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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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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세대여, 돈을 갖고 ‘룬’하라

압축적 경제성장 신화의 종말, 소극적인 저욕망 단계 ‘탕핑’을 지나 ‘룬’하고 싶은 실업세대
등록 2022-06-07 09:26 수정 2022-06-10 01:54
2022년 5월 중국 베이징의 철조망으로 싸인 차단막 안에서 시민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REUTERS

2022년 5월 중국 베이징의 철조망으로 싸인 차단막 안에서 시민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REUTERS

아침이 돼도 링링은 눈을 뜨고 싶지 않다. 눈을 떠도 딱히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출근해야 할 직장도 없다. 실오라기 같은 햇살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암막커튼을 단단히 친 채,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배고플 때까지 자거나 눈 감고 점심때까지 멍때리는 일이 많다. 2021년 말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2022년 초까지는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3월 이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전국적으로 유행해 베이징도 점차 상황이 심각해져 도시 봉쇄에 들어가자 더는 구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사교육과 여행업, 중국에서 가장 저주받은 커플

링링은 올해 27살로 산둥성 출신이다. 산둥성의 한 명문대학 영어과를 졸업한 뒤 베이징에 왔다. 2021년 말까지 베이징 중관촌에 있는 대형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해고됐다. 젊고 강의 실력도 좋아서 링링의 강좌는 늘 만원이었다.

사교육은 한때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전도유망한 시장이었지만, 2021년 7월 갑자기 중국 정부가 ‘의무교육 단계의 학생 과제 부담 및 방과후 과외 부담 감소’라는 사교육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철퇴 정책을 발표했다. 링링은 졸업 뒤 쟁쟁한 국내 및 외국계 기업들에서 오퍼(취업 확정)를 받았지만, 시간 운용이 비교적 자유롭고 평범한 월급쟁이보다 훨씬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사교육 시장의 미래를 믿고 베이징 중관촌 학원가를 선택했다. 몇 년 바짝 집중해 일하고 과외를 병행해 돈을 알차게 모은 뒤, 30대 중후반이나 40대 초반에 조기 은퇴를 해서 남자친구와 캠핑카를 몰고 전국일주를 하고 세계여행을 하리라 다짐했다.

대학 동기인 남자친구도 졸업과 함께 베이징에 와서,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여행 플랫폼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 발생 이후 여행업계는 사교육 시장의 몰락처럼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자친구가 다니던 회사는 그동안 세 차례 대규모 감원을 시행했다. 남자친구는 2차 감원 때까지 살아남았지만, 오미크론 재유행 이후 단행한 3차 감원에서 끝내 살아남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원래 대학 졸업 뒤 고향 산둥성에 남아 공무원시험을 쳐서 평생 ‘철밥그릇’인 공무원이 되려 했다. 하지만 링링의 집요한 설득과 이별 협박에 굴복해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링링과 함께 베이징으로 왔다. 2021년 초 둘이 함께 모은 돈과 양가 부모님의 찬조, 은행 대출로 작은 신혼집까지 사고 보니 얼추 베이징 중산층 문턱 언저리에 도달한 듯해 기분이 들떴다. 지금은 그 집이 제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되고 말았다. 매달 20년간 갚아야 할 대출이자만 해도 엄청나고, 수입은커녕 그동안 모아둔 새 모이 같은 저금마저 바닥을 보인다.

2022년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마저 오미크론 직격탄을 맞고 모든 활동이 정지당하자, 둘은 한동안 ‘바이란’(擺爛·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상태를 뜻하는 인터넷 유행어) 상태가 됐다. 주변 사람들은 농담조로 둘의 조합이 참으로 절묘하다고 했다. 정부 정책으로 사양산업이 되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교육 종사자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업 종사자의 조합이 요즘 중국에서 가장 저주받은 커플이라는 농담이 유행하는데, 링링과 그의 남자친구가 딱 대표적인 예이다.

19세기 프랑스의 유명 시인 보들레르는 지금까지도 만인에게 널리 읽히는 그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서 이렇게 읊었다. “마침내 내 혼은 폭발하여, 슬기롭게도 나에게 외친다. 어디라도 괜찮다! 어디라도 괜찮다!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링링과 남자친구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어디라도 괜찮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룬’(潤·원래 뜻은 ‘습기 있다, 촉촉하다’인데 발음이 ‘run’으로 표기돼 중국 인터넷에서 ‘뛰다, 도망가다, 탈출하다’ 등의 뜻으로 쓰임. 최근 상하이 봉쇄 이후 상하이나 중국 밖으로 탈출 혹은 이민 가고 싶은 심리를 표현함)하고 싶다! 돈뭉치를 들고 이곳 밖으로 ‘룬’하고 싶다!”

봇물 터진 자영업자들의 ‘폭망담’

앞의 내용은 중국 청년들이 처한 현실의 여러 사례를 종합하여 가상의 주인공 이야기를 써본 것이다.

