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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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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자유로운 도시 마을을 만들다

신협·생협 성공 거쳐 공동체 주상복합건물 건립 나선 성남 주민교회
집·먹거리·교육을 영리 추구 중심 시장경제에서 독립시키려는 실험
등록 2012-05-05 16:59 수정 2020-05-03 04:26
성남 주민교회는 주민들의 아이를 돌봐주는 데서 시작해 신협과 생협의 성공을 거쳐 주거공동체 '태평동락 커뮤니티'건설까지 나섰다. 사진은 태평동락 커뮤니티 소개 책자.

성남 주민교회는 주민들의 아이를 돌봐주는 데서 시작해 신협과 생협의 성공을 거쳐 주거공동체 '태평동락 커뮤니티'건설까지 나섰다. 사진은 태평동락 커뮤니티 소개 책자.

집 없는 당신, 떠나라. 청계천 개발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1960년대 말 서울시에서 대규모 주택개량사업이 벌어지면서였다. 그런데 떠난 사람들도 어딘가 살아야 했다. 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곳 중 하나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다. 그곳에 다시, ‘주민공동체가 진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집’이 지어지고 있다. 그것도 그 떠난 사람들의 벗이 되었던 지역 교회가 나서서 추진하는 일이라 눈길이 간다.

신협과 생협 주축 ‘협동사회경제’ 지향

도심 재개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 서울시의 대규모 불량주택 개발사업의 결과로, 수십만 명의 철거민이 생겨나게 된다. 당시 서울시는 다른 지역에 정착지를 조성해 이 철거민들을 이주시킨다. 이에 따라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의 일부가 ‘광주대단지’로 지정돼 서울 철거민이 대규모 이주하게 된다. 1969년 9월부터 이주가 시작됐고, 1971년 8월 단지 거주 인구는 15만여 명까지 늘어난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성남이다.

그런데 이주민들이 막상 가보니 생활 기반 시설이 전혀 조성돼 있지 않은 황무지였다. 경제 기반도 없어서, 1971년 6월 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 대상자의 5%만이 단지 내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입주권은 주어졌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입주권을 팔고 다시 세를 얻어 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집값이 올라 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일도 생겼다. 이 와중에 입주권 매매가 금지되고, 외부 투기꾼이 폭리를 취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토지대금과 세금을 내라고 독촉해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때 터져나온 게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1971년 8월10일 주민 6만여 명이 대규모 궐기대회를 연다. 살아갈 일이 막막한 상황에 몰린 주민들 중 일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인근 관공서를 점거하고 방화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주민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기독교 수도권 특수지역선교위원회에서 파견된 이해학 목사가 이 교회를 이끌었다. 당시까지도 여전히 성남 지역의 경제 기반은 취약했다. 많은 주민들이 서울 청계천 주변으로 출퇴근하며 살아갔다. 그 주민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주민교회의 지역활동이 시작됐다. 어린이집과 공부방을 만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주민 중심의 경제를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돕겠다는 방향으로 주민교회의 고민은 발전한다. 신용협동조합(신협)과 생활협동조합(생협)을 주축으로 한, ‘협동사회경제’를 만드는 데로 이어졌다. 서민금융을 위해 신협을 만든 뒤,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소비자생협까지 만들었다. ‘금융’과 ‘소비’라는 중요한 두 가지 생활경제 이슈를 주민 스스로 협동하며 해결하도록 만든 구조다. 돈이 필요할 때 사채 대신 신협 돈을 빌려다 쓰고, 어려운 사람도 안전한 먹거리를 함께 구매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주민신협은 조합원 2만5천여 명, 자산 127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주민생협은 조합원 9천여 가구, 이용액 50억원 규모로 컸다.

최근 주민교회가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지금 있는 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태평동락 커뮤니티’라는 공동체형 주상복합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태평동락은 지하 2층, 지상 12층의 건물이다. 외관은 여느 주상복합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격은 아주 다르다. 도시 안의 작은 마을을 지향한다.

성남을 보듬을 ‘태평동락 커뮤니티’의 꿈

9∼12층에는 정주형 주택 12가구가 들어간다. 이 공간에는 주민교회 교인들 중심으로 입주자를 정할 예정이다. 4∼8층에는 원룸형 주택 66가구가 들어간다. 1∼3층은 근린생활시설인데, 지역의 생협, 사회적 기업, 도서관 등이 입주하도록 할 계획이다. 주민교회 건물을 허물어 짓는 곳이지만, 교회는 지하로 들어간다. 그나마도 예배당을 극장식으로 만들어놓고, 예배가 없는 평일에는 지역 주민 동아리 등의 공연이나 행사가 이뤄지도록 해서 성남 지역공동체의 문화 허브로 기능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번듯한 외관을 갖는 것보다는 주민들과 더 많이 만나는 게 교회의 사명에 맞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다.

66개의 원룸형 주택도 가능하면 대학생이나 취약계층 등이 입주하도록 하겠다는 게 현재의 계획이다. 그래서 이 복합주거시설이 그 자체로 좋은 마을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성남 지역공동체 안에서 충분히 기여하며 의미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은 류현수 대안건축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서울 마포 성미산마을의 공동체형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를 구상하고 지은 사람이다. 소행주의 외관은 아홉 가구가 거주하는 빌라다. 그런데 다른 빌라와는 다르다. 공동체형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주택은 우선 참여형으로 지어진다. 다 지은 똑같은 집을 분양받아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집에 입주할 사람이 구조를 각각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 공간이 중요하다. 또한 1평씩 내놓아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놓는데, 여기는 어린이들이 놀거나 모임을 하는 등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열어둔다. 이 모든 것은 입주자 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된다.

소행주에는 신발장이 각 집에 있는 게 아니라 각 층 엘리베이터 홀 앞에 있거나 아예 1층 로비에 놓인다. 각 가구 사이의 왕래는 신발을 신지 않고 가능하도록 만들어 공동체성을 강화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집도 있다. ‘커뮤니티가 있는 마을에서 살고 싶은 욕구’를 겨냥한 집이다. 오는 11월 준공 예정인 태평동락 커뮤니티도 비슷한 정신으로 지어지고 있다.

물론 이 건물을 모두 원룸으로 만들어 일반 분양하는 게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다. 땅 주인인 교회는 그 돈으로 더 나은 예배당을 지을 수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하지만 철거민들을 돕는 데 발벗고 나섰던 주민교회는 다시 한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과거 생협과 신협 설립을 통해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 기반 구축을 돕던 이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스스로 마을공동체를 짓고 실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경제의 주인을 바꾸려는 ‘실험’

경제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당연히 내가 사는 집과, 먹거리를 사는 곳과, 아이를 교육하는 곳 같은 생활경제 영역에서 시작된다. 그 모두가 대규모 부동산 재개발과 대형마트에 속해 있는 한, 아무리 대통령과 재벌의 얼굴이 바뀌어도, 경제의 주인은 바뀌지 않는다.

주민교회는 주민들의 아이를 돌봐주는 데서 시작해서 신협과 생협의 성공을 거쳐 주거공동체에까지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모두 주민의 생활경제 영역을 기존 영리 추구 중심의 시장경제에서 독립시키려는 노력이다. 성남의 작은 실험이 결코 작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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