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구독하기

기사 공유 및 설정

오늘만 사는 벌거벗은 임금님, 트럼프

전쟁비용 급증에 의회 승인 없인 병력 철수해야… 이란 원유 수익은 침공 전보다 외려 40% 늘어
등록 2026-05-03 09:06 수정 2026-05-03 09:08
2026년 4월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미 중인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함께 백악관 경내를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4월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미 중인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함께 백악관 경내를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4월24일 오전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 댄 케인 합참의장이 이란 전쟁 관련 언론 브리핑에 나섰다. 한국,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차례로 언급한 헤그세스 장관은 “몇 년, 몇십 년씩 걸렸던 과거의 전쟁과 달리 ‘장대한 분노’ 작전은 불과 몇 주 만에 결정적인 군사적 결과를 달성했다”며 열을 올렸다. 브리핑 막바지에 손을 든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장관님은 국방부의 명칭을 전쟁부로 바꾸셨습니다. 전쟁부란 이름을 평화부로 한번 더 바꿀 의향은 없으십니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평화니까요.” 헤그세스 장관의 답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직후부터 세계와 불화하며 고립을 자초하는 미국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기자 질문에 동문서답한 전쟁부 장관

 

“네, 그게 목표죠.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꾼 것도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얼마 전 장군들 앞에서 전쟁부의 신조에 관해 연설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쟁부의 모든 구성원이 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저 말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반대편에 있는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건 바로 평화이기 때문이죠. 언젠가 본 동영상이 떠오르네요. 매년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유일한 단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미군이란 내용이었습니다. 미군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의 안전과 안보를 보장해주고 있으니까요.”

2026년 4월29일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6년 4월29일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려 국방부를 전쟁부로 개칭한 건 2025년 9월5일이다. 전쟁부는 공식 명칭이 아니다. 정부 조직의 이름을 바꿀 권한은 의회에 있다. 전쟁부는 ‘보조 명칭’일 뿐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4월28일 국방부의 공식 명칭을 전쟁부로 바꿔달라고 의회에 공식 요청했다. 의회가 승인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상주인원만 2만5천 명이 넘는 세계 최대 단일 관공서 건물인 국방부 청사는 물론 미국과 세계 각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표지판과 게시물, 각종 문서를 비롯해 미군이 사용하는 모든 물품에 등장하는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꿔야 한다. 이에 필요한 예산을 헤그세스 장관은 5200만달러(약 770억원)로 추산했다. 앞서 의회예산처(CBO)는 1월16일 펴낸 관련 보고서에서 국방부 명칭 변경에 필요한 예산이 최대 1억2500만달러(약 1855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방부 추산치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국방부 명칭 변경 예산은 잠시 잊어도 좋다. 백악관 쪽이 4월3일 의회에 요청한 2027회계연도(2026년 10월~2027년 9월) 국방예산은 무려 1조5천억달러(약 2226조1499억원) 규모다. 사상 유례없이 전년 대비 약 42%나 증액된 건 이란 전쟁 탓이다. 줄스 허스트 국방부 재무담당 차관 겸 감사관 권한대행은 4월29일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현시점까지 소요된 이란 전쟁 경비는 약 250억달러(약 37조1천억원)에 이른다. 대부분 탄약 비용이며, 작전 수행과 병력 유지 및 장비 교체 비용도 포함된 수치”라고 밝혔다. 국방부 쪽은 이란 전쟁 초기인 3월 초순 의회 비공개 브리핑 당시 개전 직후 6일간 약 113억달러(약 16조7700억원)의 전쟁 경비가 소요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국방부는 의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추가 보고를 피해왔다.

 

국방예산, 초유의 40% 증액 요구했지만

 

이란 전쟁 경비는 민감한 사안이다. 전쟁권한법(1973년)에 따라 대통령은 병력을 전투에 투입하면 48시간 안에 의회에 통보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침공 사실을 의회에 공식 통보한 건 3월2일이다. 의회가 사후에 선전포고를 하거나 병력 동원을 승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60일 안에 배치한 병력을 모두 철수시켜야 한다. ‘60일 시한’은 5월1일이다. 의회의 승인 없이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전쟁 경비는 예산권을 쥔 의회의 최대 관심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전쟁 경비로 매일 10억달러(약 1조4800억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리처드 블루먼솔 민주당 의원(코네티컷)은 4월3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앞서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월6일 복수의 공화당 의원 말을 따 “국방부가 이란 전쟁 경비로 하루 최대 20억달러(약 2조9600억원)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하루 전쟁 경비를 10억달러라고 상정해보자. 1초에 1만1574달러, 1시간에 4166만6667달러가 전쟁 경비로 소진된다. 국방부가 밝힌 개전 직후 6일간 사용된 경비 113억달러와 이후 하루 10억달러씩을 더하면, 전쟁 61일째를 맞은 4월30일 오전까지 이란 전쟁 경비는 660억달러(약 98조원)를 넘어섰다. 역시 국방부 추산치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언제까지 전쟁을 지속할 수 있을까?

