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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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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백두산 천지로

겨울올림픽 앞두고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치는 중국,
지난 크리스마스 전야에 개통한 고속열차 푸싱하오를 타고 가본 백두산
등록 2022-01-16 06:56 수정 2022-01-28 06:36
2022년 만 50살의 첫날을 백두산에서 맞았다. ‘남은 인생의 절반은 성실하게 살고 싶다’고 빌러 갔지만, 그렇게 몸서리나는 추위는 처음이었다.

2022년 만 50살의 첫날을 백두산에서 맞았다. ‘남은 인생의 절반은 성실하게 살고 싶다’고 빌러 갔지만, 그렇게 몸서리나는 추위는 처음이었다.

새해 들어 나는 만 50살이 됐다. “엄마는 어쩌다 50살이 됐어? 50살까지 살아본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 딸아이는 하마터면 나에게 ‘쌍욕’을 들을 뻔했다. ‘어쩌다 50살’이 된 것도 서러운데 기분이 어떠냐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구를 인용해서 답해주마.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50살이 왔다.”

50살이 되면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이 늘 그랬듯이, 마치 벼락치기 수험생처럼 50살을 며칠 앞둔 연말이 돼서야 비로소 ‘내일모레면 50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불현듯 그 ‘꿈’이 떠올랐다. “50살에도 꿈이 있냐”고 묻는 딸아이는 결국 나에게 ‘쌍욕’을 듣고야 말았다. “50살이 된 내 꿈은 말이야, 겨울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거야!”

마치 나를 위한 선물 같잖아

2021년 12월30일, 나는 홀로 백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적어질 가능성이 많은 50살을 맞아, 그리고 마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했던 40대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나는 혼자 가장 ‘낭만적인’ 여행을 하기로 했다. 50살 되는 새해 첫날에 백두산 정상에 올라 ‘남은 생의 절반은 부디 착하고 성실하게 살게 해달라’고 천지신에게 빌고 싶었다. 그건 ‘뻥’이고, 솔직히 말하면 백두산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보고 싶었다.

2021년 12월24일 베이징에서 백두산으로 연결되는 고속철도가 드디어 개통됐다. 베이징에서 지린성 창춘까지 가는 고속철도가 백두산(중국명 창바이산)까지 연결되면서 이제 베이징에서 백두산까지 불과 7시간23분이면 가닿을 수 있게 됐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개통된 백두산행 고속열차는 눈 쌓인 설원을 펄펄 날듯이 달려가는 ‘설국열차’라는 낭만적인 별칭이 붙여졌다.

백두산에 처음 간 것은 20여 년 전인 2000년 여름이다. 그때는 고속열차도 없었다. 베이징에서 백두산으로 직접 가는 기차가 없어, 옌지(연길)나 창춘(장춘)까지 3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간 다음 다시 백두산 근처로 가는 장거리 버스를 갈아타고 대여섯 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 오가는 일정이 너무 힘들었던 탓에 막상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봤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다시 그 긴 시간을 기차 타고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앞길이 아득해서 돌아갈 때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꼭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백두산 온천물에 삶아서 파는 달걀이 정말 맛있었고, 돈이 없어서 다시 개고생하며 30시간 이상을 기차 타고 돌아가야 했던, 고행의 순례길 같았던 여정뿐이다. 30시간의 기차여행보다 더 괴로운 일은 옆자리 남자가 쉴 새 없이 까먹으며 바닥에 수북이 내뱉던 해바라기씨 껍질을 봤던 일과 그 남자의 방귀 소리를 시시각각으로 들어야 했던 일이다. 그 뒤로 다시는 기차를 타고 백두산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백두산행 고속열차가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눈 쌓인 백두산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50살이 된 나를 위해 마치 누군가 특별히 준비한 맞춤 선물 같았다. 왜냐하면 한동안 잠잠하던 중국 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졌지만, 백두산이 있는 동북 지역은 최근 ‘확진자 제로’ 상태라 특별한 제한 없이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중국 내 몇 안 되는 ‘코로나 청정’ 지역이기 때문이다. 2021년 말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안은 급기야 12월27일 자정을 기해 도시 전면 봉쇄를 단행하면서, 2020년 1월23일 세계 최초로 도시가 봉쇄된 우한의 악몽을 재현하고 있다.

고속열차표는 비싼 편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고속열차표는 비싼 편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속열차

중국은 현재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 한 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에는 여행이나 출장을 갈 수 없고, 만일 업무를 보러 갔다가 그 지역에 확진자가 생기면 ‘저위험군’ 지역으로 안정되기 전까지 거주지 복귀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저위험군’ 지역이라 할지라도 베이징으로 올 때는 반드시 유전자증폭(PCR)검사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만 비행기나 기차 등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나도 만일 백두산에 갔다가 그 지역에서 확진자가 한 명 이상 발생하면 당분간 베이징에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된다. 50살이 되니 더는 무서울 게 없어졌는지, 나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백두산행 기차를 탔다.

중국 동북 지역으로 가는 고속열차는 베이징 차오양역에서 출발한다. 엄격한 방역정책 탓에 예전 같으면 연말연시 여행객으로 붐볐을 기차역이 휑할 정도로 한산하다. 원래 백두산은 10월 중순까지만 문을 열고 겨울에는 개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백두산 서쪽에 완다리조트가 개장하면서 아시아 최고 규모의 골프장과 스키장이 문을 열었고, 특급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사시사철 개방하고 있다. 강풍과 눈보라만 없으면 한겨울에도 천지에 올라갈 수 있다.

