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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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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과 혁신의 축구협회를 바란다

등록 2013-03-02 12:33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월28일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당선된 정몽규 신임 회장이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전임 조중연 회장이 당선되자마자 일주일 내에 협회 집행부를 재구성한 것에 비하면 느린 속도다. 물론 전임 회장은 기술위원장·전무·부회장을 거쳐 당선됐으니 그저 집무실만 바꾸면 될 정도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몽규 회장에게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부회장단, 집행부, 이사진 등을 새로 구성하고 자연스레 국장급 이하 주요 보직의 인사 이동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연구부서 필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 인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 홍보 문구. 유전자 검사 기관에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 인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 홍보 문구. 유전자 검사 기관에 친자확인을 의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기왕에 심모원려를 하는 상황이라면 몇 마디 충언을 해도 좋을 듯하다. 우선, 다른 사안에 비해 작지만, 그러나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는 현안을 생각해보자. 조광래 전임 감독의 잔여 임금 문제다.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협회 일방의 결정으로 경질(다른 표현으로는 해고)됐으므로 협회는 잔여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으나 코치진들의 이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 부분은 미결 상태다.

이에 정몽규 회장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문제가 됐던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중요한 사안이다. 단지 이전 집행부 때 있었던 ‘껄끄러운 문제’를 그 무슨 ‘결자해지’나 ‘탕평책’ 같은 정치적 수사로 미봉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협회가 대표팀 감독을 어떻게 생각할지, 책임을 묻되 권한 또한 존중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사안이다. 전임 회장 때 미결된 껄끄러운 문제를 ‘털고’ 넘어간다는 식이 아니라 ‘보라, 새 회장과 집행부는 새 술을 반드시 새 부대에 담는다’는 일종의 선언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 새 집행부를 생각해보자. 2월21일 현재 새 집행부와 이사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아마 3월 초순에 새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다. 일종의 자문역이지만 긴급한 상황일 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부회장단에 축구인 두세 명과 관료 출신, 국군체육부대 출신, 국제관계 전문가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구성되는 부회장단은 합리적인 자문과 축구계 화합에 기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옥상옥’의 결정 기관이 돼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이사진과 사무총장 시스템의 집행부 재구성이다. 그동안 협회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이용수 세종대 교수와 신문선 명지대 교수의 이름이 들려온다. ‘현대중공업’ 출신이지만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축구인들의 신망을 받기도 했던 가삼현 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이름도 들려온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 이름도 있다. 의결기구의 변화에 따라 현 김주성 사무총장 체제를 유지할지, 만약 변화를 준다면 국장급 인사 이동은 어떻게 될지도 관심거리다.

이른바 ‘지면 발령’이라고 해서 이 모든 하마평이 축구 담당 기자들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한마디 더 얹어도 되겠다. 상당한 능력과 국제적 네트워크, 무엇보다 선진 축구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노력해온 차범근 감독도 논외의 인물은 결코 아니다. 아니, 지금은 이쯤에서 한 뼘 재고 저쯤에서 또 한 뼘 재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당선 이후 한 달 가까이 되었으니 이미 세밀한 검토는 마쳤을 것이다. 지금은 결정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그야말로 과감한 탕평으로 수많은 연고와 서열과 악연으로 갈래갈래 찢어진 축구계를 화합해야 한다. 축구장에서 서로 모른 체하며 씁쓸히 돌아서는 풍경을 없애야 한다. 협회의 능력 있는 실무진들이 ‘바깥’ 사람들의 고견을 들으려 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던, 그런 필요 이상의 긴장도 없애야 한다. ‘바깥’에 있는 사람 중에 신망과 능력이 입증된 사람을 과감히 발탁해 말의 책임과 실행의 의무를 안팎의 모두가 무겁게 받아들여 그야말로 한국 축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데 힘과 지혜를 모으는, 그런 판을 짜야 한다.

이참에 두 가지 더 제안하고 싶다. ‘박종우 사태’에서 보듯이 자칫 한국 축구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각급 국가 대항전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한다. 이 글로벌 시대에 맞게 다양한 연구교육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축구의 역사, 각 대륙의 문화, 유럽의 혼란한 상황, 축구가 지닌 민족주의적 성격과 글로벌 성격의 대립과 모순 등을 폭넓게 연구하고 다방면으로 제안할 수 있는 연구부서가 절실하다. 이제는 해외 원정 때 현지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 정도를 걱정하는 단계를 훌쩍 넘어섰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축구의 위상과 과제를 상시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국제국·경기국·홍보국 등 각 실행 주체에 제공하는 부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부서는 한국 축구의 역사를 집대성하고 총정리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공간 구성이 조직의 성격을 말한다

마지막 건의는 협회 사무 공간의 리모델링이다. 이따금 찾아가보면 전형적인 ‘칸막이 시스템’이다. 각 층에 높다랗게 칸막이가 쳐져 있어 인간적 왕래와 자연스런 대화를 차단한다. 각 사무 공간 역시 획일적인 파티션이다. 업무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소파들도 치워버리는 게 낫다. 활기찬 공간이라기보다는 서열과 권위주의의 공기가 흐른다. 그 디테일까지 제안할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유관 기관, 협조 관계, 직위 등을 고려하되 그 모든 것이 일상적으로 소통될 수 있게 사무실의 합리적 재배치와 시원하고 활기찬 리모델링을 하기 바란다. 정말 이번만큼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보자.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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