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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왜 낙태에 반대하지 않나

등록 2007-07-27 00:00 수정 2020-05-03 04:25

금지도 허용도 국가의 ‘인적 자원 정책’의 문제였던 역사를 넘어서지 못해

▣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국내에 ‘미국 사랑’을 부르짖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인이 많지만 그들이 ‘성조기 사랑’을 아무리 외쳐도 사회적 의식의 여러 측면에서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중 하나는 낙태에 대한 태도다. 미국의 경우 천주교와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낙태 반대’를 선거 때 정치인의 당락을 좌우할 이슈로 만들었다. 풀뿌리 차원에서도 낙태 시술 병원에 대한 ‘직접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병원 방화, 의사 살해 등의 극단적 행동은 감소 추세에 있다지만 평균적인 미국 낙태 병원은 1년에 적어도 20건 정도 종교 활동가들의 항의 시위를 보게 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명시된 특별한 이유 이외에는 낙태가 법적으로 아직 ‘불법’으로 남아 있음에도, 연구자들이 추정하는 실질적 낙태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15~44살 여성의 연간 낙태율이 1천 명당 평균 29.8명으로 미국(21.1명)이나 영국(17.8명) 등을 능가하는 한국에서는,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이 원론적으로 낙태 반대 의견을 밝혀도 이는 낙태 문제의 당사자인 여성이나 사회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다. 교리상 낙태를 반대할 만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등을 믿는다는 이들이 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16년 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낙태 경험자의 49%가 낙태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26%가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고 응답했다. 그들 중에서 교회, 성당, 사찰에 다니는 이들이 분명히 상당수 있었음에도, 해당 종교의 가르침과 낙태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별로 크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1991년의 다른 조사에 따르면 3회 이상의 낙태 경험률은 종교인 중에서 불교(32.0%) 다음으로 개신교(30.1%)가 많았으며, 종교가 없는 여성들(22.1%)이 오히려 비교적 적었다고 하는데,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다. 세계 50대 대형 교회 중 23곳을 보유한 나라가 ‘낙태의 낙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낙태 경험률, 불교도 32%·개신교도 30%

이야기를 계속해나가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둔다. 필자는 낙태를 좋은 현상으로 보지 않지만, 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아이를 편안히 키울 수 없는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더 무서운 폭력인 듯싶다. 일본의 유명한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 야마가와 기쿠에(山川菊榮·1890~1980)가 “아이를 여유 있게 섬기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최대한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무산계급 여성으로서 아이 갖기를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일하는 여성 중에서 70%를 아이에게 가난과 불안만을 물려줄 수 있는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한국에서는 맹목적 낙태 반대론이 공허하게 들린다. 낙태의 보편화를 두고 최근에 ‘생명 경시’를 운운하는 일부 보수적 천주교 성직자들은 낙태를 반대하기 전에 노동의 외주화, 용역화를 방지하고 비정규직의 빠르고 포괄적인 정규직화를 명기하는 진정한 의미의 ‘비정규직 보호법’을 주장하는 게 옳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 경시’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걸린다면 저들이 대안이 없는 징병제에 반대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봉사를 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병역거부자들을 거의 도와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에게 낙태가 문제되지 않는 이유가 여성 결정권에 대한 존중에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갖든 가지지 않든 많은 이들은 인간을 ‘사회’(즉, 국가)나 시장의 종속변수, 즉 ‘인적 자원’으로 본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더욱더 그렇다. 한때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할” 뜻을 가졌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구설에 오르는 발언을 했을 때 자기 사고의 심층적 차원을 노출시키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쟁에서 생존능력이 없고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국가가 돈을 지출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애인이 아예 태어나지도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근대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적 생명관의 핵심을 보여준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근대적 낙태의 역사를 ‘금지의 시대’와 ‘사실상 허용의 시대’로 나눠볼 수 있는데, 금지도 허용도 여성의 결정권과 별 관계는 없었다. 국가의 ‘인적 자원 정책’의 문제였다.

