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잊히지 않는, 어릴 때 본 TV 속의 인상 깊었던 스포츠 장면은, 김일의 박치기나 박종환의 축구나 염동균·김성준·김상현·박찬희·김태식·김철호·김환진·장정구 등의 원투 스트레이트도 있었지만, 할렘농구단의 덩크슛이다. 할렘농구단의 ‘농구쇼’를 보면서, 저렇게 하면 억전억승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즐거운 ‘쇼’였다.
게다가 할렘농구단은 ‘선교’의 목적도 뚜렷했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했다고 한다’고 쓰는 까닭이 있다. 그들의 농구쇼를 보면서 선교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교 활동은 경기장 바깥에서 이뤄졌다. 만약 어느 ‘축구단’이 선교와 봉사를 목적으로 창단돼 순수하게 아마추어리즘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문제될 게 없다. 축구는 얼마든지 거룩한 종교 활동의 아름다운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규 프로리그에 참여해 해당 연고지의 시민과 축구팬의 성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프로팀’이라면 축구와 종교는 분리돼야 한다.
경기도 안산을 연고지로 하는 할렐루야 축구단이 있었다. 지금은 연고지를 이전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재창단에 가깝다. 경기도 고양으로 옮겨 ‘고양 Hi FC’로 출범하며 올해부터 K리그(2부 리그)에 참여한다. 이렇게 ’제도‘ 안으로 들어온 팀이라면 비록 구단의 출범 배경이나 선수단의 종교적 특징이 강하더라도 스스로의 자제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령탑인 이영무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그는 전신 할렐루야 팀을 맡았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고양 Hi FC를 이끌면서도 그렇고, 특히 2006 독일월드컵 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약속된 의무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뒤섞어버리곤 했다.
2006년 3월12일치 기사를 보자. 독일월드컵 본선을 3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영무 당시 기술위원장은 “대표팀을 통해 독일월드컵이 복음 월드컵, 선교 월드컵으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해달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게 하고 한국에 4강이라는 기적적 성적을 거두게 해 그분의 의도를 알렸다”고 하거나 “태극호에 승선할 ‘믿음의 선수들’ 면면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실지 자못 기대된다”고 하거나 “전세계적으로 골을 넣고 그라운드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팀은 한국뿐”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당혹스럽다. 당시 미국 전지훈련 때는 개신교 선수들만 따로 모아 종교의식을 갖기도 했는데 이때 다른 선수들의 심경은 어떠했겠는가.
어찌된 일인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뿌리가 되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바로 그 나라, 스위스 팀에 우리는 석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세속의 결과로 거룩한 종교적 가치를 비아냥거리려는 게 아니다. 엄격히 분리돼야 할 사회적 의무와 종교적 신념을 뒤섞어버리면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고양 Hi FC를 생각해보자. 프로팀이다. 팀의 종교적 성격과 다소 무관하게 팀이 구성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신변이 불안한 현재의 2부 리그 상황에서 비기독교인 선수들이 겪어야 할 심적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비기독교인 축구팬들의 일반 감정이나 공세적 전도 활동에 대해 비판적인 신자들의 마음도 고려해야 한다. 고양 Hi FC는 ‘연고지를 가진 프로팀’이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구단은 고양에 둥지를 틀며 종교적 색채를 가급적 배제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그러나 1월11일 중남미 4개국 전지훈련 겸 자선투어를 떠난 고양 Hi FC는 중간 기착지인 미국 뉴욕에 마련된 환영식에서 예배와 간증을 하고 찬송을 했으며 곧 중남미로 날아가 경기장 안팎에서 매우 직접적인 선교 중심의 활동을 펼쳤다. 온두라스에서 선수단은 하프타임 때 쉬거나 작전타임을 갖기보다는 그라운드에 모두 나와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워십댄스’를 췄다.
귀기울이는 안내문 나왔으니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활동이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할렘농구단’처럼 순수한 선교와 자선을 위한 팀을 만들어 활동해야 하고 그럴 때도 해당 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관습을 존중해야 한다. 이영무 감독은 이 겨울에 명실상부한 ‘프로팀’이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다. 겨울 전지훈련을 통해 체력과 전술적 능력을 극대화해야 하는 기간이다. 프로팀이라면 말이다.
다행히 구단 홈페이지는 축구계 안팎의 이런 비판에 귀기울이는 안내문을 올렸다. “애정을 갖고 쓴소리와 조언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과 교류”를 도모할 것이며 이는 “선교의 의미가 아닌 봉사의 의미로서 이해”해달라고 썼다. 또한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과 프로축구연맹의 권고와 고양시 축구팬들의 보편적 정서에 부합하여 K리그 공식 경기에서 집단적인 종교적 표현”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부디 그 약속이 아름답게 이뤄지길 바란다. 고양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그 약속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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