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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 KBO 총재, 두 가지 선택지

실무형이냐 명예직이냐… 출범 후 최고 호황기 누리는 지금 한국 프로야구에 어떤 총재가 필요할까
등록 2011-06-10 15:30 수정 2020-05-03 04:26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지난 5월17일 이용일(80) 초대 사무총장을 총재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이 대행은 프로야구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1981년 ‘한국프로야구 창설계획서’라는 18쪽짜리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올렸다. 이 문건에서 오늘날의 프로야구가 만들어졌다. 이후 1991년까지 사무총장을 지냈고, 1991~97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을 맡았다.

‘낙하산 총재’ 거부는 만장일치

팔순의 야구 원로가 20년 만에 KBO에 복귀한 이유는 총재 인선에 얽힌 문제 때문이다. 유영구 전 총재는 명지학원 이사장 재직 시절 2500억원대 사학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5월2일 구속 기소되며 사퇴했다. 총재 자리는 공석이 됐다. 이런 가운데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차관이 ‘정부에 의해 차기 총재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 전 차관은 지난 5월11일 와의 인터뷰에서 “한 프로야구단 구단주로부터 총재직 제안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총재직에 뜻이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그로부터 6일 뒤 이사회는 야구계 원로이자 재계와도 인연이 깊은 이 대행을 발탁했다. 언론에서는 이사회의 결정을 후임 총재에 대한 ‘외풍’을 막아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부는 ‘외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월 초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에게 “총재 인선은 구단들이 알아서 할 일이며, 문화부는 권한이 없다”며 “오히려 정치권을 이용하려는 야구계 인사가 있다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야구계에는 지난 총재 인선 당시 정부가 총재 인선에 깊게 관여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2008년 신상우 전 총재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이사회는 곧바로 유영구씨를 새 총재 후보로 추대했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박종웅 전 국회의원이 내정 상태였다. 야구계에선 부정적 견해가 우세했다. 그래서 일주일가량 ‘작업’한 끝에 유영구 총재를 추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가 총재 승인을 사실상 ‘거부’하는 소동 끝에 유영구씨는 해를 넘겨서야 정식 총재가 될 수 있었다. 이용일 대행 체제도 더 이상 프로야구계가 ‘낙하산 총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런데 이 대행은 5월17일 당일부터 여러 구단들을 긴장시켰다. 이날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행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추고 통솔력 있게 야구계를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구단을 흑자로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 후보라면 정치인, 경제인, 체육인 등 출신을 가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을 불편하게 받아들인 구단들이 있었다. 총재 후보 추대는 이사회의 권한이다. 그리고 총재 대행은 이사회에서 구단 사장들과 동등하게 한 표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행이 앞서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후임 총재에 대한 그림이 다르다는 게 더 본질적인 문제다.

양극의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 총재직

야구 규약상 총재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단의 피고용인’이라는 한계도 갖고 있다. 모순된 두 성격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총재상도 달라진다.

메이저리그의 버드 셀리그 커미셔너의 연봉은 1800만달러다.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 출신인 셀리그는 1992년 커미셔너 대행으로 임명된 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정식 커미셔너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재임 기간에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재정 상태는 크게 좋아졌다. 포스트시즌을 확대하고 인터넷 등 다양한 수입원을 발굴했으며, 사치세를 도입해 구단 간 빈부 격차를 줄였다. 커미셔너 대행 시절 갈등을 빚었던 선수 노조와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셀리그 체제에서 커미셔너 사무국은 리그 전체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총재는 명예직에 가깝다. 초대 후쿠이 모리타부터 현직인 가토 료조까지 역대 커미셔너 12명 가운데 대다수가 도쿄대학 졸업자다. 후쿠이 커미셔너는 검찰총장과 중의원을 지냈고, 2대 이노우에 노보리는 대법관 출신이다. 역대 커미셔너들의 전직을 따져보면 검찰총장 2명, 대법관 2명, 대학교수 3명, 검사장 2명, 장관 2명, 은행 회장 1명, 외교관 1명이다. 11대 네고로 야스치카 총재가 2004년 긴테쓰 버팔로스와 오릭스 블루웨이브 합병 때 “커미셔너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권한이 없다”고 말한 건 유명하다. 네고로 커미셔너는 결국 한국 프로야구의 이사회 격인 실행위원회에 총재가 의장으로 의결권을 갖는 제도 개선을 이뤄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총재의 위상은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의 중간 정도에 있다. 메이저리그식에서 일본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 상관이던 서종철 초대 총재 시절에는 구단주들이 매달 총재와 골프장에서 만났다. 지금은 이사회에서 테이블을 치며 총재에게 항의하는 구단 사장이 있다.

한 구단 사장은 “KBO 총재가 늘 600만 관중 시대를 치적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관중 증가에서 KBO가 한 일이 뭔가. 구단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총재는 프로야구의 명예를 빛내주는 역할로 족하지 않은가. 총재가 과연 필요한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이용일 대행은 “피터 로젤 NFL 커미셔너 같은 총재가 나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로젤은 2류 스포츠리그였던 미식축구를 북미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지금 KBO에는 어떤 총재가 필요할까. 현재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뒤 가장 호황을 맞고 있다. KBO 마케팅 자회사인 KBOP는 올해 300억원대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만성 적자 상태였던 구단들은 부산 롯데, 서울 두산 등을 중심으로 경영 수지가 호전되고 있다. 향후 프로야구의 발전 중심축을 구단에 두자면 굳이 ‘일하는 총재’는 필요 없다. 구단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로 족하다. 그러려면 실무 능력보다 인품과 권위가 우선된다. 하지만 열악한 인프라 환경, 빅 마켓 구단과 스몰 마켓 구단 간 차이, 리그 확장 등 현안을 해결하려면 KBO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관선 혹은 민선 고민보다는 진일보한

이용일 대행은 “이른 시간 안에 후임 총재 인선을 완료한 뒤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실무형 총재’와 ‘명예직 총재’에 대한 야구계 내부의 견해 차이는 최근까지 빚어졌던 ‘관선 총재’냐 ‘민선 총재’냐는 1980년대식 패러다임보다는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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