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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8-5-8-7-6-6, 김성근의 저주?

프로야구 ‘가을의 전설’은 시작됐고,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LG의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등 스포츠계를 떠도는 기묘한 사연들
등록 2011-10-14 19:29 수정 2020-05-03 04:26
프로야구 LG 트윈스 선수들이 지난 9월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5 대 2로 패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LG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프로야구 LG 트윈스 선수들이 지난 9월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5 대 2로 패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LG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프로야구 ‘가을의 전설’이 시작됐다. 전설은 ‘저주’를 동반한다. LG 트윈스는 올해도 가을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벌써 9년째다. 그리고 ‘김성근의 저주’라는 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2001년 5월, LG는 9승1무25패로 부진하던 이광은 감독을 경질하고, 김성근 2군 감독을 ‘감독대행’에 앉혀 지휘봉을 맡겼다. 그해 LG 성적은 58승8무67패, 꼴찌가 확실시되던 팀은 6위로 시즌을 마쳤다. 김성근 감독대행만의 성적은 49승7무42패로 5할이 넘었다.

‘결자해지’ 바라는 LG팬들

시즌 뒤 LG는 김 감독대행에게 ‘대행’ 꼬리표를 떼주고 정식 감독을 맡겼다. 김 감독은 기대대로 이듬해 66승6무61패, 4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LG는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위력을 떨쳤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에 2승, 플레이오프에서 KIA에 3승2패를 거두고 한국시리즈에까지 올랐다. 당시 LG의 마운드는 최원호, 장문석, 라벨로 만자니오 등이 선발을, 이상훈이 마무리를 맡았다. 타선은 최동수, 김재현, 조인성, 박용택 등이 이끌었다. 다른 팀에 견줘 탄탄한 전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LG는, 정규리그에서 82승4무47패를 거둔 삼성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 대 6으로 앞서던 9회말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 마해영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맞고 준우승에 그쳤지만, LG를 나무라는 이는 없었다. 당시 삼성 김응룡 감독은 김성근 감독을 가리켜 “마치 야구의 신과 경기하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에게 붙은 별명이 ‘야신’이다.

그런데 LG는 시즌 뒤 ‘야신’을 해고했다. 이후 LG와 김성근 감독의 운명은 마치 메이저리그 ‘밤비노의 저주’를 보는 듯하다. 1918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를 헐값에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했다. 보스턴은 그 뒤 86년 동안 저주에 시달렸다. 이 기간 동안 4차례나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눈물을 흘렸다. 반면 양키스는 루스 영입 이후 26차례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며 명문 구단이 됐다.

LG는 김성근 감독 해임 이후 지난 9년 동안 6-6-6-8-5-8-7-6-6위에 머물며 가을 잔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반면 LG에서 잘린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김성근 감독은 2007년부터 SK 와이번스를 맡아 4년 동안 우승 3번, 준우승 1번의 업적을 남겼다. 올해 SK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다시 야인이 됐지만 그의 주가는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LG 팬들은 요즘 인터넷 댓글에서 LG 구단에 ‘결자해지’(結者解之)를 강조한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 김성근 감독을 다시 모셔오자’는 것이다.

‘김성근의 저주’가 생기기 전까진 ‘달구벌의 저주’가 한국 프로야구에 떠돌았다. 1984년 삼성은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는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를 벌였다. 그런데 삼성이 후기리그 막판 만만한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려고 롯데를 상대로 ‘져주기 경기’를 벌였다. 하지만 삼성은 한국시리즈에서 결국 롯데에 우승컵을 내줬다. 롯데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따내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그 뒤 삼성은 2002년 LG를 상대로 저주를 풀기까지 20년 가까이 한번도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에 저주가 풀리자 이듬해부터는 LG에 저주가 시작됐다.

프로야구 역사가 긴 미국과 일본은 저주의 역사도 길다. 메이저리그에선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와 ‘블랙삭스의 저주’가 풀렸지만, 시카고 컵스는 ‘염소의 저주’에서 66년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한신 타이거스가 ‘켄터키 할아버지의 저주’에 26년째 시달리고 있다.


데일리 프로그램 표지를 찢어라

늦여름 달구벌 대구를 뜨겁게 달궜던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표지모델의 저주’가 화제였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매일 발간한 ‘데일리 프로그램’ 표지에 등장한 선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됐기 때문이다. 남자 100m와 남자 110m 허들 세계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다이론 로블레스(쿠바)는 실격당했고, 여자 세단뛰기의 ‘지존’ 야르게리스 사비네(쿠바)는 부상에 울었다. 남녀 장대높이뛰기 스티브 후커(호주)와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는 뜻밖에 부진했다. 선수들은 공포에 떨었다. 급기야 대회 조직위원회는 폐막 이틀 전, 여자 200m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 카멜리타 지터(32)와 앨리슨 펠릭스(26·이상 미국)를 더블 캐스팅했다. 모두가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금메달은 지터도 펠릭스도 아닌, 베로니카 캠벨 브라운(자메이카)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표지를 장식한 샐리 피어슨(호주)은 여자 10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따며 저주를 깼다. 그는 세리머니를 하며 ‘데일리 프로그램’을 짓밟는 의식을 치렀다. 심적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케 하는 행동이었다.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표지모델의 저주’가 있었다. 미국의 유명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저주’다. 저주는 창간호부터 시작됐다.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레이브스(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3루수 에디 메튜스는 1954년 8월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뒤 손을 크게 다쳤다. 팀도 9연승에서 좌절됐다. 손을 다친 것은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1955년 1월31일 스키선수 질 킴먼트는 이 잡지의 표지 모델로 나오자마자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장애인이 됐다.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1956년 5월28일 표지모델이던 카레이서 밥 슈워커트는 3주 뒤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카레이서 팻 오코너는 1958년 5월26일 표지에 등장한 바로 그 다음 경기에서 첫 바퀴를 돌다가 숨졌다. 미국 여자피겨대표팀은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1961년 2월13일치는 미국 여자피겨대표팀을 특집으로 다뤘고, 이 가운데 유망주 로렌스 오웬을 표지에 등장시켰다. 오웬을 비롯한 대표선수들은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러 비행기를 탔다가 벨기에 브뤼셀 부근에서 추락해 모두 사망했다.

계속되는 ‘김득구의 저주’

한국 프로복싱은 ‘김득구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득구는 1982년 11월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레이 맨시니(미국)와의 경기에서 14회 KO패한 뒤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이후 한국 복서들은 미국에서 치른 세계타이틀전에서 1승27패, 도전전에서는 23전 전패의 참혹한 성적을 남겼다. 1986년 박종팔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IBF 슈퍼미들급 3차 방어에 성공한 것이 유일한 승리다. 광복절이던 지난해 8월15일에는 한국 프로복싱의 ‘희망’ 김지훈이 미국 텍사스에서 미겔 바스케스(멕시코)와 IBF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을 펼쳤지만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져 저주에 땅을 쳤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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