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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신치용 숨막히는 45년 승부

등록 2013-01-19 00:15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2월22일 대전충무체육관에 모인 관중은 스포츠의 의외성에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 3라운드에서 남자부 선두를 질주하던 삼성화재가 6개 팀 중 5위를 달리던 러시앤캐시에 덜미를 잡혔기 때문. 그것도 세트스코어 3-0의 완패였다. 삼성화재는 1·2라운드에서 러시앤캐시에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둔데다 1위와 5위의 대결이라 이변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의 생가를 향해 난 길에 동화처럼 봄꽃이 만개했다. 김진 변호사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에 먼저 당도한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 마실에 나섰다. 김진 제공

강원도 강릉에 있는 허난설헌의 생가를 향해 난 길에 동화처럼 봄꽃이 만개했다. 김진 변호사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에 먼저 당도한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 마실에 나섰다. 김진 제공

냉철한 남자 vs 뜨거운 남자

이날 새삼스럽게 주목받은 이는 양팀 사령탑이었다. 김호철과 신치용. 두 감독은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나 무려 45년 동안 라이벌로 살고 있다. 현대캐피탈 사령탑에서 물러났던 김호철 감독이 올 시즌 러시앤캐시 감독으로 복귀해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과 다시 코트에서 뜨거운 승부를 펼치고 있다.

두 감독이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67년이다. 김호철 감독은 1955년 1월13일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밀주초등학교 6학년 때 새로 생긴 배구부에 들어가 처음 배구공을 만졌다. 신치용 감독은 1955년 8월26일 경남 거제 장승포 출신으로, 부산 아미초등학교로 유학을 갔다가 배구를 시작했다.

선수 시절엔 똑같이 세터였다. 김 감독은 키 175cm, 몸무게 68kg으로 체구는 작은 편이지만 선수 시절에 굉장히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 신치용 감독은 184cm에 88kg으로 당시 세터치고는 장신이었다. 군대도 같은 날 들어갔다가 같은 날 제대했다.

두 감독 모두 스포츠 가족이라는 점도 닮았다. 신 감독의 부인은 여자농구 국가대표 출신 전미애씨고, 김 감독의 부인 역시 여자배구 국가대표를 지낸 임경숙씨다. 신 감독은 슬하에 딸 둘을 뒀는데, 둘째딸이 여자프로농구 선수 신혜인씨다. 김 감독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는데, 두 자녀 모두 운동선수다. 딸은 이탈리아 프로배구리그에서 활약 중인 김미나 선수고, 아들 김준은 이탈리아에서 골프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공통점이 많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신 감독은 내성적이고 조용한 스타일인 반면 김 감독은 외향적이고 다혈질이다. 신 감독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덕장’이라면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파이팅을 주문하는 전형적인 ‘용장’이다. 신 감독은 얼굴 표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냉철한 남자’인 반면 김 감독은 극적인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바닥에 드러누울 정도로 ‘뜨거운 남자’다. 술은 신 감독이 폭탄주를 즐겨 마실 정도로 두주불사형이지만 김 감독은 맥주 몇 잔에도 금세 취한다.

스코어 41-39, 역대 최장시간 접전

현역 시절 김 감독은 스타였지만 신 감독은 무명 선수였다. 김 감독은 ‘컴퓨터 세터’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리며 만 39살까지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신 감독은 만 26살에 일찌감치 은퇴했다. 김 감독은 태극마크를 달고 1978년 이탈리아 세계남자배구선수권대회 4강과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일구며 1980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했고, ‘마술사’ ‘황금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MVP를 2번이나 차지했다.

신 감독은 이른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한국전력 코치로 출발해 국가대표 코치를 4년 역임한 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을 맡았다. 김 감독은 이탈리아에서 은퇴한 뒤 1999년부터 4년 동안 이탈리아 프로리그 밀라빌란디아와 트리에스테의 감독을 역임했다.

두 감독이 본격적으로 라이벌 관계가 된 것은 10년 전이다. 김 감독이 2003년 귀국해 현대캐피탈 감독을 맡았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신 감독이 이끄는 삼성화재의 독주를 막으려고 김 감독을 영입했다. 2003년부터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까지는 신 감독의 삼성화재가 계속 챔피언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2004년 3월, 삼성화재의 77연승 대기록을 저지한 데 이어 2006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마침내 삼성화재의 슈퍼리그-V리그 10연패를 저지하며 현대캐피탈의 우승 한을 풀었다. 현대캐피탈은 2007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두 감독은 당시까지 프로 출범 이후 나란히 두 차례씩 우승을 주고받았다.

팽팽하던 균형은 2008년부터 기울어졌다. 당시 신 감독의 삼성화재는 챔피언전에서 현대캐피탈의 V리그 3연패를 저지하며 마침내 슈퍼리그-V리그 통산 10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까지 5연패에 성공하며 삼성화재 독주시대를 다시 열었다.

두 감독은 만날 때마다 명승부를 펼쳤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경기는 2008년 4월10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전 1차전이다. 두 팀은 세트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에서 프로배구 역대 한 세트 최장시간인 44분 동안 접전을 펼쳤다. 16번의 듀스 공방 끝에 양팀 합쳐서 무려 80점이 나왔다. 결국 삼성화재가 41-39로 현대캐피탈을 누르고 3세트를 따냈고, 4세트까지 이겨 세트스코어 3-1로 승리를 거뒀다.

역대 전적 80전 51승29패

두 감독의 역대 전적은 80전 51승29패로 신치용 감독이 22번 더 이겼다. 챔피언전에서는 7시즌 연속 만났는데, 신치용 감독이 5번, 김호철 감독이 2번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 전력은 러시앤캐시보다 삼성화재가 앞선다. 하지만 두 감독의 라이벌 대결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45년 우정의 승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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