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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누구의 것인가

삼성가 상속 소송, 주주만이 기업 주인이라는 영미식 투자자 중심 구조의 폐해

독일식·실리콘밸리형·호혜 모델 등 노동자·지식자산 중시 지배구조 고민해야
등록 2012-06-27 14:57 수정 2020-05-03 04:26
삼성가 소송은 ‘주식을 확보하면 당연히 기업을 지배하게 된다’는 주주자본주의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24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삼성가 소송은 ‘주식을 확보하면 당연히 기업을 지배하게 된다’는 주주자본주의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24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공항으로 귀국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사치&사치라는 글로벌 광고회사가 있다. 1970년 모리스 사치와 찰스 사치 형제가 세운 회사다. 영국 보수당의 광고대행을 맡아 ‘노동은 일하지 않는다’(Labour isn‘t working)이라는 카피를 내놓아 유명해지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데 1994년에 회장을 맡고 있던 모리스 사치와 투자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다. 사치가 자신을 포함한 임직원들의 연봉과 복리후생을 높이는 안을 내놓았다. 투자자들은 방만한 비용 지출이라고 거세게 반발해 주주총회에서 설립자를 쫓아낸다. 모리스 사치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게 된다. 몇몇 핵심 임원들도 같이 회사를 떠난다.

그들은 왜 ‘지분’에 집착할까?

회사를 떠난 이들은 바로 경쟁 광고회사인 ‘M&C 사치’를 설립한다. 그리고 원래 사치&사치가 갖고 있던 고객사의 상당수를 가져온다. 고객들은 사치 형제가 낸 광고 아이디어를 사고 싶어했던 것이다. 어느 기업이 만들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치&사치가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다. 당시 돈으로 4천만 영국 파운드의 손실을 입고, 3년 만에 광고업에서 손을 뗀다. 반면 모리스 사치가 새로 세운 회사는 승승장구한다.

모리스 사치는 자신이 세운 회사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자 미련 없이 떠났다. 그 흔한 지분 다툼도 벌이지 않았다. 자신 스스로가 회사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참 진행 중인 삼성가 상속 소송 소식을 접하곤, 나는 사치의 사례를 떠올렸다.

이번 소송전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명재산 상속을 둘러싸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사이의 싸움이다. 아주 복잡해 보이지만 쟁점은 의외로 단순하게 정리된다. ’그 주식이 누구의 것이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지분’에 집착할까?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주주자본주의의 진리 때문이다. 주식을 확보하면 당연히 기업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 지분을 확보하는 데 목숨을 거는 일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런데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이고 모든 결정권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나 정당할까? 그런 지배구조가 모든 기업 경영에 가장 적합할까?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로 선임된 잭 웰치는 뉴욕에서 ‘저성장 경제에서의 고성장’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연설을 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업은 주주의 것이다. 경영자의 임무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주주가치는 주가상승과 배당금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제너럴일렉트릭은 1등 주의를 도입해, 진입한 모든 시장에서 외형경쟁을 통해 1, 2위가 되는 것을 목표로 경영하겠다.’

잭 웰치의 연설은 주주가치 중심주의 기업 경영의 틀을 제시했다. 이 생각에 따르면 경영자는 주주가 고용한 대리인이다. 기업 직원들은 기계처럼 경영자의 생각을 실행하는 존재다. 주주는 기업의 재무 성과는 물론, 경영권도 독차지한다. 경영자의 철학이나 임직원의 자발성은 발디딜 틈이 없다.

그러나 아오키 마사히코 스탠퍼드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기업 지배구조는 원래 매우 다양하다. 영미식 투자자 중심 구조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영미식 이외에 독일식 모델, 일본식 모델, 실리콘밸리형 모델, 그리고 호혜적 모델 등을 든다. 영미식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주주의 절대적 권능을 인정하지 않는 모델이고, 이미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독일, 감독이사회 절반이 노동자 대표

그 중 예를 들어 독일식을 살펴보자. 독일은 공동결정제도가 제도화되어 있다. 이사회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다. 이 중 감독이사회를 먼저 구성하고 여기서 경영이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니 감독이사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다.

기업규모와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독일 상법은 이 감독이사회의 최고 절반 이상을 직원 대표가 하도록 정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상당수가 절반 이상이 근로자 또는 노조 대표다. 여기다 개별기업 직원 대표자와 산별노조 대표자가 함께 참여해 개별기업 노동자 이해관계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게 되어 있다. 이 모델에서 투자자는 제한적으로만 의사결정에 관여할 뿐이다. 주주중심주의와는 다른 지배구조다.

그 유래는 중세 길드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길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들의 조합이다. 물론 집단적으로 거래를 하려면 이 곳에서도 경영자와 투자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직에서 경영자나 투자자는 조직 경쟁력의 핵심역량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실제로 조직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어렵다. 오히려 장인들이 경영이나 투자를 고용한 것 같은 형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오키 교수는 노동자들이 기업의 핵심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자산을 갖고 있을 때는 공동결정제도가 더 효과적인 기업지배구조라고 말한다.

일본식 모델도 비슷하다. 독일처럼 제도화된 공동결정제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에서 투자자들은 간접적으로만 기업 경영에 관여했다. 특히 주채권은행이 기업을 중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관리하는 형태를 띠었다. 한 해 한 해의 실적에 따라 경영자를 교체하는 주식투자자들과는 다른 차원의 관여다.

최근 주목받는 실리콘밸리형 모델이나 호혜적 모델은 설비 같은 물리적 자산보다는 기술과 아이디어와 경험 같은 지식자산이 중요한 사업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실리콘밸리 모델에서는 한 기업의 지배구조보다는 산업생태계 전체의 지배구조가 더 중요하다. 벤처캐피털이 금융자원을, 대학이 지식자원을 배분하며 생태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투자자는 개별 벤처기업 경영자에 대해 지배력을 갖지만, 분기실적을 점검하는 식의 전통적 영미식 통제는 하지 않는다. 다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평가해 성과가 좋을 경우 다음 단계의 더 많은 금융자원을 제공하는 식이다.

호혜적 모델은 지식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사업에서 나타난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협동조합이나 상호회사처럼, 지식자산을 가진 노동자들 사이의 합의 형태로 경영권이 행사되는 모델이다. 법무법인이나 광고회사나 미디어처럼 물리적 자산보다는 지식이 기업 핵심역량을 구성하는 곳이라면,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지배하는 지배구조가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지식기업의 주인은 지식자산 가진 자

사치&사치의 투자자들은 그 회사의 주인 행세를 하려고 들었다. 그러다가 핵심 자산인 ‘사치 형제’를 놓쳤다. 그들은 사치&사치의 내용상 주인은 필수적 지식자산을 가진 사치 형제라는 사실을 몰랐다. 형태는 주식회사였지만 사실상 주주가 아닌 경영자가 지배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지식기업에서라면, 그 회사에 필수적 지식자산을 갖고 경영자는 어떻게든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삼성에서는 어떨까?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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