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검사가 되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혹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어떻게 그런 황당한 질문을 하느냐고 답했을 것이다. 범죄자를 수사하고 기소해 처벌받도록 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는데 법을 어길 생각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언젠가 한번 해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은밀히 마음속에 감춰둔 범행 계획(?)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히로뽕을 맛보는 것이었다.
호기심 자극하는 금지의 약
검사가 된 것을 이용해 마약 거래에 손대고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마약의 효과를 체험해보겠다는 위험한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순전히 호기심에서, 마약을 압수할 기회가 생기면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우리 검찰 역사에서 초기 마약 수사를 담당한 수사관들 중에는 현재의 보건복지부인 보건사회부 출신 공무원이 많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자부하던 분이 라는 책을 썼는데, 히로뽕에 대해 “중독이라는 부작용만 없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약”이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초임 시절 그 책을 읽었을 때 히로뽕이 그렇게 대단한 약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 더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악당이 들고 다니던 007가방이나 차 트렁크에서 단단히 포장된 흰 가루가 나오면 형사가 찍어먹어 보지 않던가. 나도 한 번쯤 맛을 보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지된 약은, 타협을 모르는 초임 검사의 준법의식을 흔들어놓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이었다.
평범한 사람들만 마약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등의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자 당대 유럽의 대표적 지성인이던 올더스 헉슬리는 60살인 1954년에 (The Doors of Perception)이라는 책을 쓴다. 스스로 메스칼린(mescaline)이라는 일종의 마약을 투약하고 체험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메스칼린은 페요테라는 선인장에서 추출한 물질인데 수천 년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종교의식에 사용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식인이 나이 예순에 왜 ‘마약 체험기’를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헉슬리는 10대 시절 병으로 2~3년 동안 거의 완전한 실명 상태로 지내다가 회복한 일이 있는데 그 경험 때문에 외부 세계를 지각하는 데 큰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책 내용도 환각제로 인한 감각의 놀라운 변화에 관한 부분이 많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메스칼린으로 인해서 경험하게 된 또 다른 세계는 시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변화한 것은 객관적인 실제였다. 나의 주관적인 세계에 일어난 일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마약의 효과 덕분에, 유명한 선승이 제자로부터 “부처님의 법의 본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듣고 “정원 안쪽에 있는 산울타리다”라고 대답했던 의미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처음 그 문답을 읽었을 때에는 모호한 비유로만 여겼는데 메스칼린 덕분에 대낮의 광명처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처님의 본질은 정원 안쪽에 있는 산울타리지”라고 탄성을 지르는 헉슬리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의학계 총아도 자기 중독 치료 못해
그러면 정말, 마약이 그토록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고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대단한 의지력과 머리를 가진 사람이 마약 때문에 파멸의 길을 걷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로렌스 골드버그의 팩션 는 외과 수술이 눈부신 발전을 시작하던 19세기 말, 의술의 첨단에 서 있던 천재 의사가 마약중독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윌리엄 홀스테드는 수술복이나 수술 장갑을 착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담배를 피우며 절개를 하던 당시 의료계에 혁신을 일으킨 의사다. 외과술에 병리학 연구 성과의 도입을 시도하던 그는 유럽에 가서 겸자를 이용한 지혈법을 배워온다. 혁신적인 유방근치술을 완성해 수백 명에 달하는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수술 마취제로 사용하려고 코카인의 약효를 실험하다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코카인 주사를 놓았던 것이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는 약물중독자가 된다.
점점 더 강한 약을 찾는 홀스테드를 유인해 낙태 수술을 하게 하려는 악덕 의사 터크와 중독 사실을 숨겨주며 그를 보호하려는 윌리엄 오슬러 교수(역시 실존 인물로 영국 옥스퍼드 의대 왕립 교수직을 지낸 당대 최고의 의사다) 사이에서 그는 점점 헤어날 수 없는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다. 오슬러 교수마저 홀스테드를 구해내지 못한 이유는 홀스테드 자신에게 있다. 의학계의 총아도 자신의 중독을 치료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약은, 그 효과와 상관없이 중독성이라는 강력한 부작용이 있다. 호기심에 약물을 투여하는 사람들은 대개 의지력으로 중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독은 의지력의 크기와 관계가 없다. 마약이나 알코올 혹은 그 밖의 중독성 물질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천재도 많았다. 위대한 정신의 힘도 중독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마약에 대해 책까지 썼던, 앞서 말한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마약 수사의 대부를 자처하던 검찰 수사관은 그 뒤 압수된 히로뽕을 빼돌려서 팔다가 교도소 신세를 졌다(그는 나중에 교도소 체험을 소재로 또 다른 책을 썼다). 환각제로 인한 놀라운 감각의 변화를 찬양했던 올더스 헉슬리가 죽음을 앞두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준 것은 “LSD(환각제) 100mg을 근육주사로 놓아주시오”라고 적힌 종이쪽지였다. 메스칼린 체험을 쓴 다음해에 그는 LSD를 투약하기 시작했고 끝내 중독자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지성도 중독을 이기지는 못했다.
현실의 마약, 결코 매력적이지 않아
나의 경우는? 검사 생활을 하며 한 번도 마약을 구경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마약 수사는 약간 특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 사건 수사를 하는 검사는 접하기 어렵다. 나는 초임 검사 시절 약간의 행운(?)으로 마약사범 수십 명을 검거하고 히로뽕과 주사기를 압수한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결국 맛을 보지는 못했다.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독자들이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던 히로뽕은 너무나 더러웠다. 마약을 싼 종이는 주사를 놓다가 묻었는지 군데군데 핏자국이 있기 일쑤였고, 1회분 히로뽕이 들어 있는 주사기는 몇 번을 썼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현실에서 보는 마약은, 헉슬리의 찬사와 달리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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