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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는 과음의 제왕이었다!

음주에 관대한 미국 프로야구… ‘자기 연마’의 반음주 정서에서 출발해 알코올중독 선수까지, 술에 얽힌 메이저리그의 역사
등록 2011-07-01 17:10 수정 2020-05-03 04:26
» 미국 뉴욕 양기 스타디움에서 맥주를 구매하는 관중들. 미국 프로야구는 비교적 음주에 관대하다. 메이저리그의 한 선수는

» 미국 뉴욕 양기 스타디움에서 맥주를 구매하는 관중들. 미국 프로야구는 비교적 음주에 관대하다. 메이저리그의 한 선수는 "관중도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선수라고 못하게 뭐냐"며 선수들의 음주 문화를 옹호했다. REUTERS/GARY HERSHORN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한국인 외야수 추신수(29)는 올해 야구 인생에서 최악의 스캔들을 겪었다. 그는 지난 5월2일(현지시각) 오하이오주 셰필드레이크에서 음주운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10%로 미국 법정 음주운전 기준치인 0.08%의 2.5배에 이른 상태였다. 사건 직후 경찰 조서와 체포 당시 비디오 화면이 공개돼 추신수는 그동안의 모범 선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국내에서도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면을 통해 미국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는 등 만만찮은 파문을 남겼다.

최악 숙취 중 세운 최고 기록

메이저리그는 비교적 음주에 관대하다.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을 뛴 기아 투수 서재응은 “뉴욕 메츠 시절엔 경기 뒤 라커룸에 늘 맥주가 비치돼 있었다”고 회상한다. 한 보도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라커룸 내 음주를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구단은 절반이 넘는다. 어떤 구단은 선수 1인당 50~150달러를 내면 무제한으로 음식과 맥주를 제공한다. 미국 미식축구리그(NFL)가 구장 내뿐 아니라 단체 이동 중에도 음주를 금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메이저리그 노사 협약에는 알코올에 관한 금지 규정이 없다. 올해에만 음주 관련 사고를 낸 선수는 추신수가 여섯 번째였다.

“숙취가 덜 깬 상태에서 홈런을 쳤다”는 일화는 한·미·일 프로야구를 막론하고 몇 개쯤은 있다. 왼손 투수 데이비드 웰스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1998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15번째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생애 최악의 숙취에 시달린 뒤 대기록을 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은퇴한 웰스의 우상은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였다. 루스는 1915년을 시작으로 통산 714개의 홈런을 날렸다. 그가 현역 시절 비운 맥주병은 714개를 훨씬 넘는다. 그것도 ‘경기 중’에 마신 병만 세었을 때다. 루스의 유명한 별명 가운데 하나는 ‘홈런의 제왕’(Sultan of Swat). 동료들은 ‘과음의 제왕’(Sultan of Swill)이라고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의 탄생은 반음주 정서와 연결된다. 최초의 야구팀은 1845년 뉴욕에서 창단한 니커보커 클럽이다. 이 구단은 오늘날의 프로야구단보다는 신사들의 클럽에 가까웠다. 현행 야구 규칙 1조는 야구 경기의 목적을 ‘승리’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845년 니커보커 룰에 따르면, 경기의 목적은 ‘자기 연마’다. 음주는 신사들의 자기 연마에 어울리지 않는 관습이었다.

하지만 야구는 곧 대중의 스포츠가 됐다. 기업이나 조직의 관리자들은 직원들이 근무 뒤 싸구려 술에 만취하는 것보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게 더 높은 생산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초창기 야구팀의 이름은 ‘소방서팀’ ‘청소부팀’ 등이었다. 그리고 야구는 1869년 최초의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프로화의 길을 걷게 됐다.

