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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풍자, 장진호 비판…웃자고 했더니 죽자고 덤비네

문화대혁명 57주년 맞은 중국, ‘기억하고 폭로하고 조사하기’ 신문화대혁명 조짐
등록 2023-05-26 06:39 수정 2023-06-02 02:26
시진핑 주석 발언을 패러디한 중국 코미디언 리하오스(예명 하우스). 웨이보 갈무리

시진핑 주석 발언을 패러디한 중국 코미디언 리하오스(예명 하우스). 웨이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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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더없이 훌륭했지만 기이하게도 웃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웃긴 일을 보거나 들어도 절대로 소리 내어 웃거나, 웃는 표정조차 짓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깔깔대며 온몸이 뒤집어지도록 웃어대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헤헤 헤헤”라는 말만 했다. 그런 모습은 아주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웃지 못하는 그 사내에게 비극이 닥친 것은 1966년 문화대혁명(문혁)이 일어난 뒤다.

이것은 실화다

문혁 이후 중국 정부는 ‘가장 깊숙이 숨은 반혁명분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평소 의심할 만한 사람이나 일에 대한 기억을 죄다 끄집어내 고발하게 했다. 이른바 ‘기억하고, 폭로하고, 조사하기’ 활동이었다.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치 ‘자기 침대 밑에서 폭탄이라도 파낼 기세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모든 의심 정황을 ‘기억하고, 폭로하고, 조사하는’ 활동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웃지 못하는 사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자보 한 장이 붙었다. ‘그는 왜 한 번도 웃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대자보에는 그동안 그 사내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가 웃지 않는 건 틀림없이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출신성분도 완벽했고 회사에서의 언행도 흠잡을 데 없었던지라 좀처럼 ‘반동분자’라는 정치적 증거를 찾기 힘들었다. 집안을 압수수색하고 사내를 감금해 자백을 강요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봤지만 조사반원은 그가 절대로 ‘웃지 않는’ 정치적 반동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한 조사반원이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웃지 못하는 사내’에게 벽에 걸린 마오쩌둥 주석 사진을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다. “마오 주석을 보면 웃어야 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사내는 “당연히 웃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조사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웃어봐요. 당신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보겠소!”라고 말했다. 사내는 마오 주석 사진을 보고 아무리 웃으려고 해봤지만 광대뼈와 살이 경련이 일듯 떨리고 표정도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드디어 ‘반혁명 현행범’ 증거를 찾아낸 조사반원이 사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를 그렇게 대합니까? 웃는 거요, 우는 거요? 당신은 뼛속 깊이 사무치는 원한이 있는 게 틀림없소!” 그렇게 해서 그 ‘웃지 못하는 사내’와 그의 가족은 문혁 기간 내내 반혁명분자가 되어 모진 고난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중국 유명 작가 펑지차이가 쓴 문혁 구술담 <백 사람의 십 년>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웃지 못하는’ 남자가 그 ‘병’으로 문혁 기간 중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초를 당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나 또 한 남자가 ‘웃음’ 때문에 고초를 당하고 있다. 그는 지금 21세기판 ‘반혁명분자 현행범’이 됐다. 남들을 ‘웃기는’ 것이 직업인, 토크쇼 라이브 극장의 간판 배우로 ‘하우스’(House)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리하오스는 2023년 5월13일, 베이징의 한 라이브극장에서 열린 토크쇼 도중 유기견과 관련한 풍자 내용이 빌미가 되어 관련 당국에 입건돼 조사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하우스의 소속사도 문제의 토크쇼에 대한 책임을 물어 1335만위안(약 25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로 인해 소속사는 사실상 폐업에 준하는 상태가 됐고 수많은 관계자와 기관이 줄줄이 문책당했다. 하우스의 토크쇼 파동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항저우 등 주요 도시의 라이브 토크쇼도 내부 상황 정리를 이유로 모두 잠정 중단됐다.

당국을 비판한 네티즌도 구류처분

하우스는 2023년 5월13일 베이징에서 열린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두 마리 유기견을 기르고 있어요. 그 녀석들은 다람쥐를 잡으면서 놀아요. 작은 개들과 비교하면 그 녀석들이 훨씬 더 정확하게 잡더라고요. 가히 ‘작풍(모든 조직과 개인의 사상·일·생활 등에서 나타나는 태도와 행위)이 훌륭하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作風優良, 能打勝仗)고나 할까요!” 그러자 라이브극장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우스와 방청객은 그날의 토크쇼가 어마어마한 핵폭탄으로 되돌아올 줄 몰랐을 것이다.

‘작풍이 훌륭하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대회에서 강군 건설 목표로 제시한 핵심 구호다. 시 주석은 당시 연설에서 “당의 지휘를 따르고, 전쟁에서 싸워 이기며, 작풍이 훌륭한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뒤 중국 내 모든 인민해방군 부대에는 이 구호가 일제히 내걸렸다. 하우스는 한마디로 시진핑 주석의 ‘어록’을 토크쇼의 웃음 소재로 쓴 것이다.

