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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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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피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

‘부모 과외’까지 권하는 베이징 교육 일번지 황좡
등록 2021-06-13 04:50 수정 2021-06-18 01:29
황좡역 일대 학원건물이 몰려 있는 거리.

황좡역 일대 학원건물이 몰려 있는 거리.

밤 10시가 조금 넘은 한밤중에 휴대전화로 문자가 한 통 왔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의 담임이 보낸 문자다. 6월 말에 있는 생물과 지리 중카오(中考·고등학교 입학고사) 시험 모의고사 성적표다. 지리는 겨우 반 평균 점수를 턱걸이했고 생물은 평균보다 한참 밑도는 점수다. “가정에서 (학업 성적 향상에) 더 철저한 관심을 가져달라”는 짧지만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메시지가 첨부됐다. 방금 전까지 깔깔대며 보던 텔레비전 드라마 속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됐다. 아들 방으로 ‘쳐들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내지른 첫마디도 드라마 속 주인공 엄마가 아이를 달달 볶으며 하는 잔소리와 거의 유사했다. “다 외우기만 하면 되는 과목인데, 이걸 점수라고 받아왔어? 진짜 시험도 이렇게 보면 넌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도 못 가고 저 멀리 촌동네 고등학교나 가야 하는 거 알지? 이래도 정신 안 차리고 공부 안 할래!”

엄마가 갑자기 시험성적표를 보고 ‘꼭지가 돌아서’ 성난 얼굴로 자신을 갈구자 아들 녀석은 어쩔 줄 모르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리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나도 열심히 외웠는데 공부한 게 안 나오고 모르는 문제가 많이 나왔다고!”

엄마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백점짜리 시험지

최근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화제몰이를 한 드라마가 있다. <샤오서더>(小舍得. A Little Dilemma)라는 제목의, 중국 현행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다. 초등학생 자녀의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 중산층 가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는 이 드라마는 중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인 교육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인지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각기 초등학교 자녀를 둔 중산층 가정 학부모들이다. 그중 초등학생 딸을 둔 주인공 부부는 원래 공부보다는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더 중시했던, 한때 내가 아들에게 당부했던 신념처럼,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학부모였다. 반면 아들을 둔 또 다른 주인공 엄마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대치동 엄마’다. 각종 상장을 휩쓰는 아들은 우수한 학생이지만, 엄마는 만족을 못하고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최고 성적’과 ‘명문 사립 중학교’행 티켓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못 들어간다는 명문 학원의 우수 학생만 모아놓은 ‘금메달반’에 아들을 집어넣기 위해 온갖 치사하고 부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인공 엄마도 주변 학부모들 분위기와 ‘성적이 곧 인격’이 된 학교 현실에 굴복하고 결국엔 ‘용하다’는 학원을 찾아 고통스러운 ‘대치동 엄마’ 대열에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드라마 속 아이들은 엄마들을 향해 이렇게 울부짖는다. “엄마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백점짜리 시험지라고요!”

드라마 <샤오서더>에 등장하는 엄마들을 중국에서는 ‘지와마마’(鸡娃妈妈·병아리를 뜻하는 ‘지와’는 자녀의 성적을 향상하고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학부모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부른다. 그리고 중국 사회에 만연한 성적·입시 지상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교육 열풍을 ‘지와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닭’일까? 왜 중국에서는 자녀 교육에 올인하거나 비정상적인 교육 경쟁을 일컫는 사회적 유행어에 닭을 쓰는 걸까?

6월7일 대학입학시험이 치러진 황좡역 부근 베이징대 부속고등학교.

6월7일 대학입학시험이 치러진 황좡역 부근 베이징대 부속고등학교.

‘교육 열풍’ 일컫는 말에 왜 ‘닭’ 글자를 쓸까

1960년대 말부터 중국에서는 아주 해괴한 현상이 유행했다. ‘닭피 주사’ 맞기다. 당시 중국 사회에는 살아 있는 수탉의 피를 뽑아 사람 근육에 주사하면 불로장생한다는 미신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처음 도시에서 유행하던 현상이 점차 농촌으로 퍼졌다. 중국 문화비평가 주다커는 ‘닭피 주사의 기억’이라는 글에서 그 ‘미친 기억’을 이렇게 묘사했다. “집 근처 병원의 주사실 입구에는 매일 뱀처럼 긴 줄이 이어졌다. 줄을 선 사람들은 닭을 담은 바구니나 그물보자기를 들었고, 간호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서로 닭피 주사를 맞은 경험담과 들은 이야기를 교류했다. 땅바닥에는 온통 더러운 닭털과 닭똥이 널렸고, 곳곳에서 닭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났다. 닭피 주사를 맞으려는 사람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마치 전염병 같아서 그 시대 전체를 감염시켜갔다.”

