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1501~70)은 조선 성리학의 상징적 존재다. 퇴계가 설계했다는 경북 안동의 도산서당은 조선 성리학의 성취가 오롯이 밴 ‘철학의 정원’이라 불린다. 온돌방과 마루, 부엌만으로 이뤄진 세 칸짜리 작은 집이다. 퇴계가 거처하며 후학을 양성한 퇴계학의 산실이자 조선 성리학의 성지다. 16세기 이후 서원 건축의 원형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거처인 셈이다.
정녕 그러한가. 퇴계는 대지주였다. 예안·봉화·영천·의령·풍산 등지에 걸쳐 논 1166마지기, 밭 1787마지기를 갖고 있었다. 최소 34만 평이 넘는다. 노비도 367명이나 됐다(계승범, ). 선비는 노동하지 않는다. 퇴계라고 다를 게 없다. 끼니를 직접 마련하지도, 농사를 짓지도 않았다. 퇴계의 ‘안빈낙도’는 34만 평의 전답과 수백 노비의 강제 노동 위에 핀 이상한 꽃이다. 과문한 탓인지, 퇴계가 백성의 등골을 휘게 하고 숱한 평민을 노비로 전락시킨 토지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성·노비·서얼 차별에 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퇴계는 “무뢰한들이 서얼 중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서얼 차별 철폐에 완강히 반대했다. 퇴계와 같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보기에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조선은 양반 대지주의 나라였다.
인민이 주권의 주체인 민주공화국이라는 21세기 한국에서 사람은 평등한가.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2013년 최저임금은 시급 4860원이다. 주 40시간(월 209시간) 노동 기준으로 월 101만5740원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래 처음으로 월 100만원을 넘어섰다. 환영할 일인가.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노동자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월 141만원이다.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에 훨씬 미달한다. 이 엽기적 현실의 명분은 늘 ‘기업 경쟁력’이다. 양대 노총 대표가 최저임금위원직에서 전원 사퇴한 까닭이다. 최저임금법은 1조에서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최저임금으로 어떻게 ‘생활 안정’ ‘노동력의 질적 향상’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꾀하나.
한국의 최저임금은 전일 노동자 평균 임금의 32%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최저임금 6.44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OECD 회원국 중 미국·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임금불평등이 심하다. 이게 이명박 정부가 입에 달고 사는 ‘글로벌 코리아의 국격’이다. 재벌 기업 사장 출신이 대통령 노릇을 하는 정권답게 임기 중 최저임금 상승률은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 가운데 꼴찌다.
그나마 법정 최저임금 수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숱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연봉 1200만원(월 10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가 2010년 기준으로 570만 명에 이른다.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등의 알바들도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데, 굶어죽지 않으려면 도둑질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하다.
맥도널드가 런던올림픽에 맞춰 8월15일까지 ‘도전 60초 서비스’ 이벤트라는 걸 한단다. 주문부터 메뉴를 받을 때까지 60초를 넘기면 ‘아시아 쉑쉑 후라이즈’ 무료 교환 쿠폰을 준단다. 속도가 사람을 잡는다. 시민들이여, 음식점·편의점·커피전문점 등에서 주문한 거 빨리 안 준다고 화내지 마시라. 다 그대의 언니오빠, 누나동생, 이웃사촌들 아닌가. 힘없는 사람끼리라도 서로 사람 대접하며 사는 게 좋지 않겠나.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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