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머니, 당신께 태극마크를 바칩니다

국가대표가 된 혼혈 농구선수 문태종,
한국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향한 효심으로 쏘는 3점슛
등록 2011-08-02 12:03 수정 2020-05-03 04:26
문태종

문태종

흰색 머리띠(헤어밴드)에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그리고 한글로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문태종”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다. 프로농구 혼혈 선수 문태종(36·인천 전자랜드)이 지난 시즌 경기 때마다 애용하던 머리띠다.

귀화하고 이름바꾼 이유는 ‘어머니’

그는 미국 프로농구(NBA)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그리스 등 유럽 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던 슈터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쏠려 있었다. 2009년 국내 리그에서 한국계 혼혈 선수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문태종은 소속팀과의 계약이 끝나지 않아 곧바로 한국행이 성사되지 않았다. 동생 문태영(33·LG)은 형보다 먼저 국내 리그에서 뛰며 발군의 실력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당시 국내 프로농구계에선 “동생이 저 정도인데, 더 잘한다는 형 실력은 어떻겠느냐”며 베일에 싸인 문태종을 궁금해했다.

소속팀과 계약이 끝난 문태영은 세르비아 1부 리그에서 받던 연봉 30만달러(약 4억원)의 4분의 1에 불과한 연봉 1억원을 받고 마침내 한국에 왔다. 그리고 지난 시즌 소속팀 전자랜드를 정규리그 2위, 플레이오프 4강으로 이끌었다. 3년 전, 그저 스티븐슨 형제로만 알려졌던 문태종과 문태영은 이제 국내 리그를 쥐락펴락하는 최고 선수로 떠올랐다.

혼혈이라고 하지만 흑인에 가까운 이들 형제는 왜 한국행을 택했을까?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다. 한국 이름의 성도 어머니를 따랐다.

이들 형제는 지난 7월21일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법무부로부터 체육 분야 우수 인재로 선정돼 특별 귀화를 허가받은 것이다. 형제는 한 손엔 태극기, 한 손엔 국적 증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문성애(56)씨에게 보내는 미소였다. 그날 문태종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문태종은 1975년 12월1일 서울에서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 공군 병사였던 토미 리 스티븐슨(58)이다. 문태종은 이듬해 부모와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떠났다. 부산 출신인 어머니 문성애씨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빌딩 청소부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세 아들을 키웠다(농구를 하지 않은 막내아들은 현재 미국의 한 은행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자주 한인 교회에 데리고 갔다. 아이들이 한국인과 어울리길 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며 울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은 그렇게 투정 부리는 것 아니다”라며 타일렀다. 어린 형제들은 그렇게 조금씩 한국을 인식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며 한국을 각인시키기엔 생활이 너무 각박했다. 어머니는 일 때문에 바빴고, 어머니가 없을 때 집안일은 맏형 태종의 몫이었다. 동생들 끼니를 챙겨주고 함께 놀아줬다. 그사이 형제들도 점점 미국인이 돼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존재는 아이들에게 ‘한국’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라로 각인시켰다. 문태종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언제나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혼잣말을 많이 하셨다”며 “결국 어머니는 내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싸움이 되곤했던 형제의 1대1 게임

어머니가 한국을 알려줬다면, 농구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집 뒤뜰에 큰 농구대를 설치하고 틈만 나면 농구를 하도록 했다. 태종과 태영이 ‘1대1 게임’을 하면 아버지가 심판을 보곤 했다. 문태종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진짜 싸움으로 번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웃음지었다. 주말에는 아버지가 일하는 공군 부대로 놀러갔다. 거기엔 활주로 옆에 근사한 농구코트가 있었고, 형제는 황홀한 마음으로 코트를 누볐다.

형제는 미국 리치먼드대학에 진학해 미국 대학리그인 NCAA에 출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어머니 문씨는 “둘 다 농구도 잘했지만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칭찬했다. 그는 “큰애는 A학점과 B학점만 받았고, 둘째도 이따금 C학점을 받았지만 대부분 A와 B학점이었다”며 “성격은 태종이가 얌전하고 태영이 활달한 편이었지만, 둘 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말했다.

프로에 진출한 뒤 한 번도 같은 리그에서 뛰어본 적이 없던 형제는 지난 시즌 국내 리그에서 6번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형 문태종이 속한 전자랜드의 4승2패 승리였다. 그러나 맞대결 개인 성적에선 동생 문태영이 조금 앞섰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이따금 아들의 경기를 보려고 한국에 왔다. 어머니는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그저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를 향한 문태종의 효심은 지극하다. 그는 소속팀 전자랜드에서 마련해준 인천 자신의 아파트 방 3개 중 하나를 어머니의 방으로 꾸몄다. 어머니도 두 아들의 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준 며느리들이 그저 고맙다. 문태종은 미국인 아내 니콜(36)과의 사이에 아들 캐머런(8)과 재린(6), 그리고 이제 백일이 갓 지난 딸 나오미(1)를 낳았다. 문태영도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아내 네디아(32)와 결혼해 딸 가브렐라(4)를 뒀다.

문태종은 귀화에 이어 지난 7월25일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에 따라 한 명밖에 뽑힐 수 없는 혼혈 선수 한 자리를 그가 차지한 것이다. 그는 소감을 한국말로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라고 더듬더듬 말했다. 한국말은 아직 서툴렀지만 자부심은 남달랐다. 그는 “태극마크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태극마크 빨리 자랑하고 싶다”

문태종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내에 호적이 남아 있지 않아 ‘국적 회복’ 대상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국적 회복’으로 분류됐다면 혼혈 선수 한 자리를 동생이 차지할 수도 있었고, 그러면 형제가 함께 태극마크를 달 수도 있었다. 그는 “내가 국가대표가 된 것을 동생이 정말 부러워하더라”고 전했다.

문태종은 태극마크를 단 모습을 어머니에게 하루빨리 보여드리고 싶다. 두 형제는 어머니 문씨가 두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한국에 오는 8월2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