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스 매버릭스의 주포 디르크 노비츠키(33)는 지쳐 보였다. 전반 단 3점에 그쳤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 경기 도중 왼쪽 가운뎃손가락 인대가 끊어지고, 4차전에서는 감기 몸살로 40℃ 가까운 고열에 시달린 후유증 탓으로 보였다. 댈러스는 마이애미 히트에 전반 한때 12점이나 뒤졌다. 그런데 후반 들어 노비츠키가 살아났다. 후반에만 17점을 몰아치며 결국 105-95로 이겼다. 꿈에 그리던 우승이었다.
마이애미의 막강 삼각편대를 깨다
지난 6월12일 밤(현지시각)은 노비츠키의 생애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아메리칸에어라인 아레나에서 열린 2010~2011 시즌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6차전에서 21점 11튄공잡기를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전적 4승2패. 댈러스가 1981년 팀 창단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독일에서 온 이방인 노비츠키가 있었다. 노비츠키는 손가락이 부러지고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챔피언결정전 6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27점을 쏟아부었다. 그는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자 트로피를 높이 치켜들고 환호했다. 그 시각 독일 전역에서도 난리가 났다. 사실 농구는 독일에서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시차 때문에 유럽에서는 13일 새벽에 열린 이 경기를 독일인들은 놓치지 않았고, 마침내 노비츠키와 함께 포효했다.
챔피언결정전이 시작됐을 때 댈러스는 마이애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마이애미에는 이번 시즌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자 우승을 위해 이적한 ‘킹’ 르브론 제임스(27·203cm), 역시 이번 시즌에 영입한 크리스 보시(27·211cm), 그리고 ‘득점 기계’ 드와인 웨이드(29·193cm)로 ‘막강 삼각편대’를 구축했다. 마이애미는 3차전까지 2승1패로 앞섰다. 게다가 4차전을 앞두고 노비츠키는 심한 감기 몸살로 코트에서 몸을 풀 때부터 콜록거렸다. 제임스와 웨이드는 노비츠키의 이런 모습을 방송 카메라 앞에서 흉내내며 그를 조롱했다. 하지만 노비츠키는 의연했다. 그는 “유치한 애들 장난”이라고 일축하며 흔들림 없이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고, 마침내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유럽인의 챔피언전 최우수선수 등극은 벨기에 출신으로 2006~2007 시즌 챔피언전 최우수선수를 거머쥔 토니 파커(29·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이어 노비츠키가 두 번째다. 하지만 노비츠키는 순수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4년 전 이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오른 바 있다. NBA 65년 역사에서 미국인이 아닌 선수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오른 경우는 하킴 올라주원(나이지리아), 팀 던컨(아일랜드), 스티브 내시(캐나다), 그리고 노비츠키 등 4명뿐이다. 그러나 노비츠키를 뺀 나머지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살며 미국식으로 농구를 배우고 익힌 ‘메이드 인 USA’다.
농구 신의 경지 ‘180클럽’에 일찍이 가입노비츠키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난 토종 독일인이다. 그의 가족은 스포츠인들이다. 아버지는 독일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고, 어머니 프로농구 선수 출신이다. 누나는 육상을 했다. 노비츠키도 어릴 때 핸드볼과 테니스를 했다. 그러다가 또래 아이들이 그의 다리 길이보다 작을 정도로 키가 불쑥 커버렸다. 이때 생긴 별명이 ‘괴물’이다.
노비츠키가 주목받은 것은 19살 때인 1997년 군에 있을 때다. 독일 분데스리가 DJK 부르츠부르크에서 뛰던 그는 병역 의무를 마치려고 군 팀에 들어갔다. 그때 독일을 방문한 NBA 올스타와 친선경기를 가졌다. 그런데 노비츠키는 당대 최고의 스타 찰스 바클리를 앞에 두고 덩크슛을 꽂는 당돌함을 보여줬다.
그는 이듬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그러나 미국 무대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공격은 좋지만 수비가 엉성한 유럽인” “슛만 좋은 어설픈 선수”라는 비아냥이 따랐다. 드래프트 전체 9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됐고, 곧바로 댈러스로 트레이드됐다. 경기장에서는 이따금 상대팀 팬들이 그의 이름(Dirk)에 빨간 줄을 그은 피켓을 흔들어대며 그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는 실력으로 미국을 정복했다. 노비츠키의 키는 213cm이다. 한때 골밑을 평정했던 섀킬 오닐(39·은퇴)보다 3cm 작다. 그런데도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다. 거침없이 3점슛을 쏘고, 한 번의 드리블로 수비를 따돌린 뒤 중거리슛을 날린다. 틈만 보이면 골 밑 돌파도 마다하지 않는다. 농구 격언 그대로다. “열리면 쏘고 막히면 뚫는다.”
노비츠키는 2006~2007 시즌 2점슛 성공률 50.2%, 3점슛 성공률 41.6%, 자유투 성공률 90.4%를 보이며 신의 경지인 ‘180클럽’(야투 50% 이상+3점슛 40% 이상+자유투 90% 이상)에 가입했다. 지금까지 180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전설의 선수 래리 버드와 레지 밀러, 스티브 내시 등 고작 5명뿐이다.
댈러스 입단 뒤 그는 팀을 11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노비츠키의 플레이오프 통산 성적은 평균 25.9점, 10.4튄공잡기다.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5점, 10튄공잡기 이상을 올린 선수는 NBA 사상 노비츠키를 포함해 4명뿐이다. 통산 50%에 가까운 정확한 야투 성공률로 노비츠키는 파워 포워드는 물론 스몰 포워드, 센터까지 두루 겸하는 팔방미인이다. 그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을 한 번밖에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일각에선 “너무 꾸준해서 튀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들아, 노비츠키를 닮아라”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독일의 기수를 맡았던 노비츠키는 국제대회에서 독일 유니폼을 입고 조국을 위해 뛴다. 2006년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은 미국과 8강전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미국 대표팀 선수 커크 하인릭은 “엄청난 선수와 상대해야 한다. 바로 노비츠키다. 그는 대단한 선수”라며 경계했다. 당대 최고의 센터 섀킬 오닐도 “아들에게 노비츠키를 닮으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흑인이 지배하는 NBA 코트에서 ‘저먼’(게르만의 미국식 발음) 노비츠키의 존재는 분명 특별해 보인다. 그는 ‘괴물’이라는 어릴 적 별명처럼 농구 종주국 미국을 마구 흔들어대는 괴물이 됐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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