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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의 기다림, 동지가 되어 돌아오다

프로야구 닮은 역사, 라이벌 팀 삼성에서 기아 감독으로 돌아온 2012년의 선동열에게서 1948년 메이저리그 리오 듀로셔의 환영을 보다
등록 2011-10-27 15:51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사람 좋으면 꼴찌.”(Nice Guys Finish Last.)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명언으로 꼽히는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리오 듀로셔(1905~91)다. 1920년 뉴욕 양키스에서 데뷔한 그는 2루수와 유격수로 메이저리그에서 17시즌을 보냈다.

동료 베이브 루스가 붙여준 별명은 ‘올아메리칸아웃’(All-American Out). 안타 치는 데는 젬병이라는 뜻이다. 그의 통산 타율은 0.24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뛸 수 있었던 이유는 빼어난 수비와 영민한 두뇌, 그리고 타고난 승부 근성이었다.

‘공적 1호’에서 감독으로

그의 또 다른 별명은 ‘주둥이’(the Lip)다. 루스는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 1928년, 또는 1929년에 신출내기 듀로셔는 타이러스 코브에게 “구두쇠”라고 야유한 적이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 1위에 4189안타를 친 코브는 스파이크 날을 줄로 날카롭게 다듬은 뒤 주루를 방해하는 수비수의 다리를 거침없이 찍은 성깔의 소유자였다. 야유를 퍼부은 팬을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팬 전력도 있었다. 듀로셔의 말에 코브는 격분했지만 루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큰 싸움을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듀로셔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유는 감독으로서의 업적 때문이다. 24시즌 동안 감독으로 재임하며 역대 10위인 2008승을 거뒀고 리그 우승 3회, 월드시리즈 우승을 1회 차지했다. 그는 1939년 33살에 브루클린 다저스의 감독 겸 선수가 됐다. 다저스는 1938년까지 6년 연속 내셔널리그 8개 구단 가운데 6위 이하에 머무른 만년 하위 팀이다. 하지만 신출내기 듀로셔 감독은 첫해에 다저스를 0.549 승률로 3위 팀으로 끌어올렸다. 이듬해엔 2위, 그리고 1941년엔 1920년 이후 처음으로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켰다.

다저스 감독 시절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긴 큰 족적은 3개다. 첫째가 1941년의 내셔널리그 우승, 두 번째는 1947년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영입했다는 점이다. 로빈슨을 데려와 인종 장벽을 깬 주인공은 구단주 브랜치 리키였지만, 듀로셔는 구단 결정에 반발하는 선수단을 설득했다. 그의 ‘설득’이란 이런 식이었다. “이 팀 감독은 나다. 나는 오직 승리에만 관심이 있다. 야구만 잘한다면 나는 코끼리를 데리고 경기를 치를 것이다. 코끼리를 위해 내 친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로빈슨이란 친구는 우리에게 우승을 안겨다줄 것이고, 네놈들과 내 주머니에 돈을 가득 채워줄 거란 말이다. 그러니 앞으론 입 닥쳐라.”

그리고 세 번째 사건은 1948년에 일어났다. 정규시즌이 한창이던 7월16일, 다저스의 인기 감독 듀로셔가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한 것이다. 지금도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라이벌 관계다. 같은 뉴욕 연고지던 당시에는 철천지원수였다. 뉴욕 야구의 전성기인 1950년대엔 자이언츠나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으면 탈락한 팀 팬들은 아메리칸리그의 양키스를 응원했다고 한다. 듀로셔는 자이언츠 팬들에겐 ‘공적 제1호’였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도 다저스 감독 시절 기자들에게 자이언츠 선수들을 비꼬는 와중에 나왔다. 그 말을 전해들은 자이언츠 팬들의 분노가 어땠는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경질 환영했던 삼성 팬, 귀환 반기는 기아 팬

60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건 지난 10월18일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기아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기아의 전신은 해태. 삼성과 해태는 1980년대부터 이어진 지독한 라이벌 관계다. 모기업인 현대·기아차는 삼성전자와 쌍벽을 이루는 국내 대기업이지만, 아직 광주 팬들은 ‘타이거즈’라는 이름에서 ‘해태’를 먼저 떠올린다.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삼성은 김응용 해태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전격 선임했다. 꽤 오랜 작업을 거친 일이었지만, 대구 팬들의 충격은 컸다. 삼성은 해태와 함께 프로야구 양대 명문으로 꼽히는 팀이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9번 우승한 해태와는 달리 한 번도 포스트시즌의 승자가 되지 못했다. 김응용의 영입은 대구 팬에게 1948년 듀로셔를 새 감독으로 맞아야 했던 자이언츠 팬이 겪은 것과 비슷한 충격을 줬다.

듀로셔의 자이언츠는 1951년 보비 톰슨의 ‘세계에 울려퍼진 한 방’으로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얄궂게도 다저스였다. 그리고 그해 듀로셔는 생애 유일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응용의 삼성도 2002년 창단 이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대구에 선사했다. 그의 뒤를 이은 선동열은 2005~2006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2005~2010년 선동열 체제에서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417승(3위)을 따냈고, SK 다음으로 많은 한국시리즈 3회 진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4전 전패로 준우승에 머무른 뒤 선 감독은 전격 해임됐다. 조범현 전 기아 감독도 비슷하다. 첫해인 2007년 최하위에 머무른 팀을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올려놨다. 올해는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 속에서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비교적 좋은 성적에도 물러났다는 점, 경질 결정이 구단 프런트가 아닌 모기업의 고위층에서 내려왔다는 점은 닮은꼴이다.

연고지 팬의 반응 역시 비슷하다. 2010년 선동열의 경질, 2011년 조범현의 경질에 대해 대구와 광주의 여론은 대체로 ‘환영’이었다. 롯데가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뒤, SK가 시즌 도중 김성근 감독과 결별한 뒤 일어난 소동과는 정반대다.

대구 팬들은 ‘선동열의 지키는 야구’를 싫어했고, 광주 팬들은 ‘조범현의 소심한 야구’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들의 비난에는 선 감독의 현역 시절 유니폼이 해태였고, 조 감독이 대구 출신이라는 점이 아마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정치의 문제라면 심각해져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선동열과 조범현이 몸담은 분야는 프로스포츠다. 프로스포츠는 연고지 팬의 사랑을 먹고 산다. 프로야구가 국내 최대 인기 스포츠가 된 배경에는 출범 당시 철저한 지역연고제를 택했다는 이유가 있다. 이 점은 최근까지 ‘지역감정 조장’ ‘우민화 정책’ 등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5공 정부에선 처음에 지역연고제를 반대했다. 그 사랑은 때로 비이성적으로 비칠 만큼 일방적이다. 대구 팬들은 과거 가을마다 분루를 삼켰던 옛 스타들이 코치로 돌아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한을 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광주 팬들은 내년에 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국보’ 선동열이 고향 팀을 이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연고지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야구

순전히 야구적 관점에서도 지난해 선동열, 올해 조범현의 경질이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팬들의 기다림이 무척 길었다는 점에서 굳이 잘잘못을 따지고 싶진 않다. 선동열이 타이거즈 유니폼을 다시 입는 건 무려 17년 만이다. 부산 팬들은 그들이 바라던 ‘최동원 감독’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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