 근대’의 민족주의적 ‘초극’의 결실이 된 것은, 와쓰지의 역작으로 꼽히는 (초판: 1935, 개정증보판: 1944)와 (3권, 간행 완료: 1949) 등이었다.

18세기 유럽을 방불케 하는 지리결정론의 입장에 선 와쓰지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유럽의 ‘목장 문화’에서는 권력 관계가 폭력화되어 계급지배와 투쟁이 치열한 반면에, 논밭에서 다 같이 어울려서 일해야 하는 일본의 경우에는 개체와 전체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융화됨으로써 ‘공동체적 총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천부적으로 인권이 부여된 개인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라는 칸트의 이론을 초월하여 개인의 가치는 사회적 관계망에 의해서만 부여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사회과학적 분석에 의해서 승화되지 못한 서구적 폭력에 대한 환멸과 ‘민족 고유’의 대안의 모색은 일본이 자랑할 만한 지성인 와쓰지를 파시스트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박종홍을 비롯한 유신시대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들에게도 ‘서구적인 것’(민주주의·인권 등)들에 대한 어설픈 토착적 대안의 모색, 그리고 사회과학적 지식과 민중적 지향 이념이 결여돼 있었음을 그들의 논저들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식민지배를 형식적으로 벗어났음에도 식민지 모국의 일부 지식인들의 궤적을 한국 지성계 권위자들이 따르게 된 것이야말로 일제 유산의 미청산이 아닌가?

일본의 우경화가 와쓰지를 부활시킨다

일제 패망 이후에도 “천황이 국민의 상징으로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논지를 끈질기게 펴온 와쓰지는 젊은 세대의 비판을 받아 인기를 잃었다. 1980년대 들어서 일본적 특수성을 주장하는 우파 학자들에 의해 와쓰지가 ‘부활’한 것은 우경화된 일본 학계의 징후로 분석되기도 한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비판이야 당연히 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위에서 자칫하면 ‘계급을 초월한 우리 모두의 운명 공동체’의 수구적인 집단주의로 변질되기 쉬운 김지하의 최근의 ‘율려운동’과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인권이라는 기본적 좌표를 망각한 채 특정 ‘문화’를 관념적으로 이상화·절대화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파시즘으로 가는 첩경이다!




참고 문헌
1. 와쓰지의 의 한글 번역: 와쓰지 데쓰로 지음, 박건주 옮김, , 장승, 1993.
2. 한국·일본에서의 ‘사찰 답사기’ 장르의 원조에 해당하는 와쓰지 데쓰로의 의 최신판: 이와나미출판사, 1991.
3. 와쓰지 데쓰로의 전집: 전권 25, 별권 2, 이와나미출판사, 1957~74(별권 발행: 1989~92).
4. 와쓰지 데쓰로의 ‘일본 인종론’에 대한 비판: 오구마 에이지 지음, 조현설 옮김, , 소명출판사, 2003, 386~417쪽.
5. 나오키 사카이 선생의 와쓰지의 ‘문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Naoki Sakai, ,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pp. 7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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