‘낙태의 길을 튼 모자보건법

약물 복용 등에 따른 낙태는 조선시대에도 민간에서 얼마든지 음성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에도시대의 일본에서는 죄악시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직후부터는 국가가 산파들의 낙태 시술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등 낙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던 유럽 ‘문명국’의 영향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납세자와 군인들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인구 증가를 ‘국력의 요소’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형법에서 사문화된 형태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낙태죄는 ‘타태죄’(墮胎罪)라는 이름으로 1880년에 일본 형법에 처음 도입됐다. 한국의 오늘날 형법(269조 1항)에서 충분한 사유 없이 낙태를 범한 여성을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는데, 이는 1907년에 체계화된 일본의 형법(212조)과 같다. 오늘날 한국에서 이 법이 있다는 사실은 낙태를 요청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잘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의미를 잃었지만 1919년의 일본에서는 타태죄로 처벌된 여성이 약 600명에 달했다.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던 낙태 탄압의 열풍은 피임약과 피임 관련 출판물까지도 다 금지를 당한 1930년대 말 절정에 달했다. 아이를 키울 만한 재력과 여건이 도저히 되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자격이 없는 시술자들에게 불법 낙태를 하다가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는데, 미래 군인들의 머릿수 늘리기에만 급급했던 국가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국익’이 요구하는 경우에 한해 낙태 금지는 곧바로 낙태 강요로 둔갑됐다. 1941년부터 발효된 ‘국민우생법’(國民優生法)에 따르면, 이명박 전 시장의 발상과 일맥상통하게도 자손의 ‘유전적 기형 위험’이 판명되는 경우에는 강제적 단종(斷種·불임수술)이 행해져야 했다. 인구를 무조건 늘려야 하는 전쟁 상황이다 보니 실제로는 1941~47년에 단종을 당한 이들이 538명밖에 안 됐지만 개인의 출산 여부가 ‘국익’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과거에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였던 이들까지도 대거 열성적으로 찬성했다. 근대국가에서는 개인의 몸이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패배로 이어지자 황폐화된 일본에서 늘어나는 인구는 오히려 부담이 됐다. 그러기에 낙태 금지 정책은 거의 당장에 실질적 낙태 허용 정책으로 바뀌고 말았다. 종전의 국민우생법이 1948년에 ‘우생보호법’(오늘날 ‘모체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꾸는 한편, 경제적 난관 등을 이유로 한 낙태를 허용하는 쪽으로 수정됐다. 물론 ‘유전병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우려’는 낙태의 사유 중 하나로 1996년까지 버젓이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고유의 미풍양속 보호’라는 미명으로 1953년에 국회에서 식민지 시대의 낙태죄 조항을 그대로 존속시키기로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가난에 허덕이는 한국 여성들의 음성적 낙태 경험률이 1950년대에도 약 33%로 추산된다. 결국 ‘가정계획’을 통해 ‘잉여인구’를 줄여보려 한 박정희는 일본의 우생보호법과 유사한 ‘합법적 낙태 사유’ 조항을 1973년에 제정 공포된 ‘모자보건법’에 둠으로써 사실상 낙태 허용으로 가는 길을 터주었다. 일본과 달리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는 명시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단속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서 낙태가 사실상 준자율화됐다.

해결 실마리는 고용 안정과 무상 의료

한때 군인들의 머릿수를 늘리려고 낙태를 억제했던 국가가 인구 부담을 줄이려고 낙태를 사실상 허하자 종교 신앙의 유무와 무관하게 자신의 몸에 대한 국가의 관리권을 인정해온 ‘국민’은 낙태를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의 차이란 종교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인식이 우위에 선 것이다. 물론 생계 걱정으로 낙태를 결정한 여성들에게 ‘생명의 존엄’을 들어 설교할 일도 설법할 일도 없다. 그런데 낙태란 비록 필요악으로 인정될 수 있어도 ‘선’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고 보육 예산이 대폭 늘고 사교육비나 학비의 부담이 무상교육 정책으로 줄어든다면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죽는 비극의 태아들 수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낙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고용 안정과 무상 의료, 교육 정책 이외에 없다고 본다.

참고 문헌:

1. 〈Colonizing Sex: Sexology and Social Control in Modern Japan〉 Sabine Fruhstuck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pp.116~185
2. 이임하, 서해문집, 2004, 192~204쪽
3. 〈Buddhism and Abortion〉 Damien Keowm (ed.),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8, pp.67~199
4. “Abortion before Birth Control: The Interest Group Politics Behind Postwar Japanese Reproduction Policy” -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 24, No. 1, Tiana Norgren, 1998, pp.5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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