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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용인시청 여자핸드볼팀, 스타 선수 하나 없이 ‘기적’ 일궈내지만 시 재정 문제로 6월30일 팀 해체 운명
등록 2011-05-27 15:22 수정 2020-05-03 04:26

그들은 오늘도 이겼다. 하지만 소리 내어 크게 웃을 수 없다. 6월30일까지만 존속하는 ‘시한부 팀’이기 때문이다. 계절은 여름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그들의 운동복은 아직도 겨울옷이다. ‘여름’이 없는 그들에게 팀에선 여름 운동복을 생각할 수 없었다. 시합을 마치고 들어간 숙소는 허름한 여관이다. 두어 평의 좁은 방에 2명이 한방을 쓰는 것은 기본이고, 어린 선수들은 3명이 한방을 쓰기도 한다.

승리의 오합지졸

용인시청은 지난해 말, 여자핸드볼팀 해체를 선언했다. 시 재정에 견줘 운동부가 너무 많다는 이유다. 6년 전, 여자핸드볼팀을 창단할 때 용인시청은 “올림픽에서 국위를 빛낸 효자 종목이면서도 기업들이 등한시한 종목이 바로 핸드볼”이라며 “자치단체로서 비인기 종목을 육성하고 운동선수들의 고용 창출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핸드볼을 통해 시민들도 자부심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팀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김운학 감독과 선수들은 여러 차례 기적을 일궈냈다. 창단 멤버 10명 가운데 9명은 운동을 그만두고 가정주부나 학교 지도자로 변신했던 은퇴 선수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이었다. 이렇게 출발했지만 용인시청은 창단 2년 만인 2007년 핸드볼큰잔치에서 정상에 올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에도 4년 동안 각종 대회에서 우승 1번, 준우승 5번을 차지했다. 초호화 멤버인 벽산건설(현 인천시체육회)에 막혀 번번이 정상 문턱에서 좌절한 경우가 많지만 스타 선수 하나 없이 일군 성적이다.

용인시청 권근혜 선수(왼쪽에서 두번째)가 4월1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핸드볼 코리아리그 광주도시공사와의 개막전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용인시청 권근혜 선수(왼쪽에서 두번째)가 4월1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핸드볼 코리아리그 광주도시공사와의 개막전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용인시청은 2011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다시 한번 ‘기적’을 이어가고 있다. 개막 전 참가 7개 팀 가운데 3개 팀이 출전하는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5~6위 정도의 실력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용인시청은 1·2차 대회를 거치며 5승1패로 인천시체육회(5승1무)에 이어 당당히 2위를 달리고 있다. 리그의 딱 절반을 소화하며 거둔 성적이다.

시즌 초, 최강 인천광역시체육회에 졌을 때만 해도 이변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우승과 준우승팀인 삼척시청과 대구시청을 연파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차 대회(서울 4월13~19일)를 2승1패로 끝낸 용인시청 김운학 감독은 2차 대회(인천 5월3~10일)를 앞두고 “2차 대회 세 경기를 모두 이기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이 말은 기적처럼 현실이 됐다. 승부사 김운학 감독과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뛴 결과다. 김 감독과 선수들은 “성적을 내면 스폰서라도 붙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으로 이를 악물고 뛰고 있다”고 했다.

용인시청은 지금도 선수가 12명에 불과하다. 16~17명인 다른 팀에 견줘 4~5명이 부족하다. 7명이 코트에 나가면 달랑 5명이 남는다. 공격과 수비 때 교대가 활발한 종목임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다. 그나마 몸이 온전한 선수도 거의 없다. 지난 2월 열린 SK핸드볼코리아컵(옛 핸드볼큰잔치)에서 신인상을 받은 김정은(19) 선수는 무릎 수술을 받았고, 결혼 뒤 복귀한 서른다섯의 노장 김정심 선수는 통증을 달고 뛴다.

류머티즘 앓으며 “하는 데까지 해보자”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선수가 있다. ‘전신 류머티즘’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팀 에이스로 활약하는 권근혜(24) 선수다. 류머티즘은 뼈·관절·근육 등이 딱딱하게 굳거나 통증이 심해 운동은커녕 심하면 거동도 쉽지 않은 병이다. 권근혜는 한때 국가대표로 활약한 유망주였다. 김운학 감독이 2005년 황지정보고 졸업을 앞둔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그의 고향인 강원도 태백에 여관방을 잡고 보름간이나 그의 아버지를 설득했다.

권근혜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은 3년 전쯤이다. 전신에 류머티즘성 인자가 퍼져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그는 은퇴를 고민했다. 몸무게도 10kg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어차피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도 없는 처지라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했다.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에는 더 큰 통증이 밀려온다. 그래도 그는 긍정적이다. “병 때문에 운동하기 어렵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운동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전체 리그의 절반이 끝난 현재 득점과 도움주기 부문에서 모두 전체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6경기에서 54골을 넣었고 도움주기도 46개를 기록했다. 득점에서는 유일하게 50골을 넘긴 선수이고, 도움주기 부문에서도 2위 류은희(29개·인천광역시체육회) 선수와의 격차가 17개에 이른다.

용인시청의 기적에는 김운학 감독의 뚝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차 대회를 앞두고 선수가 부족하자 지난해 말 해체 방침이 확정된 뒤 팀을 떠났던 국가대표 출신 이선미(23) 선수를 복귀시켰다. 해체를 앞둔 팀의 복귀 선수에게 보수가 지급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선미 선수는 “무보수로라도 뛰겠다”고 했고, 김 감독은 “주머니라도 털어서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고 싶다”고 했다.

김 감독의 별명은 ‘독사’다. 그만큼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한다. 지고는 못 견디는 성격 때문에 그는 전·후반 60분 내내 코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선수들을 독려한다. 경기가 끝나면 목이 쉬고, 와이셔츠는 흠뻑 젖는다.

1988년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인화여중과 휘경여중 등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었다. 2000년에는 신생팀 수지고를 맡아 2년간 전국대회 전관왕에 23연승 기록을 세웠다. 이상은과 김향기, 장소희, 이민희 등 전·현직 국가대표가 그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다. “핸드볼에 미쳐 운전면허 딸 시간도 없었다”는 그는,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코치로 출전해 “지도자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던 꿈을 어느 정도 이뤘다.

플레이오프 열리기 전에 팀 해체돼

용인시청은 ‘3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용인시청’ 유니폼을 입지 못한다. 플레이오프가 오는 7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현실은 서글프지만 김 감독과 선수들의 눈빛은 강렬하다. 마치 만화 속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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