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에서 압승한 다음날인 12월20일에 비친 몇 개의 풍경입니다.
하나,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인 이랜드그룹 계열의 뉴코아와 이랜드리테일은 노조원 33명을 전격 해고했습니다. 두 회사의 해고 대상에는 박양수 뉴코아 노조위원장, 김경욱 이랜드리테일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가 대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회사 쪽은 12월18일부터 당사자들에게 해고 사실을 통지했다고 합니다. 애초 이랜드그룹 노사는 노동부와 민주노총의 중재로 12월20~21일 집중 교섭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이 무더기 해고 조처로 교섭은 당연히 불발됐습니다.
세밑에 해고 통보를 받은 박 위원장은 현재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입니다.( 송년호 포토스토리 참조) 뉴코아 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7개월째, 그의 바람은 하나뿐입니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장기 농성 중인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원 90여 명은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집단 삭발을 했습니다. 파업 투쟁 100일째인 이날, 동료의 손에 머리카락이 잘리는 여성 노동자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노조원들은 코스콤에 성실 교섭을 촉구하기 위해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100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마주한 것은 코스콤의 묵묵부답과 여의도의 칼바람일 따름입니다.
셋, 이명박 당선자는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국정운영의 기본 방향을 놓고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자리입니다. 그는 자신이 표방해온 ‘경제 대통령’에 걸맞게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강조했습니다. 나라의 선진화를 위한 변화 필요성을 역설하며, 변화의 구체적인 출발을 기초 질서와 법 질서 확립에서부터 찾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세 장면은 2008년 우리가 마주하게 될 한국 사회의 풍경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이 당선자가 주장해온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코스콤 노동자의 눈물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그 거리는 좀체로 좁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당선자는 흔히 ‘CEO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기업이 최우선 가치로 삼는 효율과 생산성, 추진력 등이 장점이라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대통령에겐 기업 사장을 뛰어넘는 여러 덕목들이 필요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다양한, 때론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컨센서스를 만들어내는 조정 능력일 겁니다. 저돌성보다는 인내와 타협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이 당선자는 1149만2389표를 얻었습니다. 거기엔 기업가보다 훨씬 많은,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 상당수의 지지가 담겨 있을 겁니다. 자신들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주지 못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당선자 이명박’을 낳았습니다. 이 당선자가 코스콤 노동자의 눈물을 가볍게 여긴다면, 그 원망과 분노는 ‘대통령 이명박’에게로 날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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