야구클럽 회원들은 ‘프로야구단’을 반대했다. 노동자나 농민 출신의 ‘무식한’ 선수가 페어플레이 정신을 훼손하는 걸 원치 않았던 셈이다. 이런 점은 영국 축구가 오랫동안 프로화에 저항했던 점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영국 프로축구 선수들은 자신의 문화적·계급적 전통을 ‘노동자’에서 찾고 있다. 슈퍼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거친 노동자의 음식이다. 반면에 계급적 전통이 약한 미국에선 프로야구가 일찌감치 ‘기업’으로 발전했다.

“금주법 생기자 폭음 시작합디다”

1871년 문을 연 최초의 프로야구리그의 이름은 ‘내셔널어소시에이션’(the 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Base Ball Players·전국프로야구선수연맹)이었다. 이름에서 보듯 이 리그는 ‘구단’이 아닌 ‘선수’의 연합체였다. 투자가보다는 선수의 이익을 앞세운 리그였다. 내셔널어소시에이션은 1875년까지 운영됐지만 이런 시스템으론 투자가들이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그리고 음주를 포함한 선수 규율 문제도 대두됐다. 그래서 1876년 내셔널리그가 창설됐다. 정식 명칭은 ‘내셔널리그’(the National League of Professional Base Ball Clubs). 오늘날에도 유지되는 내셔널리그는 선수가 아닌 구단(club)이 리그의 주체임을 명백히 한 최초의 프로야구리그였다.

새로운 체제 아래에서 구단은 선수한테 여러 규율을 부과했다. 구장 내 음주는 도박과 함께 엄격한 금지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셔널리그에서 강력한 반음주 정책이 채택되지는 않은 것 같다. 메이저리그 초창기 스타들을 다룬 로렌스 리터의 저작 에 나오는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벅스 레이먼드! 스핏볼의 명수였지. 그 친구는 술고래였소. 피칭보다도 술 마시기가 한 수 위였죠. 레이먼드는 볼에 침을 바르는 게 아니라 볼에 입김을 불기만 하면 공이 취한다나.”(루브 마콰드)

“그날 나는 탤리호를 타고 브라운즈와 싸우러 가면서 루브 워델이 나올 걸 알고 있었지. 경기장에 거의 다 갔을 때 누군가가 ‘저기 루브가 있다!’고 외치는 거야. 정말이었어. 워델은 그날 경기에 등판할 거라는 걸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한 손에 큼직한 맥주잔을 들고 술집 문을 붙잡고 늘어져 있는 거야.”(지미 오스틴)

“선수들은 매우 거칠고 폭음을 했어요. 그러나 독주는 삼갔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이 끝나면 모두들 몰려가 맥주를 한두 잔씩 마셨습니다. 그 밖의 것은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금주법이 나왔는데, 거꾸로 그때부터 폭주를 합디다.”(한스 로버트)

1882년에는 내셔널리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메이저리그인 아메리칸어소시에이션이 창설됐다. 이들이 기존 리그와 차별화된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구장 내 음주 허용’이었다.

프로야구는 긴 페넌트레이스를 치른다. 원정 경기도 잦다. 이 때문에 다른 종목에 비해 독특한 ‘클럽하우스 문화’가 만들어졌고, 구단은 굳이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애덤 라로치 같은 선수는 “관중도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신다. 선수라고 못할 게 뭔가”라고 말했다.

술과 함께 떠나보낸 동료

그러나 메이저리그 최후의 30승 투수인 대니 매클레인은 음주에 관대한 태도를 “맥주회사가 메이저리그의 대형 스폰서이며, 구단 수입의 상당액이 맥주 판매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역 시절 파티광이었지만, 19년 전 25살 난 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사망한 뒤 생각을 바꿨다. 매클레인은 “디트로이트 시절 동료 놈 캐시와 레이 오일러, 감독이던 메이어 스미스는 모두 간암으로 사망했다. 셋 모두 알코올중독자였다”고 말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변호사 스티븐 버니먼은 “구단이 음주운전 가능성을 알고도 선수에게 구장 내 음주를 허용한다면 연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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