상하이가 두 달 가까이 봉쇄를 이어가던 2022년 5월 중순,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 한 짧은 영상이 화제가 됐다. 동영상에는 차단막을 둘러친 식당 건물 앞에서 중년 남자가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10년 이상 식당을 운영한 사장인데, 두 달 이상 계속된 봉쇄로 식당이 폐업 위기에 놓이자 일순간 정신적 공황 상태가 왔다. 동영상 밑에 수만 개의 공감 댓글이 쏟아졌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폐업한 수많은 중소규모 자영업자의 ‘폭망담’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코로나19 확진자 ‘제로’를 고집하는 중국식 코로나19 방역 정책은 가뜩이나 불황인 경제 상황에 기름을 부으면서 최근 역대 최고치 실업자를 쏟아내고 있다. 2022년 5월18일 열린 경제 관련 학술 세미나에서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원 루펑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 실업률은 이미 미국과 유럽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발전계획위원회 통계를 봐도 최근 중국 실업률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심각했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4월 중국 청년(16~24살) 실업률은 18.2%로 유럽(13.9%)과 미국(8.6%)을 훨씬 능가했다. 루펑 교수는 중국 실업률이 2021년 10월 이후 증가 추세로,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정규직 해고 등 포함하면 실업률 30% 이상?

정부 발표 통계가 도시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했고,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에서 해고된 사람과 기업 등이 신고나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실제 실업 인구는 30%를 훨씬 넘을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2022년 7월로 예정된 대학 졸업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구직난이 예상된다.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중국 굴지의 동영상 플랫폼 기업인 아이치이와 세계적인 대기업 알리바바·텐센트 등도 코로나19 발생 뒤 지난 3년 동안 대규모 감원을 몇 차례나 단행했고, 2022년 신규 채용도 거의 하지 않을 전망이어서 대졸자들의 취업 빙하기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행업과 식당·카페 등 서비스 업종의 ‘폭망사’는 더 이상 화젯거리도 아니다. 중국에서 선두를 달리던 훠궈 체인점 하이디라오도 잦은 봉쇄와 ‘제로 코로나19’ 정책으로 전국 체인점 절반이 문을 닫았다.

1960년대에 중-소 분쟁이 격화되고 중국에 소련의 각종 지원과 원조가 끊기자, 중국 도시에는 실업자가 넘쳐났고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당시 마오쩌둥이 취한 실업 해결책은 ‘상산하향 운동’이다. 16살 이상 도시 청년을 농촌에 내려보낸 뒤 그들에게 민중의 삶 속에서 직접 배우고 혁명정신을 고취하라는 고상한 대의를 불어넣었지만, 실상은 도시에 만연한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약 1700만 명의 청년이 학교를 그만두고 농촌으로 내려갔고 훗날 이들은 ‘하방 지식청년’이라고 불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15살 때 산시성 옌안의 농촌마을로 하방돼 7년간 ‘하방지식청년’ 시절을 보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중국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세계 최고 속도의 압축적 경제성장 신화를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유행 3년째로 접어든 코로나19와 ‘제로’ 방역 정책은 그 신화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2022년 10월 공산당 당대회에서 역사적인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주석의 앞길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서 정치적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지만, 자칫 두 마리 다 ‘룬’하게 생겼다. 꿈꾸던 3연임마저 ‘룬’할지 누가 알겠는가.

무한경쟁사회의 피로와 무력감을 지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대규모 실업 시대에 돌입한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는 ‘바이란’과 ‘룬’이다. 2021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무한경쟁사회의 육체적 피로와 무력감을 반영하는 ‘네이쥐안’(内卷·안쪽으로 말린다는 뜻으로 무한경쟁 과열을 말함), ‘탕핑’(躺平·열심히 일해도 대가가 없으니 ‘평평하게 눕는 것’이 최고라는 뜻) 같은 단어가 유행했다. 2022년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극심한 무력감과 절망을 반영하는 ‘바이란’과 ‘룬’ 등의 용어가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풍자되고 있다.

상하이 봉쇄로 드러난 중국의 ‘제로’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감시와 통제, 그리고 거듭된 봉쇄로 인한 경제불황과 대량실업 사태는 중국인들에게 ‘탕핑’ 같은 소극적인 저욕망 단계를 넘어 ‘이곳이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달아나거나,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포자기하고 싶은 심리를 낳고 있다. 그들이 사는 ‘이곳’은 이미 거대한 감옥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바이란’ 상태에 놓인 중국의 모든 링링과 남자친구가 ‘룬’하고 싶은 ‘이 세상 밖’은 어디에 있을까. 보들레르여, 당신은 “그보다도 더 멀리… 가능하다면, 삶에서 더욱더 멀리 떠나자”고 했던가.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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