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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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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한 삼킨 그대 올가을 행복하시라

흔들림 없는 공수 전력에 팀워크도 탄탄
거칠 것 없는 LG 트윈스 ‘진격의 여름’
등록 2013-07-23 13:03 수정 2020-05-03 04:27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 김인수(가명)씨.김인수 제공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 김인수(가명)씨.김인수 제공

한국 프로야구팀들은 확실한 캐릭터가 있다. 주력 선수의 트레이드가 활성화돼 있지 않고 고만고만한 선수 자원으로 9개 팀이 운영되는 리그이다보니 비슷비슷한 시즌 순위가 수년간 되풀이된다. 새로운 슈퍼스타의 등장보다는 기존 선수들의 집단 각성이 있어야 순위 반등이 가능하다. 삼성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래 여전히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다. 두산의 발야구는 수년째 고성능 엔진을 유지 중이다. 선수층이 얇은 탓에 시즌 초반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다가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지면 급속히 몰락하는 넥센은 매년 여름이 공포스럽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선수층이지만 매년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KIA의 감독은 여전히 비판받는다. 시범경기만 잘하다가 시즌이 시작되면 처절하게 몰락하던 롯데는 ‘봄데’라는 오명을 씻는 데 8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야구팬들이 LG 트윈스라는 팀을 설명하는 데는 ‘DTD’라는 알파벳 세 글자면 충분했다.

‘DTD’는 ‘Down Team is Down’이라는 ‘콩글리시’의 약자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내려올 팀은 내려온다’는 의미로 쓰인다. 2005년 약체였던 롯데가 시즌 초 상승세를 타자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감독이 “여름이 되면 결국 성적이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겠느냐”고 말한 인터뷰에서 유래했다(그해 롯데는 여름이 되자 정말로 순위가 하락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김재박은 다음해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트윈스를 설명하던 세 글자, DTD

‘DTD’의 원조인 롯데 자이언츠가 2008년 이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DTD는 다른 팀 팬들이 LG 트윈스를 조롱하기 위한 좋은 재료로 사용되었다. 시즌 초반 잠깐 반짝하다가도 여름이 다가오고 리그가 거듭될수록 라이벌 팀의 팬들은 LG 트윈스에 ‘DTD’라는 주문을 걸었고 LG는 지난 10년간 번번이 이 악마 같은 주문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LG 트윈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2002년, 삼성의 마해영에게 한국시리즈 최초의 끝내기 역전 홈런을 맞고 패하던 그 쓸쓸하던 순간이 마지

막이다. 이제는 추억의 명승부로 레전드 영상으로 소개되곤 하는 그 경기부터 지난 10년간 LG는 한 번도 8개 팀 중의 절반인 4위 안에 들지 못했다(그사이 3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확률의 스포츠인 야구에서 8개 팀 중 4위까지 가능한 포스트시즌 진출에 10년 연속 실패할 확률은 0.098%다(이전까지의 기록은 롯데 자이언츠의 7년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LG 트윈스 팬’은 한국에서 가장 안타까운 취미생활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지난 7월17일, 2013년 프로야구 전반기가 끝났다. 전반기 마지막 시합에서 LG 트윈스는 6연승을 거두며 45승31패, 승률 0.592로 1위 삼성에 불과 0.5게임 뒤진 2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2013년 전반기의 LG는 두려운 팀이었다. 시즌 초 강세 뒤 5월에 한때 승률이 5할 밑으로 내려가며 악몽 같은 DTD가 재현되는 듯했지만 2013년의 LG는 ‘내려갈 팀’이 아니었다. 5월 말 KIA 타이거즈를 스윕하며 시작된 LG의 진격은 찬란했다. 8번 연속 위닝시리즈를 이어갔고 전반기 내내 단 한 번의 완봉패도 당하지 않았다. 리즈는 연일 직구라는 이름의 마구를 뿌렸고, 우규민과 신정락의 각성이 시작됐으며, 류제국은 클래스를 증명해 보였다. 무너지는 것에 익숙했던 불펜진은 리그 최고의 철벽을 쌓았고 전반기에 7승20세이브를 올린 마무리 봉중근은 0.78의 방어율로 상대팀에게 통곡의 벽으로 군림했다. 타격 30걸 안에는 3명밖에 없지만 필요할 때 반드시 때려내는 타자들로 구성된 팀타율은 2위다. LG 트윈스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던 선수들의 개인주의는 보이지 않는다. 고참들은 진중했고 신참들은 진지했다. 누구도 멋을 부리지 않았고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특별한 전력 보강 없이 지난 10년간의 한을 고스란히 간직한 선수들이 집단 각성을 통해 이뤄낸 성적이다.

전력 보강 없이 선수들 각성으로 이뤄낸 성과

2013년의 LG는 객관적인 강팀이다. LG 트윈스의 잃어버린 10년을 존경한다. 그리고 마침내 깃발을 휘날릴 당신들의 가을을 응원한다. 그 10년을 견뎌낸 당신들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과거 7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롯데 자이언츠 팬이 보내는 진심이다.

김준 칼럼니스트·사직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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