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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냐 이가와냐

등록 2013-03-23 06:50 수정 2020-05-03 04:27

3월의 마지막 주말에 한국과 미국, 일본 프로야구가 일제히 막을 올린다. 올해는 류현진(26·LA 다저스)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오랜만에 미국 본토 야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류현진은 선발 등판한 두 차례의 시범경기에서 초반에 잘 던지다가 4회에 무너지기를 되풀이했다. 애초 3~4선발로 점쳐졌던 류현진이 선발 경쟁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시즌 개막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류현진을 포함해 무려 7명의 투수가 선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동양인 포스팅 금액 1~3위 성적
그러나 류현진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친다. 시범경기에서 제대로 얻어맞은 타구가 별로 없는데다 전반적인 투구 내용도 좋아지고 있다. 특히 커브 등 변화구의 제구력이 점점 안정을 찾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직구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돈 매팅리 감독과 포수 A. J. 엘리스도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통해 “류현진은 여전히 좋은 공을 던진다. 아직 힘을 전부 쏟고 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류현진의 존재 가치는 얼마나 될까. 류현진은 다저스 입단 당시 2573만여달러(약 280억원)라는 엄청난 포스팅 금액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적료 기준으로 역대 동양인 4위에 해당한다. 게다가 6년간 3600만달러(약 390억원)에 계약하면서 연봉 대박도 터뜨렸다. 일본의 다르빗슈 유(27·텍사스 레인저스·6년 6천만달러)와 마쓰자카 다이스케(33·보스턴 레드삭스·6년 5200만달러)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많은 연봉이다.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투자한 금액은 자그마치 6173만여달러(약 670억원)에 이른다. 미국 시장에서 ‘괴물’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연봉 대박을 터뜨렸던 역대 일본인 ‘괴물투수’들의 성적은 올 시즌 물음표가 찍힌 류현진의 성적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우선 류현진과 곧잘 비교되는 이란계 혼혈 다르빗슈는 2011년 역대 동양인 최고 포스팅 금액(5170만3411달러·약 562억원)으로 화제를 뿌리며 텍사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지난해 16승9패, 평균자책점 3.90, 탈삼진 221개로 메이저리그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특히 전반기 10승5패로 다승 공동 3위에 오르며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우완 투수로 당당히 올스타에 선발됐다.
마쓰자카는 2006년 당시로선 동양인 최고 포스팅 금액(현재는 역대 2위)인 5111만1111달러(약 556억원)에 보스턴의 빨간 양말(레드삭스)을 신었다. 마쓰자카는 입단 첫해인 2007년 시즌에 15승12패, 평균자책점 4.40으로 무난하게 데뷔하더니 이듬해인 2008년 18승3패, 평균자책점 2.90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부상으로 한 달 가까이 개점 휴업했지만 노모 히데오(45·16승 세 차례)를 넘어 역대 일본인 최다승(18승)을 기록했고, 사이영상 투표에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4승, 2010년 9승, 2011년 3승에 그치더니 급기야 지난해에는 팔꿈치 부상 후유증으로 1승7패, 평균자책점 8.28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긴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 어쨌든 두 ‘일본인 괴물투수’는 데뷔 첫해 괜찮은 성적표를 남겼다.
동양인 포스팅 금액의 역대 3위 선수는 2006년 2600만194달러(약 283억원)에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이가와 게이(34)다. 이가와는 역대 일본인 투수 가운데 류현진과 가장 닮았다. 같은 왼손 투수에다 체격도 186cm, 93kg으로 류현진(187cm, 97kg)과 엇비슷하다. 또 평균 직구 구속(90마일·145km)이 비슷하고,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점도 닮았다. 이가와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2003년 20승5패, 평균 자책점 2.80으로 ‘일본의 사이영상’으로 불리는 사와무라상을 받았다. 2006년 18승6패, 평균자책점 2.23으로, 신인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류현진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가와는 양키스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했다. 입단 첫해인 2007년 2승3패, 평균자책점 6.25를 기록하더니 이듬해엔 1패, 평균자책점 13.50이라는 최악의 피칭을 보인 뒤 결국 마이너리그로 내려앉았다. 남은 계약 기간 3년을 보낸 마이너리그에서 통산 성적은 36승25패, 평균자책점 3.83. 이가와는 지난해 일본으로 유턴해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이대호와 한솥밥을 먹었다. 이가와의 실패는 류현진에게 타산지석이다. 이가와는 한마디로 미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했다.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밀리면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다가 난타를 당했다. 그는 미국 생활을 청산하면서 “지난 5년 동안 잃어버린 것은 없다. 모든 경험은 피와 살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일본 무대에 복귀했다.
약이 될 노모의 경험담
류현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메이저리그 타자의 습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류현진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미국 프로야구로 직행한 첫 번째 선수다. 그는 국내 무대에서 바깥쪽 승부를 즐겼다.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바깥쪽 직구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든 뒤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으로 삼진을 낚아냈다. 그러나 미국의 사정은 다르다. 바깥쪽이건 안쪽이건 공이 조금만 높으면 그대로 장타로 이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12년 동안 123승을 쌓은 노모 히데오의 경험담은 류현진에게 약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일부러 높은 공을 던져 헛스윙이나 뜬공을 유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일본에선 맞아봐야 2루타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선 홈런이었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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