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라운드의 ‘신의 손’들에게 박수를

축구 골키퍼의 세계… 상대적으로 주목 못 받지만 쉼없이 움직이며 수비 상황 조율해야 하는 경기장의 최전선
등록 2011-05-13 11:52 수정 2020-05-03 04:26
골키퍼는 온몸으로 경기 전체를 읽고 팀에 닥치는 위험을 막아낸다. 국가대표 시절 이운재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을 하루 앞둔 2009년 5월16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골키퍼는 온몸으로 경기 전체를 읽고 팀에 닥치는 위험을 막아낸다. 국가대표 시절 이운재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을 하루 앞둔 2009년 5월16일 경기도 파주 NFC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슛만 잘 막으면 된다고? 그렇기는 하다. 아, 물론 그 일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경기 결과와 골키퍼의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힌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폴 로빈슨이 그 경우다. 크로아티아와의 유로 2008 예선 경기, 동료 수비수 게리 네빌이 백패스를 했는데, 이제 막 공차기를 배운 초등학생도 손쉽게 은하계 저 너머로 내찰 수 있을 공을 로빈슨은 그만 헛발질을 했다. 미세하게 불규칙 바운드가 있었지만, 지금도 유튜브에서 ‘워스트 골키퍼 베스트 10’ 같은 영상을 찾아보면 쉽게 볼 수 있다.

강슛만큼 센 팬들의 공세까지 견뎌내야

축구에서 골은, 쉽게 터지지 않지만, 어쨌거나 매 경기에서 두 골 이상은 터진다. 축구과학의 발달과 견고한 실리 축구에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의 경우 평균 2.27골밖에(월드컵 역대 평균 2.91골) 터지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90분 내내 골키퍼가 상대방의 슛을 쉬지 않고 막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 상황들은 위험천만하다. 1997년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 기록한 브라질의 카를루스의 ‘UFO‘ 슛은 무려 시속 140km!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쏘는 무회전 킥은 결정적인 골이 되거나 골키퍼의 안면을 강타하는 무기가 된다. 골키퍼 바로 앞에서 강슛을 쏘는 비정한 공격수도 있다. 골키퍼는 공격수들을 온몸으로 맞받아치거나 골포스트에 부딪치기도 한다. 뇌진탕, 어깨탈골, 회전근개 파열이 골키퍼를 괴롭힌다. 회전근개는 어깨관절 윗부분을 덮고 있는 근육 힘줄로 파열이 일어나면 팔을 올릴 때 극심한 통증을 준다.

2006년 10월, 잉글랜드 첼시 소속의 페트르 체흐는 상대팀 레딩의 스티븐 헌트의 무릎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 충돌로 두개골 함몰 사고를 겪은 체흐는 아직도 헤드기어를 쓰고 경기에 나선다. 슬픈 사실은, 그 상황에서 긴급 투입된 골키퍼 카를로 쿠디치니마저 경기 막판에 상대방과 부딪혀 기절하고 만 것이다.

사실 슛을 막는 것은 골키퍼가 하는 일의 절반도 못 된다. 전후반 1시간30분 내내 경기장 3분의 1가량의 자기 영역을 쉼없이 움직인다. 골키퍼는 수비수들의 폭과 전진 또는 수비 상황의 속도 및 거리를 조율한다. 그러니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 브라질 대표팀 일원이던 골키퍼 호제리우 세니가 비공인 개인 통산 100골(국제축구연맹 공인으로는 98골)을 기록한 것은,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지만 ‘비고’란에 적을 수밖에 없는 얘기다. 골키퍼는 그 자신의 출처진퇴까지 수시로 능란하게 변주하며 상대방의 슛을 막아내야 한다.

게다가 골키퍼는 그라운드 바깥의 상대방 팬들이 퍼붓는 공세도 견뎌내야 한다. 필드 플레이어는 수시로 위치를 바꾼다. 상대방 팬들이 더러 욕설을 하거나 물병을 던져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골키퍼는 피할 수 없다. 격렬한 욕설과 물병을 피한다는 것은 곧 자기가 수호해야 할 최후의 신성한 영토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심하지 않고 오랜 경륜이 요구되는 포지션의 특성상 골키퍼의 연령은 높은 편인데(현역으로 활동하는 경남 FC의 김병지는 41살이고, 전남 드래곤즈의 이운재는 38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드빈 판데르 사르는 40살이다), 노장 골키퍼들은 새파란 녀석들의 야유(“아직도 축구하냐?”)와 “야, 이 ××아. 집에 가서 애나 봐” 같은 욕설을 듣는다. 물병이나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동전은 골키퍼의 신경을 괴롭히는 악성 무기다. 2007년 10월, 울산 골키퍼 김영광은 심한 욕설과 물병 투척을 시도하는 대전 팬들에게 물병을 되던졌다가 6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600만원 처분을 받았다.

지킬 것 지키느라 울퉁불퉁해진 손

바로 그 김영광의 손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강슛의 속도와 강도에 못 이겨 뒤로 자주 꺾인 그의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하다. 김영광은 (그리고 수많은 골키퍼들은) 그런 손에 단단히 테이핑을 하고 골문을 지킨다. 전남 드래곤즈의 이운재도 기형적으로 비틀어지고 굵어진 손가락으로(왼손 검지는 완전히 접혀지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켜왔다. 5월7일, 이운재의 전 소속팀 수원은 “20여 개 대회 우승을 이끈 창단 레전드”를 위해 ‘111초 기립 박수’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 수원에서 1번을 달고 뛴 골키퍼의 헌신을 세 번 강조하기 위한 ‘111초’, 아름다운 퍼포먼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color="#1153A4">명골키퍼 열전</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우리 앞에 골인이란 없다!</font></font>


에드빈 판데르 사르

에드빈 판데르 사르

에드빈 판데르 사르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샬케04를 가볍게 누른 맨유의 퍼거슨 감독은 종료 뒤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수들 중에서 유독 24살의 젊은 선수에게 미소를 띄우며 악수했다. 바로 상대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 그 경기의 승자는 맨유였지만, 개인상을 줘야 한다면 노이어였다. 퍼거슨이 그를 영입하려 한다는 얘기는 몇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에드빈 판데르 사르는? 남들 같으면 지도자 수업 코스의 원서나 쓰고 있을 30대 중반에 맨유에 입단한 판데르 사르는 2008/2009 시즌에 ‘1302분 무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맨유의 제2황금시대를 빛냈다. 과묵하고 위엄 있는 자태로 골키퍼의 경건한 신성성을 빛낸 이 노장은 마침내 올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호르헤 캄포스

호르헤 캄포스

호르헤 캄포스 1990년대 멕시코 대표팀의 최고 골키퍼. 최전방 스트라이커에서 골키퍼로 포지션 변경을 해 성공한 캄포스는 화려한 유니폼(외계에서 온 듯한 화려한 형광색 줄무늬)은 물론, 그보다 더 화려한 경기력과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뛰어난 점프력과 반발짝 앞선 상황판단 능력, 그리고 일대일 상황에서 공격수보다 더 공격적으로 골문을 지켜냈다. 중요한 것은 그의 키. 168cm란 적어도 캄포스에게는 진짜 숫자에 불과했다.


잔루이지 부폰

잔루이지 부폰

잔루이지 부폰 골키퍼에게 수여되는 세계적인 상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수집한, 이탈리아 출신의 21세기 최고의 골키퍼. 야유·욕설·폭음·섬광·레이저·동전·오물 등이 난무하는 최고이자 최악의 프로무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무려 8번이나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됐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7경기에서 단 한 번의 필드골도 허락하지 않고 자국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