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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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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영웅의 멋진 출발

[S라인] 첫 선발 등판한 4월12일 한화-두산전에서 승리 기록한 박찬호…
기교파 김용수, 강속구파 박철순 등 명불허전의 계보 이을까
등록 2012-04-20 17:05 수정 2020-05-03 04:26

1994년 4월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의 다저스타디움. 이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왼손 투수 켄트 머커는 홈팀 LA 다저스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 야구에서 이날은 훗날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기록하는 박찬호가 데뷔전을 치른 날로 기억된다.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스물한 살의 풋내기 박찬호는 0-4로 뒤진 9회초 기립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박찬호는 첫 타자 ‘크라임 도그’ 프레드 맥그리프를 상대로 한 데뷔 승부에서 볼넷을 기록했다.

박찬호

박찬호

시범전은 잊어라

지난 4월12일 박찬호는 충북 청주구장에서 고향팀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고 또 다른 데뷔전을 치렀다. 18년 만에 돌아온 고국 프로야구의 첫 선발 등판이었다. 첫 타자는 두산의 교타자 이종욱. 18년 전 데뷔전처럼 박찬호의 첫 타자 상대 결과는 역시 볼넷이었다. 불안감이 감돌았다.

박찬호는 시범경기에서 두 차례 등판해 8⅓이닝 동안 무려 12점을 내줬다. 박찬호의 고국 복귀를 반대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대투수 박찬호가 고국 무대에서 초라한 결과를 남기고 은퇴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였다. 1회에 주자 2명을 내보내고도 무실점으로 넘겼지만 투구 수는 21개에 이르렀다. 그보다 앞서 미국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전 두산 투수 박철순은 경기 뒤 “경기를 TV로 보진 않았다. 하지만 박찬호가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우였다. 박찬호는 2회 첫 타자 이원석을 7구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고, 손시헌과 용덕한도 범타 처리했다. 3회엔 고영민·이종욱·정수빈을 모두 초구에 땅볼 아웃으로 잡아냈다. 18년 전 데뷔전에서 박찬호는 시속 155km가 넘는 강속구를 펑펑 뿌려댔다. 지금 박찬호는 그런 강속구를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똑바로 들어오는 공도 없었다. 박찬호의 직구는 대개 바깥쪽, 혹은 안쪽으로 휘어지거나 살짝 떨어졌다.

그리고 대담했다. 박찬호는 4회초 2사에서 두산 4번 김동주에게 볼카운트 1-2에서 몸 쪽으로 빠르지 않은 공을 던졌다. 타구는 투수 앞으로 향했고, 박찬호는 선 자세로 여유 있게 공을 글러브로 낚아챈 뒤 1루로 던졌다. 자칫 장타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투구. 그 공을 던졌을 때 박찬호에겐 확신이 있는 듯했다.

5-0으로 앞선 6회초, 박찬호는 세 번째로 상대하는 선두 타자 이종욱에게 직구를 던지다 우전 안타를 맞았다. 직구 속도는 시속 141km에 경기 72번째로 던진 공이었다. 그러나 다음 세 타자를 모두 아웃으로 잡고 위기를 넘겼다. 2번 정수빈은 변화구로 좌익수 플라이, 두산이 자랑하는 3번 김현수는 바깥쪽 역회전 직구, 4번 김동주는 초구 싱커로 범타로 물러났다. 6이닝 무실점. 이 경기에서 박찬호는 6⅓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박찬호에게 청주구장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박찬호는 올해 한국 나이로 40살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이 나이까지 현역으로 뛰고 은퇴한 투수는 11명밖에 없다. 이 가운데 오른손 투수는 6명이다. 좌타자 전문 구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왼손 투수에 비해 오른손 투수의 수명은 좀더 짧다. 이 6명 가운데 4명은 승리 기록 없이 은퇴 시즌을 보냈다. 그러므로 박찬호는 한국 나이 40살에 승리 투수가 된 세 번째 선수다.

그에 앞선 2명의 이름은 박철순과 김용수(현 중앙대 감독)다. 원년 22연승의 주인공 박철순은 박찬호와 같은 나이던 1995년 20경기에 등판해 9승2패를 기록했다. 유일한 100승-200세이브 투수인 김용수의 만 39살 성적은 3승9패26세이브다. 싱싱한 후배들과 견줘서도 뒤지지 않았다.

여유와 확신의 구위

김용수는 “투수는 40살이 넘어서도 충분히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믿음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김용수는 “어느 순간 타자가 무슨 공을 노리고 있는지 눈에 보였다. 공에 힘은 줄었지만 방법을 알게 되니 정확한 코스로만 공을 던지면 아웃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그 ‘순간’은 나이 36~37살였다. 박철순은 199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박철순은 30대 후반에도 시속 147km 강속구를 던졌다. 당시 스피드건 수치는 지금보다 짰다. 김용수가 기교파였다면 박철순은 강속구파였다. 박철순은 “나이 든 투수에게 가장 무서운 건 구속 저하가 아니라 러닝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러닝이 힘에 부치면 공 끝의 힘과 제구력이 떨어진다. 박철순은 은퇴 시즌에도 젊은 시절처럼 숨이 멎을 정도로 달렸다. 하지만 그해엔 러닝 뒤 구토 증세를 느꼈다. 허리와 아킬레스건이 러닝량을 지탱하지 못했다는 게 진짜 이유였다. 허리와 아킬레스건은 원년 MVP 박철순을 여러 차례 은퇴 위기로 몰고 갔던 부상 부위였다.

지난 4월12일 청주구장에서 박찬호는 김용수의 표현대로 상대 타자들이 무슨 공을 노리고 있는지 아는 듯했다. 그는 박철순처럼 러닝의 중요성을 아는 투수다. 박찬호의 올 시즌이 어떤 숫자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데뷔전에서 박찬호는 그의 올 시즌 도전이 흥미로울 것임을 한국 야구팬들에게 증명했다. 오래전 선배인 박철순과 김용수가 그랬던 것처럼.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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