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의 나라다. 당장은 가진 게 없고 힘들어도 열심히 살면 언젠가 도약할 수 있다는 꿈을 지닐 수 있다는 게 미국 사회의 힘이었다. 그 말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현존하는 시장만능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빈부 격차가 나고 경쟁이 심하지만 계층 상승의 기회를 주는 체제’로 합리화하는 핵심 논리가 됐다.
빚으로 사들인 ‘아메리칸드림’
그런데 그 신화가 이제 깨지고 있다.
당신이 1년 뒤 졸업을 앞둔 미국의 대학생이라고 해보자. 애플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며 주가가 치솟는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사후에도 영웅 대접을 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도 페이스북도 그루폰도 모두 엄청난 액수의 이익을 내거나 거액의 주가를 인정받으며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뉴스 속 세상은 기업의 영웅들로 넘쳐난다. 이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식시장 상장과 함께 주식 및 스톡옵션을 받아 순식간에 돈방석에 올라앉고, 이들을 분석하는 증권가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의 연봉은 기본이 수백만달러다. 이들은 돈을 흥청망청 써대며, 회사가 망하자 정부의 구제금융까지 받아 보너스를 챙겼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당신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 그리고 당신은 학자금 대출의 빚더미에 앉아 있다.
경기 탓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2000년대의 첫 10년 동안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생산은 19% 늘었다. 그 후반부의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전반적으로 보면 성장은 이뤄졌던 것이다. 기업 이익도 같은 기간 85% 늘어났다. 그러나 민간 부문 일자리는 200만 개가 줄었다.
2008년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 이전에도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평균적 미국인이 살아갈 여력이 있었다. 빚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빚을 졌고, 집을 사려고 또 한 번 빚을 냈다. 이 빚을 통해 그들은 ‘아메리칸드림’을 사들였던 것이다.
금융위기 뒤 이 꿈은 다시 빚더미가 됐다. 담보로 잡혀 있던 집값이 폭락해 벌어진 일이다. 좋은 일자리 수는 늘지 않는다. 게다가 불평등과 빈곤까지 겹치고 있다.
미국이 100명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해보자. 그 100명을 소득이 많은 사람부터 한 줄로 세워보자.
맨 앞에 선 한 명을 주목하자.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소득은 1979년 이후 30년 만에 3.7배로 늘었다. 이 사람이 벌어들이는 연간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30년 동안 10분의 1에서 4분의 1로 커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5년 동안 미국에서 생겨난 모든 소득 가운데 3분의 2가 이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 소득뿐 아니라 자산도 집중돼 있다. 이 한 사람은 100명이 보유한 자산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의 1%다.
이번에는 100명이 선 줄에서, 한가운데인 50번째에 있는 사람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이 사람이 속한 가정이 2010년 연간 벌어들인 돈은 4만9445달러인데, 10년 만에 5만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상시근로자로 취업한 남성 중 중위 소득자의 소득은 1978년 수준에도 못 미친다. 30년, 또는 10년 동안 이 사람의 경제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해졌다.
지금보다 높았던 1966년의 최저임금
1%는 점점 더 벌고, 중산층은 내려앉아 빈곤층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메리칸드림의 신화는 깨져간다. 2011년 미국 비영리단체 PRRI의 조사에 따르면, ‘열심히 일하면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인의 44%만 ‘그렇다’고 대답했고 48%는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미국이 그런 사회였던 적이 아예 없다’는 응답은 6%였다.
아메리칸드림의 신화는 평등이 아니라 격차에서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성공한 사람에게 많이 몰아주면 꿈꾸고 일할 동기가 생긴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 미국 사회를 보면, 지나친 격차는 오히려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꿈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게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아메리칸드림이 전성기이던 시기는,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해 ‘뉴딜정책’을 펼친 1930년대 이후다. 뉴딜정책은 보통 정부가 댐 건설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고용을 인위적으로 창출해 경제를 되살리는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뉴딜정책의 핵심은 복지 강화와 노동자 보호와 증세였다. 부자 세금을 크게 올리고, 기업 법인세를 올리고, 이 재원으로 사회복지를 대거 도입한다.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고, 저소득층에게 식비 지원을 하고, 의료보험을 도입하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등의 정책이 이때 대부분 자리를 잡는다. 경제 분야에서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금융 개혁과 중앙은행의 은행 건전성 감독 기능이 이때 시작되고 강화됐다. 1930년대 미국인들에게 뉴딜정책은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물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거셌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설에서 ‘미국 역사상 모든 기득권 세력이 지금처럼 한 후보에 대항해 뭉친 일이 없다’고 외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루스벨트는 삼선하며 12년 동안 일관되게 뉴딜정책을 밀어붙였고, 후임자들도 그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일반 가정의 소득은 25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난다. 모든 계층의 소득은 비교적 평준화된 모양을 유지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현재 가치로 따지면 1966년의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높았고, 1970년대 초 30대 미국 남자의 수입은 2007년보다 14%나 높았다.
아메리칸드림이 활짝 꽃핀 것은 바로 이때였다. 소득 격차가 어느 때보다 낮았고 두꺼운 중산층이 미국을 이끌던 시기다. 격차를 줄이는 ‘평탄화 작업’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사람들은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시장만능주의 정책을 들고 나와 집권한 1980년 이전까지 이런 흐름은 이어진다. 그러나 그 뒤 다시 불평등이 커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된다.
희망이 없으면 성장도 멈춘다
코리안드림은 남아 있을까?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청년들은 하늘의 별 따기인 공기업이나 대기업 취업 이외의 비전을 갖기 어렵다. 중소 벤처기업을 창업해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혹시 실패라도 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지경이 된다. 30~40대는 자녀 사교육비와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대느라 허리가 휜다.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속속 은퇴하고 있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창업에 나서보지만 몇 년 만에 평생 모은 돈만 날리기 일쑤다.
‘열심히 일하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했던 것 같은 평탄화 작업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코리안드림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성장하기 위해서도, 행복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트위터 @wonjae_lee
*‘이원재의 99%의 경제’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과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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