토크쇼 다음날인 5월14일, 소셜네트워크 웨이보에는 하우스의 전날 토크쇼 내용을 ‘저격’하는 익명의 제보글이 올라왔다. 전날 토크쇼에서 하우스가 부적당한 비유로 “인민해방군을 모욕했다”는 제보였다. 그러자 웨이보를 중심으로 각종 논쟁이 불붙었고, 15일 베이징시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16일, 중국 관방매체인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에도 일제히 이를 비판하는 긴급 사설이 실렸다. 그리고 17일, 관련 당국은 하우스에 대한 기소와 함께 소속사에 무기한 공연 중단과 거액의 행정처분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시 당국은 이 사건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통보하면서 동시에 여러 예술가와 작가에게 이렇게 촉구했다. “창작사상을 바로잡고 도덕적 수양을 강화해서 인민에게 영양가 있는 정신적 양식을 제공해야 한다.” 5월13일 토크쇼가 있던 날부터 불과 사나흘 사이에 모든 조사와 행정처분, 입건이 완료됐고 전 관방매체가 총동원돼 여론 사격전도 완료됐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깔깔대고 웃던 사람들과, 당국의 조사 방침에 황당해하며 “이게 무슨 조사할 일이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꼴”이라고 비판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하우스를 옹호하며 당국을 격하게 비판한 누리꾼 한 명도 구류처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더는 ‘웃기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우스를 옹호하는 건 곧 인민해방군을 모욕하는 일이자 시진핑 주석의 ‘어록’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화 <장진호>를 비판했다가 재판받은 중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작가인 뤄창핑. 바이두 갈무리

영화 <장진호>를 비판했다가 재판받은 중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작가인 뤄창핑. 바이두 갈무리

한국 ‘막걸리 보안법’ 같은 영웅열사보호법

2021년 10월6일, 중국의 유명 언론인이자 작가인 뤄창핑은 자신의 웨이보에 이런 글을 남겼다. “(한국전쟁 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 모래조각중대(沙雕連)가 최고 수뇌부의 ‘현명한 결정’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이 전쟁이 가지는 정의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가 지칭한 ‘모래조각중대’는 당시 중국에서 연일 기록적인 관객 수를 경신하던 영화 <장진호>에 등장하는 중국 군인들을 비꼬는 말이다.

장진호는 1950년 11월 한국전쟁 때 미군과 중국군이 최대 혈전을 벌인 곳으로, 지금의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는 인공호수다. 영화에서는 당시 영하 30도 넘는 혹한 속에서 밤새 자리를 지키며 전투를 치르던 중국군 병사들이 총을 든 자세 그대로 얼음조각처럼 얼어붙은 장면이 나온다. 중국인은 그들을 ‘얼음조각중대’(氷雕連)라고 부르며 중국 군인의 영웅 이미지로 투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얼음조각중대는 한국전쟁에서 세계 최강 미군과 맞서 용감하게 ‘정의의 전쟁’을 수행하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뤄창핑은 자신의 웨이보에 그걸 ‘모래조각중대’로 바꿔 부르며 한국전쟁 참전을 ‘정의’라 부르는 것을 교묘하게 비판했다. ‘모래조각’의 중국어 발음 ‘사댜오’가 ‘바보, 머저리, 멍텅구리’를 이르는 중국어와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이다.

뤄창핑은 이 ‘설화’로 다음해 곧바로 당국에 구금돼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고, 2022년 말에 풀려났다. 죄명은 2018년부터 시행되는 ‘영웅열사보호법’ 위반이다. 누구든지 중국의 영웅과 열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비방하는 사람은 이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는 ‘만병통치법’이다. 한편 2023년 4월10일 중국의 유명 인권변호사인 딩자시와 쉬즈융은 체제 전복 혐의로 각각 징역 12년형과 14년형을 선고받았다. 딩자시와 쉬즈융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농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복지 향상을 위해 일한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였다.

토크쇼 배우 하우스 사태를 계기로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마치 57년 전 문혁 때처럼 수상한 언행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폭로하고, 조사하는’ 식의 ‘제보와 투서’가 유행하고 있다. 한 예로 세계적 화가 반열에 오른 웨민쥔과 팡리쥔의 그림을 두고 ‘중국 인민과 인민해방군, 주요 지도자들의 초상을 모독하고 일부러 추악하게 묘사했다. 이들은 문화 매국노와 다를 바 없다’는 긴 글이 계속 인터넷 사이트에 ‘제보’로 올라오고 있다.

왼쪽 셋째 사진 속 주인공 쉬즈융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농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복지 향상을 위해 일한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다. 2023년 4월10일 체제 전복 혐의로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Getty Images 제공

왼쪽 셋째 사진 속 주인공 쉬즈융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농민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복지 향상을 위해 일한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다. 2023년 4월10일 체제 전복 혐의로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다. Getty Images 제공

희곡 해석에서 시작된 문화대혁명

1959년 말 베이징시 부시장인 우한은 희곡 <해서파관>을 발표했다. 희곡은 명나라 때 청렴한 관리 해서가 황제에게 파면당하는 과정을 그렸다. 1965년 상하이에서 발행하는 관방매체 <문회보>에 야오원위안이 <해서파관>에 대해 쓴 논평이 실렸다. 야오원위안은 이 글에서 해서는 (마오 주석에게 숙청된) 펑더화이이고 황제는 마오 주석을 비유한다고 했다. 즉, <해서파관>은 마오 주석을 비판하는 희곡이라고 주장했다. 마오 주석의 부인 장칭이 야오원위안의 주장을 옹호한 것이 문화대혁명의 전조였다.

다음해인 1966년 5월16일, 제8차 11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무산계급 문화혁명의 깃발을 치켜들고, 반당·반사회주의적인 ‘학술 권위’의 부르주아적 입장을 철저히 폭로 및 비판하고 (…) 당과 정부, 군대 및 문화 영역 등 각계에 스며들어 있는 이들 부르주아 대표 인물들을 비판하고 솎아내야 한다”는 일명 ‘5·16 통지’가 발표됐다. 중국 사회를 10년 동안 아수라장으로 만든 문화대혁명의 시작이었다.

문혁 시대 현행범이 됐던 ‘웃지 못하는 사내’는 문혁이 끝난 뒤 어느 날 만담을 보다가 웃음이 터져나와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미친 듯이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혁 이후 57년이 된 지금, 21세기를 사는 중국인들은 다시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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