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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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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소비자 낳는 이마트·홈플러스 사회주의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 대형마트 영업일수 등 규제에 사회주의 운운
생산자 생태계 파괴, 과잉생산·대량소비 조장하는 대형마트는 뭔가
등록 2012-03-08 16:54 수정 2020-05-03 04:26

어릴 적 두부가 필요하면 걸어서 5분 거리의 동네 구멍가게를 찾았다. 구멍가게 입구에는 그날 만든 두부가 큰 플라스틱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 두부는 걸어서 5분 더 가면 있는 두부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우리 동네 사람들만 먹는 두부다. 인심 좋게 생긴 두부공장 아저씨는 매일 새벽 두부를 가게로 배달했다.
두부 심부름을 가면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사각형으로 두부 한 모 크기를 정확히 잘라 봉지에 담아주셨다. 깜빡 건넬 동전을 잊고 나온 날엔 주머니를 뒤지며 난처한 표정만 지으면 바로 ‘내일 가져와’ 하는 반응이 나왔다. 집에 가져오면 바로 두부찌개나 두부부침 반찬으로 만들어서 아침밥을 먹었다.

한국경제는 속이 빨간 수박경제?

우리는 정말, 대형마트가 이끄는 과잉생산·과잉소비 사회로 계속 갈 것인가. 근본적 질문을 던질 때다.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에서 설날 선물세트를 할인 판매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우리는 정말, 대형마트가 이끄는 과잉생산·과잉소비 사회로 계속 갈 것인가. 근본적 질문을 던질 때다. 지난 1월 20일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에서 설날 선물세트를 할인 판매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지금은 두부가 필요하면 자동차 열쇠를 찾는다. 운 좋은 날이면 20분을 달려 대형마트에 도착한 뒤 다시 10분 동안 주차를 한다. 그러고는 커다란 카트를 밀고 온갖 물건이 쌓인 매장을 휘휘 둘러보며 두부의 위치를 찾는다.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두부는 예쁜 색깔의 플라스틱 용기에 한 모씩 잘라져 담겨 있다. 전 국민이 먹는 똑같은 두부다. 언제 이곳에 놓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까지 먹으면 안전하다는 유통기한 표시를 확인한 뒤 두부를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가져간다.

현금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신용카드로 그으면 되니까. 물론 청구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만 안전하다. 그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치 두부를 모두 냉장고에 넣어놓고 조금씩 꺼내어 먹는다. 깔끔하게 다 먹을 때도 있지만, 어쩌다 집을 계속 비우게 되는 주에는 남겨버리기 일쑤다.

나는 지금도 어릴 적 두부 심부름을 하던 그 동네에 산다. 두부공장 근처에 높게 지어진 아파트에 산다.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진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몇 주 전, 맷집 좋게 버티던 두부공장도 마침내 문을 닫았다.

문득 어릴 적 두부 심부름을 떠올린 이유는, 엉뚱하게도 홈플러스 이승한 회장의 며칠 전 발언 때문이다. 그는 “한국 경제는 수박경제”라는 말을 기자간담회에서 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 경제는 겉은 파랗지만 속은 빨갛다.” 겉은 시장경제인데 속은 사회주의적이라는 이야기를 수박으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도 없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이 비판한 ‘수박 같은’ 정책은 대형마트 영업일수·영업시간 규제와 재래시장 근처에 출점을 제한하는 제도다. 이런 정책이 골목상권이나 소비자를 위한 것도 아니라고 비판하는 거친 표현이 쏟아져나왔다.

그래서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내 삶에서 대형마트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게 없던 시절의 삶은 어떻게 달랐을까? 그 삶은 ‘사회주의적인 것’이었거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이었던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대형마트가 생긴 것은 1993년이었다. 이마트는 그해 첫 점포를 서울 도봉구 창동에 냈다. 그 대형마트는 2000년 전국 171개로 늘었고, 2010년 437개까지 급증했다. 매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2000년 총 10조6천억원이던 대형마트 총매출은, 2011년 36조6천억원까지 늘어났다. 1위인 이마트의 2010년 매출은 12조6천억원, 2위 홈플러스는 10조7300억원이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생산자 생태계

소매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당연히 크게 늘어난다. 과거 구멍가게나 슈퍼마켓은 개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형마트가 들어오자 기업이 본격적으로 소매업을 하게 됐다. 1996년 소매업에서 기업이 일으킨 매출은 전체 소매업 매출의 29%였다. 그런데 2005년 이 수치는 42%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커지니 사회로부터 여러 비판이 나오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우선 수수료율 문제가 있다. 대형 소매업체 판매수수료율이 너무 높아서 생산자들로부터 남는 게 없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판매수수료율은 지난해 정부 조사에서 25~40%인 것으로 나타났다. 1만원짜리 물건 하나를 팔 때 일단 대형마트에서 4천원을 뗀다면 생산자가 남기고 팔기는 사실상 어렵다. 농산물의 경우 생산자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비판이 있다. 대형마트는 엄청나게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공급해줘야 하기에 중소 농민들은 감당할 수 없고, 소수 기업형 부농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생산자 생태계가 조성되고 만다. 동네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이 사라지는 현상도 비판의 대상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대형마트가 과잉소비를 부추기고 탄소 배출을 늘려 환경파괴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대형 포장으로 필요 없는 물건을 더 많이 사게 하고, 초대형 매장을 운영해 제품 운송과 소비자 이동 과정에서 엄청난 교통정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동이 많아지면 탄소 배출은 늘어난다.

대형마트도 할 말은 있다. 소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값싼 물건을 제공한다는 명분은, 과잉소비를 부추긴다는 현실 앞에서 힘을 잃는다. 필요 없는 물건을 너무 많이 사들이게 하는 것은 편익을 제공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한 어린 시절과 비교해보면, 소비자는 더 넓은 냉장고를 마련해야 하고 자동차를 더 많이 굴려야 한다. 이런 비용까지 고려해 정말 전체 비용이 감소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게다가 ‘가격 할인’이라는 편익을 실제 소비자가 제공받는다 하더라도, 그 편익이 앞서의 생태계와 상권 파괴라는 사회적 편익 감소를 상쇄할 만큼 큰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일자리 문제도 숫자를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예를 들어 2001∼2006년 기업형 소매업체들의 고용을 살펴봤더니 오히려 2% 줄어들었다. 대형마트가 매출을 가파르게 늘리고 있는 동안이다. 여기다 경쟁자들의 일자리는 준다. 사회 전체적인 일자리 감소는 논리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대형마트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높은 효율성에 있다. 적은 투입으로 많은 제품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전체로 보면, 한국인이 소비하는 제품의 양은 한정돼 있게 마련이다. 적은 인력과 자원으로 많은 제품을 제공하는 대형 업체가 등장하면 경제 전체적으로는 고용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다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정말, 대형마트가 이끄는 과잉생산·과잉소비 사회로 계속 갈 것인가?

모든 사람이 이마트와 홈플러스를 이용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제품을 소비하게 된다.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주말이면 자동차를 몰고 나와 카트를 가득 채우고, 신용카드를 꺼내 휘두른다. 그리고 냉장고와 벽장에는 미처 사용하지 못한 제품들이 남아 주기적으로 버려진다. 어떻게 보면 정부 규제가 사회주의적인 게 아니라, 획일적 소비자를 만드는 대형마트가 더 사회주의적이다. 우리는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사회주의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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