문화대혁명으로 ‘미쳐 있던’ 중국 사회는 닭피 주사 열기가 더해져 과학과 이성이 마비된, 말 그대로 완전히 ‘미쳐버린’ 사회가 되었다. 닭피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마치 흥분제를 맞은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슈퍼맨 같은 활력이 생기고 늙은 사람은 회춘을, 젊은 사람은 하늘을 날 듯한 신묘한 기력이 생긴다는 ‘미신’이 과학처럼 퍼져갔다. 이 닭피 주사는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이 때문에 닭피 주사라는 말이 온갖 사회현상에 은유나 비유법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갑자기 흥분하거나 어떤 열정에 들떠서 떠드는 사람에게 ‘너 닭피 주사 맞았냐?’라고 놀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마치 닭피를 수혈하듯 온갖 좋다는 학원에 다니게 하고 과외를 시키는 중국 학부모의 집요한 열정 역시 전염병처럼 사회를 집단 감염시키는 또 다른 닭피 주사다.

베이징 지하철 10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하이뎬 황좡역은 가장 유명한 베이징 교육 일번지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이자 8학군 밀집 지역이다. 황좡역을 나오면 바로 거대한 빌딩숲이 나오고 그곳에는 베이징에서 ‘용하다’는 온갖 족집게 과외 학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일대는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 등 중국 최고 명문 대학이 포진했고 베이징에서 입시 성적이 가장 좋기로 소문난, 이른바 명문 초·중·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

베이징 지와마마들은 지하철 황좡역 일대에 결집한다. 황좡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보이는 인왕센터(银网中心) 건물과 중관촌 빌딩(中关村大厦) 일대는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 이후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은 학교 문 앞에서 대기하는 부모나 조부모 손에 이끌려 황좡역 부근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밤 9~10시까지 각자 성적에 맞는 ‘맞춤형 학원’에서 과외 공부를 한 뒤 다시 학원 앞에 대기하는 부모와 함께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용을 태우려면 ‘부모 과외’ 받으세요

베이징 황좡역 지하철 주변 카페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돼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지와마마들이 온종일 상주한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명문 학교와 학원 정보를 나누고 각자의 경험담을 교류한다. 그들은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헤어져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 뒤, 또다시 같은 장소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어디서 신선한 닭피를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정적인 토론을 벌인다.

카페 주변과 학원 주변에는 이런 지와마마를 겨냥한 ‘교육 사냥꾼’들이 포진하고, 이들은 이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혼자 있거나 모여 있는 지와마마를 향해 사명감을 띤 전도사처럼 돌진한다. “아이가 몇 학년이죠? 지금 무슨 학교에 재학 중입니까? 수학 성적 때문에 고민이라고요? 일단 저희와 함께 상담해보시죠. 상담은 무료입니다.”

중관촌 빌딩 앞에서 길 가던 나를 가로막고 ‘강제 상담’을 자청한 한 학원의 영업사원은 지와마마를 흉내 내며 다짜고짜 ‘비법을 알려달라’고 조르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자녀가 용이 되길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용머리에 올라타서 진두지휘해야 합니다. 비행기 타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봐야 땅이 제대로 보이듯이, 용머리에 올라타야지만 용의 몸통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용이라고 다 같은 용이 아닙니다. 자녀가 어떤 용이 되길 원하세요? 저희 학원에 등록하면 먼저 부모가 어떻게 용머리에 올라타는지 가르쳐주는 ‘부모 과외’도 무료로 해준답니다.”

중국 허베이성에는 헝수이고등학교가 있다. 원래 허베이성 헝수이 지방은 작고 가난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헝수이고등학교에서 2010년 이후 중국 최고 명문대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에 대량 합격자를 배출하면서 가장 유명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헝수이고등학교가 매년 허베이성에 할당된 베이징 명문 대학 입학정원을 싹쓸이하자 ‘헝수이 모델’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헝수이를 따라 배우자’는 ‘헝수이 정신’과 ‘헝수이형 인간’이 중국 사회 곳곳에서 회자됐다. 헝수이고등학교에는 매년 중국 전역에서 이 학교의 입시교육 모델을 배우러 오는 타 지역 관계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심지어 한국과 일본 등에서도 견학을 온다.

사실 헝수이고등학교의 입시 전략은 별다른 게 없다. ‘시험지의 바다’에서 매일 죽지 않을 정도로만 헤엄치며, 스파르타 군인처럼 강인한 군대식 규율에 맞춰 어떤 시험문제 유형에도 굴복하지 않고 술술 풀 수 있게끔 하루 24시간 각종 시험지를 반복해서 푸는 훈련을 한다. 헝수이고등학교에 걸린 핵심 구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오늘 미치면 내일은 휘황찬란할 것이다.” 예전에 닭피 주사를 맞으려 병원 앞에 줄을 서던 중국인들도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닭피 주사를 맞으면 몸이 마치 미친 듯이 흥분되고 피가 끓어올라 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휘황찬란한 내일’ 보장해주는 ‘닭피 주사’ 병원

지하철 황좡역 일대를 비꼬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은 황장역 일대를 ‘미친 공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늘 신선한 닭피 정보를 구하러 다니는 지와마마들에게 황좡역 일대는 자녀들의 ‘휘황찬란한 내일’을 보장해주는 닭피 주사 병원이다. 누가 더 건강하고 신선한 수탉의 피를 수혈받느냐에 따라 미친 듯이 펄펄 하늘 위로 날아갈 수 있는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착하기만 한’ 아들 녀석에게 나도 어디 가서 신선한 닭피를 구해서 ‘한 방’ 맞히고 싶은 심정이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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