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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과 인간



남아공 월드컵 논란으로 ‘비디오 판독’ 도입 힘 얻어… “과학의 개입보다 6심제가 대안” 주장도
등록 2010-07-07 14:40 수정 2020-05-03 04:26
6월27일 열린 독일-잉글랜드 경기에서 잉글랜드 미드필더 램퍼드가 슈팅한 공이 골라인을 넘는 장면.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REUTERS/ EDDIE KEOGH

6월27일 열린 독일-잉글랜드 경기에서 잉글랜드 미드필더 램퍼드가 슈팅한 공이 골라인을 넘는 장면.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다. REUTERS/ EDDIE KEOGH

마침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언성을 높였다. 그는 지난 6월26일 네덜란드 일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월드컵이 한 가지 확실하게 알려준 것은 비디오 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득점이 인정되지 않거나 취소되면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국제축구평의회 ‘비디오 판독’ 심의

그런데 만일 그가 하루이틀 뒤에 열린 경기까지 마저 보고 칼럼을 썼다면 더욱 격렬한 어조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가 언급한 경기는 조별 리그 G조의 브라질 대 코트디부아르 경기. 그 경기에서 브라질의 루이스 파비아누는 마치 핸드볼을 하듯이 두 팔을 사용해 골을 넣었던 것이다.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오심으로 기록될 골은 히딩크 감독의 칼럼이 게재된 다음에 연거푸 터져나왔다. 6월27일에는 잉글랜드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가 2-1로 뒤진 전반 38분에 독일 골문을 향해 슈팅한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분명히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지만 심판은 이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날 새벽 열린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16강전에서 카를로스 테베스가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리오넬 메시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고 말았다. 두 골 모두 명백한 오심이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중계에는 무려 32대의 초고속 카메라와 200명의 중계 인력이 투입됐다. 1초에 2700장을 찍을 수 있는 ‘울트라 모션 카메라’는 그야말로 ‘총알처럼 날아가는 총알’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심판은 자신을 속이려 드는 양 팀 선수가 아니라 수십 대의 카메라와 그것을 지켜보는 수억 명의 시청자와 싸우는 중이다. 명백한 오심 이후 벌어진 경기에서 심판들은 최대한 정확하게 판정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휘슬을 부는 경향까지 보여줬다.

‘비디오 판독’ 논란은 이제 국제축구평의회(IFAB)로 넘어가게 되었다. IFAB는 경기 규칙을 제정·변경하거나 축구 경기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일종의 ‘의결기구’다. 이 기구의 의결에 따라 국제축구연맹(FIFA)이 경기의 규칙과 운영에 관해 ‘집행’하는 식이다. 이 기구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의 각 축구협회 1인과 FIFA의 대의원 4인, 곧 8인으로 구성되며 축구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규정과 운영에 관한 사항을 토의하고 의결한다. IFAB는 올해 초 국제프로축구선수협회(FIFpro)가 제의한 ‘골라인 비디오 판정’에 대해 당분간 도입하지 않겠다고 결론낸 바 있는데,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발생한 오심 때문에 결국 제프 블라터 회장은 7월에 카디프에서 열리는 IFAB 회의에서 이 사안을 본격적으로 심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튼 이 결정적인 오심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히딩크 감독은 단단히 성이 난 상태였다. ‘비디오 판독’ 같은 혁신적 조치를 검토하지 않을 것이라면 물러나야 한다고 제프 블라터 회장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한편 그는 칼럼에서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축구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특별위원회라도 구성해 논의해야 한다고 썼는데 그 명단으로 요한 크라위프, 프란츠 베켄바워 그리고 미셸 플라티니를 언급했다.

히딩크가 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명단에 미셸 플라티니를 언급한 것은 다소 의외의 선택(?)이다. 왜냐하면 플라티니는 현재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으로 제프 블라터 다음으로 세계 축구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인데,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축구의 휴머니티’를 수호하기 위해 비디오 판독이나 스마트볼 같은 첨단 과학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이 때문인지 히딩크는 세 사람의 이름을 거명한 뒤 곧 이어지는 문장에서 “베켄바워, 크라위프 같은 사람들이 그런 일(비디오 판독)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플라티니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해 11월,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2010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 0-1로 뒤지던 연장 전반에 명백히 핸드볼 반칙을 범한 티에리 앙리의 터치로 프랑스가 동점골을 얻었다. 이에 FIFA 집행위원회는 “주심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핸드볼을 징계할 규정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라 비디오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첨단 과학에 의존해야 하나

이때 미셸 플라티니는 첨단 과학이 축구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가급적 인간의 힘으로 실수를 줄이는 방향을 선택했다.

플라티니가 주장하는 대안은 6심제, 곧 주부심 3명과 1명의 대기심에 더해 양쪽 골라인에 각각 1명씩 심판을 두는 것이다. 이는 올 시즌부터 유로파리그에서 실험한 바 있으며, 국내 K리그에서도 지난해부터 운영됐다.

지난해 K리그 챔피언십 기간 중 6강 플레이오프 두경기와 준플레이오프까지 세경기에서는 기존 4심제가 유지됐다. 6위 팀도 몇 경기만 제대로 풀어내면 우승까지 넘볼 수 있는 K리그 플레이오프의 특성상 당연히 거친 판정 시비가 자주 일어났고, 선수와 벤치의 항의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나 6심제가 도입된 플레이오프부터는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감독과 선수들이 벤치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이 줄었다. 특히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전북 이동국의 골이 성공되는가 싶었으나 그 이전에 동료 선수 루이스의 핸드볼 파울이 골라인 바깥의 심판에게 적발돼 노골로 확정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로써 비디오 판정보다는 6심제를 도입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음이 입증됐다.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아직 인간이 실수투성이 인간의 약점을 보완할 방법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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