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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의 가장 좋은 친구

물고기와 강 보호 활동 앞장서면서 낚시계 ‘상식’ 새로 쓴 버드 릴리
등록 2017-02-01 14:31 수정 2020-05-03 04:28
AP 연합뉴스

AP 연합뉴스

“물고기를 잡았다가 풀어주는 낚시꾼은 등 뒤에 까만 프라이팬을 숨기고 있는 법이지.” 살려 보낸다 싶지만 실제로는 프라이팬으로 물고기를 후려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낚시꾼들 사이에 전하는 속담이다.

그러나 이제는 물고기를 잡았다가 다시 풀어주는 것이 낚시인의 윤리로 여겨진다. 낚시여행 안내인들의 의무적 관행이기도 하다.

지금은 특별할 게 없지만 50여 년 전만 해도 낚은 물고기를 다시 풀어준다는 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었다. 강과 물고기를 보호하고 낚시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평생을 애쓴 미국인 버드 릴리(Bud Lilly)가 지난 1월4일 심장 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91.

몬태나주 정부는 릴리가 죽은 다음날 성명을 냈다. “우리는 진정한 스포츠맨을 잃었다. 릴리는 환경보호의 충실한 일꾼이자 몬태나의 낚시 공동체를 선도하는 목소리였다. 그는 언제나 ‘송어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제물낚시의 고수

고향인 미국 북부 몬태나주에서 줄곧 살아온 릴리는 젊은 시절부터 제물낚시의 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제물낚시는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움직이는 인조 미끼를 수면 위나 물속에 교묘하게 놓는 낚시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한 릴리는 이후 고등학교 생물 교사로 몇 년 일한 뒤 그만두고, 30대 중반부터 1982년까지 20여 년간 낚시용품 상점 ‘버드 릴리의 송어 가게’를 운영했다. 이곳은 낚시인들 사이에서 ‘메카’처럼 여겨졌다. 부인이 병을 얻고 릴리는 가게를 팔았지만 이후로도 낚시와 자연보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릴리 역시 송어를 음식으로만 봤다. “인생은 단순하지. 네가 큰 물고기를 잡았어, 그럼 죽여. 바보만이 그걸 다시 풀어주겠지.” 릴리가 낚시를 시작한 건 아버지와 함께 가족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크고 멋진 물고기를 잡는 건 자랑스러웠지만 그보다 집 안 식료품 저장고가 두둑해지는 게 더 기뻤다.

물고기를 낚고 가져가는 전통적 낚시법이 몬태나주 강들의 어류를 결국 다 없애버릴 수도 있겠다고 깨달은 건 릴리가 낚시 안내인으로 일하면서부터였다. 동시에 릴리는 몬태나주 정부가 부화장에서 자란 물고기 알을 트럭에 실어와 강에 버리듯 투척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느꼈다. 강물에 인공적으로 물고기를 대량 풀어넣고, 이를 낚시꾼들이 거둬가는 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해온 일이었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생존한 야생 물고기들은 인공 부화장에서 태어나 자란 물고기들보다 훨씬 크고 강했다. 릴리는 송어들이 낚시를 위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라 원래대로 자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낚시법의 오랜 기본을 바꾸는 게 릴리의 인생 목표가 됐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는 목표 이상을 이뤄냈다.

‘잡았다 풀어주기’ 운동의 메가폰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잡았다 풀어주기’에 회의적이었다. 몬태나주 리빙스턴에서 낚시용품점을 운영하는 존 베일리는 지역신문 에 말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들고일어날 기세였죠. 그런데 지금은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가져가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어요.” 릴리 이전에도 ‘잡았다 풀어주기’를 주장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릴리의 명성과 목소리, 노력이 가장 컸다.

몬태나 지역의 송어 보호단체 이사인 브루스 팔링은 “릴리는 메가폰을 갖고 있었다”고 비유했다. 릴리는 한번 마주친 사람도 절대 잊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환대를 베풀기로 유명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그는 많은 낚시인, 낚시산업 관계자와 친구가 됐는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손님이었다.

‘잡았다 풀어주기’ 운동은 릴리의 환경보호 활동의 일부일 뿐이다. 인공 양식장에서 자란 송어를 강물에 풀어온 주정부의 관행이 릴리 덕에 사라진 이후, 295km에 이르는 매디슨강을 끼고 있는 몬태나주는 ‘야생 송어의 천국’이란 명성을 얻었다.

릴리는 ‘트라우트 언리미티드’의 몬태나 지부를 처음 만들었고 초대 지부장을 맡아 일했다. ‘트라우트 언리미티드’는 송어·연어 등 강물에 사는 생명체와 물의 흐름을 보호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로 1959년 미시간에서 처음 시작됐다.

야생 송어와 깨끗한 강에 대한 열정 때문에 릴리는 자연스럽게 관련 입법에도 적극 관여했다. 릴리는 끊임없이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새로운 환경보호 계획을 제안했고, 반대로 물고기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정책은 어떤 것이든 무산되도록 로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1995년 ‘미래 어장 개선법’이 도입됐을 때, 릴리는 송어들이 야생 상태에서 산란할 수 있도록 물의 흐름과 강기슭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릴리는 몬태나주의 낚시 홍보 대사로도 10년간 활동했다. 그가 맞은 손님들 가운데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80여 명이 있었는데, 그중 60여 명이 몬태나의 매력에 빠져 그곳에서 새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을 사거나 투자했다고 한다.

또한 여성이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으로 보급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말년에는 부상당한 참전 군인, 특수교육 학생, 장애 아동을 돕는 활동에도 힘썼다.

최근 몇 년 사이 릴리는 시력이 많이 나빠져서 더 이상 낚시를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친구들과 낚시하러 나가 강둑에 앉아 조언을 건네곤 했다. 그는 친구들이 잡은 물고기를 볼 수 없었지만, 물고기가 잡힐 때 물이 출렁이는 소리만 듣고도 물고기의 크기를 정확하게 맞혔다고 한다. 또 물고기를 잡은 날짜와 시간대만으로 그 무게와 색까지 알아낼 만큼 강과 물고기는 릴리와 한 몸 같았다.

낚시인 대상 송어 방생 교육

죽기 한 해 전부터 릴리는 물고기를 잡았다가 아예 손대지 않고 강물에 방생하는 방식을 고안해서 낚시인들에게 교육해왔다. 간단한 동작으로 송어의 피부막을 보호해서 낚싯대에 걸린 송어들이 세균에 감염되지 않고 물속에 돌아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여전히 많은 낚시인들이 물 밖에서 물고기를 손으로 잡고 사진을 찍는다. 어류와 야생동물, 공원에 대한 많은 책자들이 이 사진을 사용하는데, 릴리는 이런 관행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랐다.

김여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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