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도도한 동네였다.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두세 개의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입을 열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듯한 태도로 숫자를 섞어 무언가를 주장한다.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적어도 내가 학생 때 인턴 생활을 하며 곁눈질한 미국의 월가는 그랬다.
페이스북 열풍은 거품?
그래서 페이스북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보인 행동이 눈에 띄었다. 뉴욕에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투자설명회에 저커버그는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월가 사람들은 ‘후디게이트’(hoodiegate)라고까지 부르며 미성숙한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그 도도한 월가 한복판에서 자기 스타일을 내세우며 자존심을 세운 저커버그가 내심 부러웠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페이스북은 그렇게 스타일을 지키면서도 화려하게 뉴욕에 입성하는 듯했다. 5월18일 나스닥 상장 때 공모 가격은 주당 38달러였다. 기업 가치는 1040억달러(약 120조원)에 평가된 셈이다. 나스닥에 입성하는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의 기업 가치다. 나스닥에서 새로 조달한 자금만도 총 184억달러(20조원)였다. 공모에 성공한 뒤 첫 거래 가격은 42달러까지 올라갔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해 보였다.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아이콘이다. 인터넷 기업의 영광을 다시 불러온다며 ‘닷컴 2.0 시대’를 이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인터넷 기업들이 처음 등장해 세계를 주름잡으며 ‘신경제’ 열풍을 몰고 왔던 1990년대 말이 ‘닷컴 1.0 시대’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9억 명이나 된다. 성장세도 눈부셨다. 지난해 페이스북의 매출은 전년보다 88%나 늘어난 37억1100만달러였다. 이익도 1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고, 특히 영업이익률은 47%나 된다. 이익률 10%를 넘기기도 어려운 전통적 제조업체들과 대조적이다.
이러니 금융권 애널리스트들의 관심을 끌 만도 하다. 기업공개(IPO)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수수료로만 1억7500만 달러(약 2천억원)를 벌었다. 거대 고객이 됐으니, 후드티를 입고 당당하게 등장할 만도 했다.
그런데 그 스타일은 바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정작 나스닥에서 거래되면서부터였다. 상장 뒤 사흘 만에 주가는 31달러로 내려앉았다. 사라진 기업 가치는 24조원 규모가 넘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주식에 거품이 끼었던 것처럼 페이스북의 잠재력도 거품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 인터넷 주가 거품이 꺼졌던 것에 빗대, 페이스북은 ‘닷컴 2.0’이 아니라 ‘버블 2.0’을 이끌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거품 여부는 이익 대비 시가총액이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주가이익비율(PER)로 따져볼 수 있다. 페이스북의 PER는 공모가 기준으로 74배에 달해 애플 13.7배, 구글의 18.6배는 물론 나스닥 평균의 20.8배를 크게 넘어섰다. 이 수치만 봐도 거품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상장 직전 제너럴모터스(GM)가 광고 효과가 없다며 페이스북에 대한 광고 집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악재였다. 사실 광고는 페이스북의 거의 유일한 수익모델이다.
망가진 스타일은 스캔들로까지 이어졌다. 미국 금융감독 당국이 페이스북 상장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주간사 모건스탠리에 대한 조사에 나서고, 투자자들이 마크 저커버그를 포함한 페이스북 이사진,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주간사들을 고소한 것이다.
상장기업, 이익과 주가로만 평가받아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렇다. 모건스탠리는 페이스북 기업공개를 불과 며칠 앞두고 페이스북의 예상 실적을 다시 평가했다. 여기서 페이스북의 2분기 수입이 애초 예상보다 줄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왔다. 그런데 이 정보를 일부 ‘큰손’들한테만 제공했고, 수정된 전망치를 건네받은 투자자 일부는 상장 첫날 페이스북 주식을 대거 처분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부정행위다.
페이스북의 사업모델은 매우 새롭다. 꼼꼼히 따져봐야 저커버그의 자존심과 월가의 거품 논란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사용자들이 친구관계와 일상의 기억을 나누는 인터넷 공간이다. 페이스북이라는 기업은 그 공간을 임대해주는 사업을 하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앨범이나 전화와 비슷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앨범처럼 자신의 기억을 정리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면서, 전화처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사용자에게서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그 관계와 기억을 광고주들에게 파는 모델이다. 이런 면에서는 ‘독자에 대한 접근권’을 광고라는 형태로 파는 신문이나 방송과 비슷하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친구들이 함께 앨범을 만들고 사용하도록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 뒤, 그 앨범의 빈 지면을 팔아 광고를 싣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사업이다. 친구관계를 판매하는 셈이다.
사업모델 자체는 가능하다. SNS는 이미 새로운 미디어로 떠올랐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찾아서 보거나 해당 사이트를 찾아가 정보를 소비하던 독자들이, 점점 더 소셜네트워크에서 ‘친구’들이 보낸 뉴스 기사를 읽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매체나 검색엔진보다는 ‘친구’의 추천을 더 믿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변화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면 당연히 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도 소셜네트워크가 더 중요해지자 관련 업계 1위인 페이스북 비즈니스가 분명 확장되리라는 초기 반응을 보였다. 주간사가 이런 점을 부풀려 높은 공모가를 설정했지만 투자자들도 화답했다.
문제는 이런 사업모델이 주식시장을 통해 확대 강화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사명이 잘 유지될 수 있을지다. 페이스북의 사명은 멀리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저커버그 역시 세상을 더 개방하고 연결한다는 사회적 미션을 수행하는 게 이 회사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은 애초에 회사가 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비영리기관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순간, 기업은 이익과 주가로만 평가받는 대상이 된다. 모건스탠리의 요리 재료가 되었고, 투자자들의 탐욕이 교차하는 사냥터에서 사냥감이 되어 뛰어다녀야 한다.
돈, 친구관계의 가장 큰 적
주식회사 중심의 자본주의는 다양한 가치를 가진 기업들을 투자자와 주식시장의 ‘스타일’에 맞추며 정형화한다. 이윤 극대화 이외의 사명과 가치를 지닌 기업도 몸에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적응해간다. 자금을 끌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사명과 가치에 투자하는, 다른 금융의 필요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페이스북 스캔들’은 해피엔딩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친구관계에서 가장 큰 적은 역시 돈 문제다.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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