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그 시의 정황을 산문으로 풀어놓고 시작해볼까 한다. 말하자면 거꾸로 가보자는 것이다. 이곳은 눈물이 많은 집이다. 어머니는 온몸으로 눈물을 흘린다. 꿈속에서도 우는 것 같다. 닦고 또 닦아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누나 역시 하염없이 운다. 마당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물을 말리기도 한다. 아빠와 형은 길에서 죽었다. 두 사람이 죽었지만 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그때 마치 눈물처럼 비가 쏟아진다. 빗속에서 엄마와 누나는 노래를 부르듯 비명을 지르다 혼절하기도 한다. 비가 우리 가족을 감싸주는 것 같다. 운명처럼 눈물이 많은 집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용산 참사에서든, 천안함 사건에서든, 혹은 그 어떤 비극적인 일에서든, 거기서 아빠와 형을 잃은 가족의 모습이라면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황은 아직 시가 아니다. 이를 어떻게 시로 표현하면 좋을까. 시인에게는 이미지라는 무기가 있다. A를 B로 치환할 때 A와 B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무기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고, 그것이 기어이 설득력이 있을 때 우리는 시의 마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인용할 시의 제목은 ‘눈물이라는 긴 털’이고 여기에 ‘용산, 천안함 그리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몇 달 전 출간된 김중일의 두 번째 시집 (창비)에서 골랐다.
“이것은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의 이상형은 털 없이 매끄러운 피부에 가급적 눈물의 숱이 적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디쯤 잘라서 정리할까요?/ 여기쯤? 아님 여기?// 시신의 일부 같은 저녁의 서쪽 하늘 아래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고 나면 온몸에 털이 무성해지는구나/ 흑백사진 속 인화된 작약 같은 음색으로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꿈속에 숨어서 혼자 많이 우나 보다// 깎아도 깎아도 끝이 없구나// 누나는 턱밑까지 흘러내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자신의 얼굴을 엉망으로 헝클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마당을 가득 채운 편서풍을 이용해 정리하곤 하였습니다”(1~5연)
보다시피 ‘눈물’을 ‘털’로 치환해버렸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A와 B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제목이 그렇게 우기고 있으니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이 시 안에서 눈물은 털이고 또 털은 눈물이다. ‘나’의 이상형은 눈물의 숱이 적은 사람이라고 한다. 가족들의 숱이 너무 많아서다. 어머니는 자고 나면 온몸에 털이 무성해지고, 누나의 숱은 얼굴을 다 망가뜨릴 지경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는, 가족들을 이해하지만 이젠 지쳤다, 라는 기색마저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만난 사람의 숱을 마치 미용사처럼 정리해주고 싶어 한다. 당신마저 그런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 며칠 아버지와 형은 한 방울 그을린 눈물처럼/ 길에서 흔적 없이 흩어졌습니다/ 걷다가 모르게 빠진 한 올 머리카락처럼/ 길의 질량과 부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온종일 공중은 빗줄기로 무성히 뒤덮여 있었습니다/ 온종일 공중은 온통 시커먼 털들로 무성하였습니다/ 무성한 야생의 털 속을 헤집으며 날고 여기저기 옮겨 앉으며/ 어머니와 누나가 동시에 멧새처럼 합창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친 악보 위에서 잠깐이지만 정신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빗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축축한 털로 무성한 넓은 가슴으로/ 공중이 우리 가족을 꼭 안아주었습니다”(6~9연)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을린 눈물’이라는 구절을 보건대, 두 사람은 불에 타죽은 것 같다. 그러나 눈물 한 방울이 불에 타든 말든 세상은 꼼짝 않는다. 이 가족은 언제까지 울어야 할까. 시인은 마지막 연을 적는다. “우리는 털이 무성한 핏줄을 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천생의 탯줄과도 같은 그것 말입니다”(10연) 눈물과 털이 이미지의 층위에서 벌이는 이 협업은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가족의 절반이 죽고 나머지 절반이 눈물에 질식해가는 풍경을 보는 막내동생의 시각이라면 어떤가. 끔찍하고 처절한 동화다. 이 이미지를 ‘좋다’라고 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이미지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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