일등석과 이등석, 비즈니스석으로 나뉜 백두산행 고속열차 내부도 손님이 없어서 거의 모든 칸의 좌석이 절반 이상 비어 있었다. 가장 저렴한 이등석도 상당히 비싼 편이라, 일반 열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농민공(도시로 돈벌이 떠나는 농촌 노동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수기에는 오히려 비행기표 가격이 고속열차 이등석 가격보다 쌀 때도 있다.

2008년 베이징~톈진 고속열차가 중국 최초로 개통된 뒤 2021년 말까지 중국 대부분 지역에는 고속철도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됐고, 2017년부터는 중국 자체 기술로 만든 시속 350㎞ 이상의, 세계 최고 속도의 고속열차 푸싱하오(復興號)가 전국 31개 성에 걸쳐 운행되고 있다. 2021년 12월3일에는 윈난성 쿤밍과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잇는 동남아 고속열차도 개통됐다. 푸싱하오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설원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겨울 풍경을 상상했다. 한편으로는 2년 이상 계속되는, 여전히 암울한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는 중국이라는 고속열차 속 풍경을 떠올렸다.

방역 참사, 체제 방역, 체면 방역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2022년 10월 역사적인 3연임을 눈앞에 둔 시진핑 체제의 ‘정치방역’에도 큰 일조를 했다. 하지만 2021년 12월27일 이후 전면적으로 도시가 봉쇄된 시안에서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 없는 방역정책을 시행한 결과 수많은 비인도주의적인 ‘방역 참사’가 빚어졌고 총체적인 ‘체제 방역’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밤, 48시간 동안 유효한 유전자증폭검사 증명서가 4시간 지났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한 임신부가 시안의 한 병원 문 앞에서 영하의 날씨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유산하고, 심근경색 환자가 감염 위험 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해 숨진 사연 등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중국인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분노와 울분을 표출했다. 한 여성이 격리 중 터진 생리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방역요원들에게 생리대나 휴지를 구해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동영상이 퍼져나가자, 시안의 작가협회 주석은 공개적으로 이 여성을 향해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철딱서니 없게 (생리대나 달라고) 떼쓰느냐!”고 비난하는 글을 올려 파장을 몰고 왔다.

몇 년 전 중국 프로축구 세계의 승부조작 게임 내막과 갖가지 중국 사회의 병폐를 고발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전직 언론인 리청펑은 웨이보를 통해, 제로 코로나 정책은 사람을 위한 방역이 아니라 관료들과 국가의 체면 유지를 위한 ‘체면 방역’이며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비극이 되풀이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몇 년 전 자신이 쓴 책 <전세계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다>(全世界人民都知道)에서도 “만일 국민의 존엄을 희생해서 국가의 체면을 유지한다면 그 체제는 정말로 좋은 체제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기차를 탄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이거나 또는 강제로 커튼을 내린다면 창밖으로 아무리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기차가 약 7시간을 달려 설국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백두산이었다. 나는 소원대로 40대의 마지막과 50대의 첫날을 백두산에서 맞았다. 백두산 정상의 천지는 눈으로 뒤덮여서 꽁꽁 얼어 있었고 오십 평생에 그렇게 ‘몸서리나는’ 추위는 처음이었다. 베이징에 다시 돌아오기 위해 유전자증폭검사를 한 뒤 결과를 기다리면서, 간판에 ‘조선족 식당’이라고 쓰인 밥집에 들어갔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꼬마 아가씨가 주문을 받았다. 올해 12살이라고 했다.

고속열차의 종착역인 장백산역(백두산역).

고속열차의 종착역인 장백산역(백두산역).

얘야, 헌법 제2조 첫 줄을 아니?

알고 보니 ‘이름만’ 조선족 식당이고 주인장 부부와 딸인 꼬마 아가씨는 한족이었다. “한족이 왜 조선족 식당을 하냐”고 물어보자 그 당돌한 동북 꼬마 아가씨가 이렇게 대답한다. “한족이 조선족 식당을 하지 말라는 법이 헌법에 적혀 있나요?” 말끝마다 그 꼬마 아가씨는 ‘헌법’을 밥 먹듯이 들먹였다. “기본 밑반찬으로 김치 한 조각도 한 주냐”고 하자, 또 “무료로 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헌법에 있나요?”라고 대꾸한다. 크면 훌륭한 헌법학자가 되거나 법률가가 되겠다고 농했더니, 꼬마 아가씨가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질문을 던진다. “근데 아줌마는 왜 혼자 새해 첫날부터 백두산에 온 건가요? 설마 얼어 죽으려고 온 건 아니죠?”

‘50살에도 꿈이 있냐’고 해서 나에게 쌍욕을 얻어먹은 딸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었지만 나도 똑같이 되돌려줬다. “얘야, 50살 먹은 아줌마 혼자 새해 첫날부터 백두산에 오지 말라는 법이 헌법에 적혀 있니?” 그리고 한 가지 더. “얘야, 중국 헌법 제2조 첫 줄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아니?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고 쓰여 있단다. 이거 학교에서 가르쳐주니?”

글·사진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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