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의 경제정책을 평가해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용을 준비하려고 이런저런 수치를 들춰보다 연구소 동료들과 의견을 나눴다. 한 동료가 ‘한국 경제는 막걸리’라는 비유를 썼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한국 경제, 아니 한국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는 지금 막걸리와 매우 비슷하다.
막걸리는 그대로 두면 차차 윗물이 맑아지고 아랫물은 점점 더 탁해진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도 그렇다. 윗물인 대기업과 자산가들은 점점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며, 사회 전체의 비용과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대로 아랫물에 있는 중소 벤처기업 및 자영업자들은 점점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며, 더 많은 비용과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이는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에서 벌어진 일이다.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
그런데 이번 정부가 했던 일은 막걸리를 그대로 두는 일이었다. 아마도 경제의 자원을 배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막걸리를 흔드는 일을 할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만능주의가 정점에 다다른 한국 경제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막걸리는 점점 더 가라앉으며 윗물과 아랫물의 구분이 더 뚜렷해졌다.
한국 경제가 가고 있는 방향은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2006~2010년 가계 가처분소득의 연간 실질증가율은 1.6%에 그쳤지만, 기업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19.1%였다. 5년 동안 가계와 기업 간 성장 격차는 12배나 됐다. 전형적으로 부자 기업, 가난한 국민의 나라가 돼가는 것이다. 원인을 분석하면 이렇다. 원래 기업이 물건을 팔아 매출을 일으키면, 그 매출을 임금과 부품 및 원재료 구매를 통해 분배하게 된다. 매출이 늘어났는데 직원이나 협력업체에 가는 몫은 늘지 않으면, 기업은 돈을 벌지만 가계로는 분배되지 않는다.
우선 돈을 벌어도 일자리를 늘리지 않으니, 기업에서 가계 쪽으로 분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최근 10년 동안 한국 기업의 성장은 눈부셨다. 한국 2천대 기업의 매출액은 2000년 이후 10년 동안 815조원에서 1711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 기업들의 건전성도 좋아져서, 같은 기간 이익도 2배 이상 늘어났고 부채비율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2천대 기업의 일자리는 2.8%밖에 늘지 않았다.
협력업체 분배 문제도 심각하다. 그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가 내부거래로 사업을 수주한 뒤 이른바 ‘통행세’만 챙기고 중소기업에 하도급을 주는 관행이 있다. 광고업체나 소프트웨어 관련 시스템통합(SI) 업체 등에 있는 관행이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을 줄 때, 대기업은 자체 계열 SI 업체를 거쳐 중소벤처 소프트웨어 업체로 그대로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일종의 취급수수료로 10~20%를 뗀다. 대기업 집단 소속 20개 광고·SI·물류 업체의 경우,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금액 기준 88%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2010년 조사 결과도 있다. 반면 비계열사와 거래하는 경우 수의계약에 의한 거래는 전체 거래 금액의 41%로 내부거래에 비해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가계 사이에도 격차가 커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 때문이다. 중소·영세 기업의 경우 정규직이더라도 대기업 비정규직보다 임금과 근로조건 등이 열악할 정도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은 격차가 크다. 통계청의 2011년 8월 자료를 기준으로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보니, 300명 이상 대기업에 속한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1만7621원으로 300명 이하 사업체의 정규직보다 높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정규직·비정규직 합쳐 대기업 취업자 12%중소기업 재직자들은 정규직이라도 복리후생을 거의 챙기지 못한다. 퇴직금만 해도 대기업 비정규직 100명 중 67명이 받는데, 1∼4명 사업체는 37명만 받는다. 시간외수당은 48명 대 14명이고, 유급휴가 및 휴일은 68명 대 28명으로 대기업 비정규직이 1~4명 업체 정규직보다 많다. 물론 전체 비정규직 가운데 대기업 재직자는 5%밖에 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도 대기업 취업자는 12%이고, 중소기업 취업자가 88%다.
자기 사업을 차린 사람들은 어떨까? 경제가 발전하면 기업이 늘어나서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게 정상이다. 한국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30% 이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그나마 줄던 비중은 2011년 8월부터 50대를 중심으로 다시 늘기 시작했다. 퇴직 뒤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형 서비스산업에 뛰어든다. 음식점·슈퍼마켓·편의점·제과점 등이다. 그 처지는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독립 자영업자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의 등쌀에 죽을 지경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 이들은 지속적으로 사업 확장 투자를 요구받아 그 부담에 등이 휘어진다.
전반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은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뉘어 있다. 대체로 성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매출액 2천대 기업 고용이 100명 중 5명 정도 된다. 이곳의 정규직은 100명 중 3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그래도 안전지대에 있다. 그 나머지,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체 경영자나 정규직까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성 밖에 있다. 이들이 성 안에 진입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이니 인재가 대기업에만 몰리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악순환의 고리다.
경제정책, 특히 기업과 산업 정책은 많은 부분이 관행과 문화의 몫이다. 실제로 정책 수단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철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은 정책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경제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줘야 하는 것이다. 법으로 모든 경제 문제를 하나하나 풀 수는 없다.
그래서 경제정책은 메시지다. 정부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그 진의를 의심하게 해서는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이번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한국 경제를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끌고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구호는 그 논리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경제정책은, 2009년 말 벌어진 이건희 삼성 회장의 1인 단독 특별사면이었다.
막걸리는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다
막걸리는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흔들어야 한다. 탁한 기운이 윗물과 아랫물에 골고루 섞이게 해야 한다. 그게 사회 전체의 비용과 위험을 나누는 방법이다. 그러려면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을 드러내고 과감하게 병을 흔들겠다고 나서는, 그런 국회와 정부가 필요하다.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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