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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나오게 하는 타자

공갈포에서 ‘목황상제’로, 신고선수에서 ‘타격기계’로…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서 제2의 야구인생 맞은 박병호와 김현수
등록 2016-02-06 02:02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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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팀의 팬 입장에서 2011년 이전 LG 트윈스 박병호(사진 왼쪽)는 그냥 쉬어가는 타자였다. 고등학교 때 초유의 4연타석 홈런을 날렸고, LG에 1차 지명된 유망주였지만 프로 입단 이후에는 매년 2할을 넘기는 것이 버거워 보이던 수준 이하의 타자였다. 볼넷과 삼진의 비율은 참혹한 수준이었고, 눈 감고 휘두르다 어쩌다 하나 걸리면 홈런이 나오는, 이른바 ‘공갈포’의 대명사 같았다. 어쩌다 박병호에게 안타를 맞으면 방심한 투수를 비난하기도 했다.

물론 2011년 이전의 이야기다. 인내가 바닥난 LG 구단에 의해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된 뒤 박병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이제 다른 팀의 팬 입장에서 넥센과의 경기를 보면 박병호의 타석은 공포스러웠다. 팔을 다 펴지도 않고 몸통의 회전만으로 홈런을 때려버리는 한국인의 모습은 경이적이었다. 어쩌다 응원하는 팀의 투수가 그를 삼진으로 잡아내도 기쁨보다는 극심한 공포와 긴장이 지나간 이후의 탈진이 몰려왔다. 2011년 이후, 넥센 히어로즈의 4번 타자 박병호는 한국에서 혼자 야구만화를 써나가던 남자였다. 목동야구장에 오는 모든 투수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남자,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온 박병호는 위대한 타자가 되었다. 모두를 한숨 쉬게 하던 그 공갈포는 지금 목동의 신, ‘목황상제’라 불린다.

김현수(사진 오른쪽)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순간 병살타를 치고 목 놓아 울던 그의 모습은 두산 팬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2016년 1월 미국으로 출국하던 날, 공항에 나온 가족들과의 이별 과정에서 김현수는 배웅하는 모친과 함께 또 눈물을 흘렸다.

2005년 8월, 청소년 대표로 발탁돼 훈련 중이던 고등학교 3학년 김현수의 눈물이 시작되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같이 훈련 중이던 청소년 대표 전원이 프로팀에 지명받았지만, 끝내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해 2차 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 64명 중 그는 ‘밑져야 본전’도 아닌 선수였던 것이다.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청소년 대표 외야수는, 계약금도 받지 못한 채 신고선수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해야 했다. 3년 뒤, 국가대표가 된 신고선수는 중국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일전에서 일본 최고 마무리투수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지금, 사람들은 그를 ‘타격기계’라 부른다.

도대체 ‘답이 안 나오는 선수’였던 공갈포, ‘밑져야 본전’ 취급도 받지 못했던 신고선수, 둘은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나란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한때 팀에서 더 이상의 미래를 포기했던 공갈포와,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신고선수는 1년 내내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집중 관찰 대상이 되었고 지금은 미국으로 모셔가는 인물이 된 것이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 혼자 손바닥 껍질이 몇 번이나 뒤집어지도록 배트를 휘두른 박병호와, 모두가 외면했을 때 스스로 구단을 찾아가 연습생으로 시작한 김현수는 지금 한국의 좌우 타석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다.

스포츠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박병호와 김현수의 전진을 보고 있으면, 우리 주변의 답이 안 나오는 인물들과 외면받은 인생들을 돌아보게 된다. 혹시 주변에 우리가 묻어버린 가능성과 외면해버린 재능들이 숨어 있지 않은지, 그들에게 마치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처럼 실망과 조롱을 난사해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다. 우리가 늘 사람에 대한 심미안과 선구안을 의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올해부터 이제 목동의 목황상제와 잠실의 타격기계는 각자 미국 미네소타 트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선수가 되어 야구를 시작한다.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자유계약(FA) 100억원의 시대를 열어젖힐 선수들이었으나, 이들의 꿈이 고작 야구 부자가 되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택할 만큼 시시하지는 않다. 류현진과 강정호처럼 처음부터 불을 뿜었던 선수들과 달리 실패한 과거를 안고 있고 환경에 예민한 선수들이라 기대만큼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성공을 응원하지만 실패하면 또 어떠랴. 비난과 조롱이 아니라, 격려와 인내가 결국 사람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누구보다 극적으로 보여준 이들 아니겠는가. 그저 결과에 부담 갖지 말고 마음 편하게 야구하시길 바란다. 우리의 박수는 이미 장전 완료되었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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