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2일 대전충무체육관에 모인 관중은 스포츠의 의외성에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 3라운드에서 남자부 선두를 질주하던 삼성화재가 6개 팀 중 5위를 달리던 러시앤캐시에 덜미를 잡혔기 때문. 그것도 세트스코어 3-0의 완패였다. 삼성화재는 1·2라운드에서 러시앤캐시에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둔데다 1위와 5위의 대결이라 이변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날 새삼스럽게 주목받은 이는 양팀 사령탑이었다. 김호철과 신치용. 두 감독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나 무려 45년 동안 라이벌로 살고 있다. 현대캐피탈 사령탑에서 물러났던 김호철 감독이 올 시즌 러시앤캐시 감독으로 복귀해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다시 코트에서 뜨거운 승부를 펼치고 있다.
두 감독이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67년이다. 김호철 감독은 1955년 1월13일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밀주초등학교 6학년 때 새로 생긴 배구부에 들어가 처음 배구공을 만졌다. 신치용 감독은 1955년 8월26일 경남 거제 장승포 출신으로, 부산 아미초등학교로 유학을 갔다가 배구를 시작했다.
선수 시절엔 똑같이 세터였다. 김 감독은 키 175cm, 몸무게 68kg으로 체구는 작은 편이지만 선수 시절에 굉장히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 신치용 감독은 184cm에 88kg으로 당시 세터치고는 장신이었다. 군대도 같은 날 들어갔다가 같은 날 제대했다.
두 감독 모두 스포츠 가족이라는 점도 닮았다. 신 감독의 부인은 여자농구 국가대표 출신 전미애씨고, 김 감독의 부인 역시 여자배구 국가대표를 지낸 임경숙씨다. 신 감독은 슬하에 딸 둘을 뒀는데, 둘째딸이 여자프로농구 선수 신혜인씨다. 김 감독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는데, 두 자녀 모두 운동선수다. 딸은 이탈리아 프로배구리그에서 활약 중인 김미나 선수고, 아들 김준은 이탈리아에서 골프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공통점이 많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신 감독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스타일인 반면 김 감독은 외향적이고 다혈질이다. 신 감독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덕장’이라면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파이팅을 주문하는 전형적인 ‘용장’이다. 신 감독은 얼굴 표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냉철한 남자’인 반면 김 감독은 극적인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바닥에 드러누울 정도로 ‘뜨거운 남자’다. 술은 신 감독이 폭탄주를 즐겨 마실 정도로 두주불사형이지만 김 감독은 맥주 몇 잔에도 금세 취한다.
스코어 41-39, 역대 최장시간 접전현역 시절 김 감독은 스타였지만 신 감독은 무명 선수였다. 김 감독은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리며 만 39살까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신 감독은 만 26살에 일찌감치 은퇴했다. 김 감독은 태극마크를 달고 1978년 이탈리아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4강과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구며 1980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했고, ‘마술사’ ‘황금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MVP를 2번이나 차지했다.
신 감독은 이른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한국전력 코치로 출발해 국가대표 코치를 4년 역임한 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을 맡았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은퇴한 뒤 1999년부터 4년 동안 이탈리아 프로리그 밀라빌란디아와 트리에스테의 감독을 역임했다.
두 감독이 본격적으로 라이벌 관계가 된 것은 10년 전이다. 김 감독이 2003년 귀국해 현대캐피탈 감독을 맡았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신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으려고 김 감독을 영입했다. 2003년부터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까지는 신 감독의 삼성화재가 계속 챔피언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2004년 3월, 삼성화재의 77연승 대기록을 저지한 데 이어 2006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마침내 삼성화재의 슈퍼리그-V리그 10연패를 저지하며 현대캐피탈의 우승 한을 풀었다. 현대캐피탈은 2007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두 감독은 당시까지 프로 출범 이후 나란히 두 차례씩 우승을 주고받았다.
팽팽하던 균형은 2008년부터 기울어졌다. 당시 신 감독의 삼성화재는 챔피언전에서 현대캐피탈의 V리그 3연패를 저지하며 마침내 슈퍼리그-V리그 통산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까지 5연패에 성공하며 삼성화재 독주시대를 다시 열었다.
두 감독은 만날 때마다 명승부를 펼쳤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경기는 2008년 4월10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전 1차전이다. 두 팀은 세트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에서 프로배구 역대 한 세트 최장시간인 44분 동안 접전을 펼쳤다. 16번의 듀스 공방 끝에 양팀 합쳐서 무려 80점이 나왔다. 결국 삼성화재가 41-39로 현대캐피탈을 누르고 3세트를 따냈고, 4세트까지 이겨 세트스코어 3-1로 승리를 거뒀다.
역대 전적 80전 51승29패두 감독의 역대 전적은 80전 51승29패로 신치용 감독이 22번 더 이겼다. 챔피언전에서는 7시즌 연속 만났는데, 신치용 감독이 5번, 김호철 감독이 2번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전력은 러시앤캐시보다 삼성화재가 앞선다. 하지만 두 감독의 라이벌 대결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45년 우정의 승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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