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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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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주인공

등록 2003-10-09 00:00 수정 2020-05-03 04:23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1606~69)의 그림 가운데 ‘돌아온 탕자’라는 작품이 있다.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그가 말년에 그렸다는 이 그림의 주제는 신약성서의 이야기다. 한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유산을 미리 받아 길을 떠난 뒤 방탕한 생활로 거지가 돼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포옹하고 잔치를 열어 잃었던 아들을 되찾은 기쁨을 나눴다. 렘브란트는 인간의 사랑과 용서, 포용이 무엇인지를 그렸다. 초라한 모습으로 무릎 꿇고 앉아 용서를 비는 아들, 지그시 눈을 감고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아버지,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다른 형제들의 표정을 통해서.
국가정보원에 이어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 기소와 불기소, 추방 등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형사처벌 수위보다는 추방 여부로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송 교수가 “추방은 상상하기 싫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어 추방 논란은 더욱 뜨겁다. ‘추방’이 국가의 안녕질서 등을 위해 ‘외국인’을 강제로 국외로 쫓아내는 것인 만큼, 송 교수가 추방되면 그는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송 교수의 기자회견과 국정원·검찰 조사를 지켜보면 일부 혐의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그가 왜 친북인사가 됐고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으며, 자금은 왜 받았는지 등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것 같다. 분단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행적에 대해 분노와 동정이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솔직한 고백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해 송 교수는 억울해한다. 하지만 명쾌하지 않은 일련의 행적과 애매모호한 입장 설명 등은 그가 스스로 자승자박의 상황을 만들어낸 측면도 없지 않다. 불확실한 언론보도 또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시점에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아 이 땅의 한 부분이 되겠다고 했고, ‘경계인’이 아니라 남북 모두를 끌어안는 ‘화해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며 ‘준법서약서’까지 쓴 그를 추방하는 것은, 관용에 인색한 한국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民主政) 시대에 위험인물을 추방하던 제도인 오스트라시즘도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비밀투표로 추방을 결정했을 정도로 신중을 기했던 점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자식을 품에 안은 아버지는 조국의 모습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겨 쉬고 싶은 부모의 품과 같은 것이 조국이다. 비록 다른 형제들이 시기한다 해도 용서와 화해로 맞아주는 게 바로 조국이다. 법 집행은 엄격하게 하되, 추방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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