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그 대망의 결승전! 축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격투기를 했던 네덜란드(그 때문에 네덜란드 축구의 상징 요한 크루이프는 환멸감을 느꼈다고도 했다)를 물리치고 스페인이 우승을 한 뒤, 경기장에는 어떤 음악이 울려퍼졌을까. 우승국 스페인을 위한 영광의 찬가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밥 말리의 음악이었다. 남아공이었기 때문일까?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의 밤하늘에 밥 말리의 음악이 넘실거렸다. 스페인 선수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에 몸을 실었는데, 물론 스페인 선수들은 꼭 그 음악 때문이 아니라 벌써 우승의 광란으로 몰입한 다음이었다.
제국 vs 식민의 잔혹사가 뒤엉킨 문화
아무튼, 밥 말리였다.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한 사람들이 일부러 밥 말리를 선택한 것은, 내 짐작에 다음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그가 축구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다.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밥 말리는 성장 과정에서 용접 기술을 익히는 시간 틈틈이 공을 찼고 나름대로 재능이 있어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물론 신은 그를 고만고만한 축구 선수보다는 음악가로 키우고 싶어 했고, 훗날 그는 저항과 눈물의 레게 음악의 위대한 선구자가 되었다.
국제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밥 말리는 틈만 나면 공을 찼다. 유튜브를 잠깐만이라도 검색해보면 밥 말리가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어린아이들이나 동료들과 축구를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77년 유럽 순회 공연 도중에 밥 말리는 프랑스 기자들과 축구를 하다가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 발등 부상을 치료받는 중에 밥 말리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죽었다.
남아공의 밤하늘에 밥 말리의 음악이 울려퍼진 것은, 물론 이런 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레게’ 하면 그저 김건모의 나 댄스그룹 룰라의 혹은 김흥국의 같은 곡을 떠올리기 쉬운데, 밥 말리에 의한 레게는 수백 년의 ‘제국 vs 식민’과 20세기 잔혹사가 뒤엉켜 있는 문화 현상이다.
밥 말리는 1960~70년대 흑인 문화운동의 일종인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의 상징이다.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추앙하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은 서구에 끌려온 흑인들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문화운동이었고, 밥 말리의 (One love)나 (No Woman, No Cry)는 바로 그 정신의 표현이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밥 말리를 특별히 존중해 남아공 월드컵의 주최자들은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에 그의 음악을 틀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0-6의 상황을 보상한 춤과 음악
나는 그러한 광경의 또 다른 모습을 2006년 6월3일, 잉글랜드 맨체스터의 올드트래퍼드 경기장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와 자메이카의 평가전이 열렸다. 잉글랜드(곧 영국)와 자메이카의 평가전은, 이를테면 ‘세네갈 vs 프랑스’ ‘폴란드 vs 독일’ ‘한국 vs 일본’ 등의 경기처럼, 혹은 부분적으로는 그 이상으로, 수백 년의 역사가 단 90분 안에 농축돼 있는 격렬한 상황이다.
17세기에 영국인들은 수많은 아프리카인을 서인도제도로 실어날랐고, 그렇게 강제 이주당한 흑인들은 자메이카를 비롯한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밭에서 오랫동안 시련의 삶을 살았다. 1930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가 ‘아프리카의 위대함’을 역설했을 때 대서양 건너편 자메이카에서 많은 예술가와 젊은이들이 열렬히 호응하며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뜻하는 ‘자 라스타파리’(Jah Rastafari)를 신으로 추앙하는 문화운동까지 나타난 역사적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저마다 레게의 몸놀림으로 춤을 추었고, 경기 중에도 춤을 추었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춤을 추었다. 경기 결과는? 무려 0-6! 자메이카의 대패! 그럼에도 그들은 춤을 추었다.
아, 물론 이 진술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기든 지든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쉬지 않고 춤을 춘다는 것은, 서구의 그림이나 영화에서 곧잘 발견되는 ‘비서구 사회 인간에 대한 무인격화 혹은 무성화(無性化)’로 비칠 우려가 있다. 백인들이 파티를 하거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 때 비서구 사회인들이 마치 도구나 장식물처럼 인격 없이 처리되는 상황 말이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물론 그들은 실점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자국 팀의 공격이 무위로 그쳤을 때 탄식을 했다. 그곳은 댄스홀이 아니라 축구장이었고, 영국 사회를 떠받치는 수많은 허드렛일에 종사하며 살아온 자메이카 출신자들은 그날만이라도 모국 자메이카 선수들이 잉글랜드 수비를 공략해줄 것을 바랐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하지만 그날 경기는 본선 진출이 오래전에 좌절된 자메이카가 잉글랜드를 위해 스파링파트너로 뛰는 것일 뿐이었다. 그 바람에 그들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춤으로 그것을 보상해도 좋을 만한 상황이었다.
내가 구입한 암표의 좌석번호는 자메이카 팬들 한복판을 가리켰기 때문에 나는 90분 넘도록 내내 일어나서 쉬지 않고 함성을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자메이카 사람들 속에서 축구장의 카니발리즘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정치와 정신의 역사를 노래하네
수천의 자메이카 사람들은 초록(에티오피아), 빨강(피와 형제), 노랑(태양), 검정(피부색) 등으로 이뤄진 손목 밴드, 모자와 모직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경기장 안팎을 가득 채웠고, 쉬지 않고 춤을 췄으며, 어쩌다 끊어지면 또 누군가가 이어받는 식으로 밥 말리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앤서니 기든스는 에서 자메이카의 레게가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들 사이의 접촉의 역사이며, 음악을 통해 이들 집단들이 표현하려고 한 (정치적이고 정신적이며 개인적인) 의미들의 역사”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2006년 맨체스터의 올드트래퍼드 경기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의 결승전 직후에 또다시 확인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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