2026년 4월29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국기를 든 시민들이 관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2026년 4월29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국기를 든 시민들이 관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협상은 중단된 상태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과 미국 양쪽이 꽁꽁 막고 있다. 교전 없는 전쟁, 기이한 휴전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이 2026년 4월2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은 내세운 전쟁의 목적을 단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미국이 협상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급할 것 없다는 투다. 이란 쪽은 호르무즈해협을 먼저 개방하고, 핵문제 등 쟁점은 후속 협상으로 풀자는 2단계 협상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어느 쪽 지구력이 더 셀까

 

미군은 1차 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4월13일부터 오만만 일대 아라비아해를 봉쇄하고 있다. 노림수는 두 가지다. 첫째, 원유 저장 능력이 소진되면 이란이 결국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란 셈법이다. 둘째, 원유 수출이 막힌 이란이 재정적으로 취약해지면 내부 반발이 거세지리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21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이란이 재정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을 즉시 개방하고 싶어 한다. 현금에 굶주렸기 때문이다. 이란은 하루 5억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다. 군과 경찰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핵심은 결국 지구력 싸움이다. 이란이 언제까지 봉쇄를 버텨내느냐, 미국이 언제까지 해상봉쇄를 지속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4월24일 해상무역 정보업체 케이플러의 자료를 종합해 전한 내용을 살펴보자. 이란 원유 수출량의 약 80%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한다. 나머지 20%는 육로로 수출된다. 2025년 이란의 하루 평균 원유 수출량은 약 168만 배럴이다. 전쟁 뒤엔 어떨까? 케이플러 쪽은 “3월 한 달 이란은 하루 평균 184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4월 들어서도 봉쇄 전까지 하루 평균 171만 배럴을 수출했다”고 밝혔다. 전쟁 전보다 원유 수출량이 늘어난 것은 유가 급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이렇게 덧붙였다.

“3월15일부터 4월14일까지 이란은 5522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이 기간에 이란산 원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날이 더 많았다. 보수적으로 계산해 배럴당 90달러라고 쳐도, 이란은 이 기간에 원유 수출로 적어도 49억7천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냈다는 뜻이다. 전쟁 직전까지 이란은 원유 수출로 한 달 평균 약 34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개전 이후 전쟁 전보다 원유 수익이 40%가량 늘었다는 뜻이다.”

중장기적으론 버티기 어렵겠지만, 이란이 단기간에 미국의 해상봉쇄에 굴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어떨까? ‘60일 시한’이 지나면 의회의 공세가 거세질 게다. 이란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중국의 발언도 갈수록 거칠어진다. 중국 쪽은 이미 “(미군이) 중국 선박을 봉쇄하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피해가 쌓이는 유럽과 아시아 각국도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처럼 ‘째깍째깍 가고 있는 시간’이 마냥 미국에 유리한 건 아니란 뜻이다. 4월27일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를 방문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2026년 4월2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오른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UPI 연합뉴스

2026년 4월2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오른쪽)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UPI 연합뉴스


 

‘암살 미수’ 사건에도 추락하는 지지율

 

“미국이 명확한 전략 없이 전쟁에 뛰어든 건 분명하다. 이란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고, 미국은 설득력 있는 협상 전략이 없다. 이런 식의 분쟁은 언제나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쳐들어가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빠져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 아프간에서 20년간 매우 고통스럽게 지켜봤고,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로선 미국에 이렇다 할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이란 쪽은 아주 효과적으로 협상을 하거나, 또는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 이란 지도부가 미국에 굴욕감을 안기고 있다.”

황당한 ‘암살 미수’ 사건도 추락하는 지지율을 떠받치지 못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진 뒤 로이터 통신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와 공동으로 실시해 4월29일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4%까지 떨어졌다. 건국 250주년을 맞아 자신의 얼굴을 담은 ‘한정판 여권’을 발행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상은 아예 말을 잊게 한다. 미국을 방문한 영국 국왕 찰스 3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덧붙인 설명글은 ‘2명의 왕’이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희대의 영웅이 되고 싶은가? 미국 주간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집착을 두고 “욜로(오늘살이) 대통령”이라고 꼬집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린 형국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