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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10년 만의 반전 보여줄까

승부 조작 파문 등 시즌 전부터 몸살 앓은 LG 트윈스의 새 사령탑 김기태 감독, “팬들 가을잔치에 초대할 것”
등록 2012-03-23 19:42 수정 2020-05-03 04:26

‘독이 든 성배’ ‘감독들의 무덤’.
프로야구 LG 트윈스 감독 자리를 두고 흔히 이렇게 부른다. LG는 2002년 준우승을 차지한 김성근 감독대행을 해고한 이후 이광환·이순철·양승호(감독대행)·김재박·박종훈 감독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했다. LG의 최근 9년간 순위는 ‘6-6-6-8-5-8-7-6-6’. 전화번호를 나열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 2, 3, 4’라는 숫자가 없다. 9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해 가을잔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LG는 지난 시즌 초반 한때 1위까지 치솟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부터 순위가 뚝뚝 떨어져 결국 한화와 공동 6위(59승2무72패)로 시즌을 마쳤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10경기에서 2승1무7패로 고개를 떨궜다. 성난 팬들은 서울 잠실구장 앞에서 ‘올해도 가을야구를 볼 수 없느냐’는 항의 현수막을 펼쳐들고 당시 박종훈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LG 팬들의 항의 현수막에는 ‘DTD’(Down Team is Down)라는 문구도 등장했다. 즉, ‘내려갈 팀은 결국 내려간다’는 뜻이다. 시즌 초반 반짝하다가 유독 여름철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LG의 뒷심 부족을 질타하는 문구다.

초심을 되새기는 등번호 91번
LG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새 사령탑을 선임했다. 재야의 내로라하는 명장들을 제치고 발탁된 새 감독은 뜻밖에도 43살의 ‘새파란’ 김기태 당시 수석코치였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고, 감독 경험도 없는 생초짜 감독 선임에 LG 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광주일고와 인하대를 나온 김기태 감독은 슈퍼스타 출신이다. 현역 시절 249홈런과 923타점을 올렸고, 통산 타율 0.294를 기록했다. 홈런왕과 타격왕도 차지했고, 장타율과 출루율 1위도 두 차례씩 거머쥐었다. 실력도 있지만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잘 이끌었다. 은퇴 뒤에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에서 지도자 수업도 받았다. 그는 현역 시절 프로 입단 전부터 전체 1순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가 신생팀으로 프로야구에 뛰어들어 우선순위 특별지명으로 그를 낚아채갔다. 당시 최강이던 고향팀 해태에서 편하게 야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빼앗기고 꼴찌팀에서 생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는 만년 하위팀에서 ‘헝그리 정신’을 배웠다. 김 감독은 “내가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편하게 야구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회사(쌍방울)가 부도 나는 바람에 월급이 밀린 적도 있고, 트레이드를 두 번이나 겪으며 마음고생도 많았다”고 돌아봤다. LG 구단은 화려한 개인 야구에 익숙한 LG 선수단에 김기태식 근성을 ‘이식’하려고 그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10월14일 김기태 감독은 취임식에서 전진우 사장으로부터 등번호 ‘91’이 새겨진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그는 LG에서 2군 감독과 수석코치로 몸담았던 3년 동안 줄곧 71번을 달았다. 김 감독은 “91번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 신인 입단이 1991년인데,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등번호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베이징올림픽 때 호흡을 맞추며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함께 일궜던 조계현 수석코치, 롯데를 막강 타선으로 이끈 김무관 타격코치, 쌍방울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최태원 작전코치, 이론과 성실성을 겸비한 차명석 투수코치를 선임했다.
그러나 ‘거함’ LG를 이끌 김기태호의 시작은 불운하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이 줄줄이 둥지를 떠났다. 대형 포수 조인성은 SK로, 강타자 이택근은 넥센으로, 마무리 송신영은 한화로 옮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발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이 경기조작 파문으로 선수 자격을 잃었다. 뚜렷한 전력 보강은 없고, 투타에서 무려 5명의 주축 선수가 팀을 떠났다. 시즌 개막 전부터 꼴찌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의연하다. “왜 전력 보강이 없는가. 우규민이 군에서 제대했고, 정재복이 부상에서 회복됐다. 봉중근도 5월부터는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는 “선수가 빠져나간 만큼 남은 선수들에겐 일자리가 창출된 것 아니냐”는 뼈있는 말까지 던졌다.

“목표는 시즌 60패”
LG는 겨우내 일본 오키나와에서 55일 동안 전지훈련을 했다. 그곳에서 김 감독이 가장 강조한 말은 “팀을 위해서”다. 그는 ‘LG=모래알팀’이라는 지적에 대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 자체에 우리 선수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 베이스 더 가는 빠른 야구, 한 베이스 더 못 가게 막는 수비가 중요하다”며 “결국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시즌 전체로는 몇 점을 줄일 수 있고, 몇 승을 더 거둘 수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시즌 목표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몇 번이고 캐물으면 “시즌 60패”라는 답이 돌아온다. 133경기를 치르니, 60패면 73경기를 이기거나 비긴다는 얘기고, 그 경우 4위 안에 넉넉히 든다. 그는 “야구는 아무리 잘하거나 못하는 팀도 세 번 하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나머지 한 번을 누가 이기느냐가 승패를 가른다”고 했다.
LG는 올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면 10년째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한다. 객관적인 전력은 최하위권이다. 과연 ‘초보’ 김기태 감독이 자신이 받아든 성배에 독 대신 샴페인을 채울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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