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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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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닝요는 한국을 사랑하지 않아서 안 돼?

[S라인]브라질 국적 선수의 대표팀 발탁과 귀화 논란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전략적 판단’이 중심 돼야
등록 2012-05-15 21:39 수정 2020-05-03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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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국적 에닝요 선수(31·전북 현대)의 ‘귀화 추진’이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표팀의 최강희 감독이 절실히 원했고 이에 대한축구협회가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의 반대 의견 표명 때문에 일단 ‘조정 국면’에 들어간 상태다. 결과 여부를 떠나서 이 논란은 순혈주의 전통이 강한 우리의 축구문화와 그것을 배태한 우리나라의 오랜 관습을 되묻고 있다.

전북 현대의 향후 계획? 이런 좁쌀 같은…

손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가보자. 일각에서는 전북 현대의 향후 계획까지 염두에 둔 최강희 감독의 포석이라고 비난한다. 최강희 감독의 임기는 본선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기까지다. 2014년 브라질 본선에서는 자신보다 실력 있는(이를테면 해외파) 감독이어야 한다고 피력한 적도 있다. 따라서 그는 최종 예선을 마치고 전북 현대 사령탑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만약 에닝요가 귀화해 한국 국적을 갖게 되면 전북 현대는 외국인 선수를 한 명 더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걱정도 팔자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최강희 감독은 이런 꼼수를 쓸 만한 좁쌀 같은 위인이 아니다. 그는 차라리 무명의 실력파 신인이나 재기에 성공한 노장을 노련한 선구안으로 발탁해 쓸지언정 ‘귀화 꼼수’로 소속팀의 전력 증강을 노리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닥공 축구’는 이런 꼼수의 결실이 아니다.

다음, 좀더 중요한 부분을 검토해보자. ‘축구 순혈주의’ 말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순혈주의를 탄탄한 정서적 습속으로 지탱해왔다. 물론 그것은 그 무슨 ‘전통’이라든가 하는 측면도 있지만 각 시대의 문화통치적 측면(이를테면 박정희의 국수주의에 흡착된 순혈주의)이 견고하게 작동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 지면의 범위를 넘는 것이므로 생략한다. 어쨌든 순혈주의는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훌쩍 넘어선 지금도 완강한 문화정치로 작동하고 있다.

급속하면서도 능동적인 서구화의 경향으로 귀화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된 일본에서는 후이 라모스를 시작으로 1998년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와그너 로페즈,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 귀화 공격수 로버트 카렌 등 꽤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유럽의 경우, 국적에 대한 개인의 선택이 상당히 열려 있는 편이어서 2002 월드컵 때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이마누엘 올리사데베가 폴란드 대표로 뛰었고, 가나 출신의 데릭 아사모아가 독일 국적으로 활약했다. 이민 2세대가 아니라 귀화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이후 우리 사회는 상당한 문화적 개방을 겪었다. 여느 나라보다는 늦었지만, 독일 출신의 이참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씨가 국회에 진출했다. 물론 이런 ‘개방’이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전격적으로 해결하거나 능동적으로 끌어안는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어쨌든 낡은 콘크리트에 긍정적 균열이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빅토르 안’을 격려한다면

스포츠에서도 순혈주의의 장벽은 무너지고 있다. 원래 이름이 제로드 스티븐슨인 문태종은 소속팀 인천 전자랜드뿐만 아니라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얻고 있다. 여자 프로농구 삼성생명의 킴벌리 로벌슨이나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가장 높은 무대를 꿈꾸고 있는 피겨 아이스댄스 클라우디아 뮬러, 탁구의 중추가 된 당예서·석하정·곽방방 등은 뛰어난 성취와 더불어 그 분야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이들 모두 개정된 국적법에 따라 ‘외국인 우수 인재의 복수 국적 취득’이 가능해져 특별 귀화를 받은 경우인데, 축구의 에닝요도 이 규정에 따른다. ‘역귀화’의 경우로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 선수가 된 빅토르 안, 곧 안현수 선수가 있다.

축구에서는 오래전부터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켜 대표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주 있었다. 성남 일화의 전성기를 장식한 모따(현재는 브라질 리그 세아라 SC 소속)가 있었고, 인천과 성남을 거쳐 현재 수원에서 활약하고 있는 라돈치치가 있었다. 두 선수 모두 뛰어난 기량과 성실한 자세를 높이 평가받았고, 당시 대표팀 감독들은 한결같이 귀화를 추진했다. 그 밖에 대표 선수까지는 기대하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귀화해 활약한 선수도 적지 않다. 신의손(사리체프), 이성남(데니스), 이싸빅(싸빅) 등이다.

에닝요도 이 많은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그가 라돈치치만큼 한국어를 잘하거나 한국을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월드컵에서 뛰려고 귀화를 ‘활용’한다고도 한다. 측량하기 어려운 주관적 판단은 중요한 기준도 못 되거니와 측량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국수주의적 정념은 이민이나 귀화의 법적 기준도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초보적 차원의 한국사와 한국어 능력을 측정하지만 이 역시 ‘애국심’을 재는 기준은 아니다. 우리가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서고자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를 격려한다면, 거꾸로 월드컵에서 뛰고 싶은 에닝요의 선택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측량할 수도 없는 특정 개인의 애국심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에도 반한다.

문제는 그 자리에 에닝요가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전략적 판단이다. 귀화할 경우 에닝요는 이청용(볼턴), 손흥민(함부르크), 남태희(레퀴야 SC), 이근호(울산 현대) 등과 경쟁해야 한다. 한창 나이인 이들에 비해 에닝요는 31살이다. 2014년이면 33살이 된다. 에닝요의 귀화 추진에는 이동국을 활용하기 위한 전술적 선택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 경우 2014년 때 대표팀의 주포는 모두 30대 중반이 된다. 본선 진출과 16강 진출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에닝요의 활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순혈주의나 애국심은 작은 문제다. 그것은 그것대로 축구계와 이 사회가 함께 대화하고 학습해나갈 일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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