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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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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야구하게 해주세요

등록 2010-06-03 16:31 수정 2020-05-03 04:26
우리, 야구하게 해주세요

우리, 야구하게 해주세요

아들과의 싸움에서 지는 날이 늘었다. 장난감 총을 한동안 사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총을 쏘면서 노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 실내에서 표적을 맞추는 것만 허용한다는 전제를 달아 사주고 말았다. 아이 엄마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아이 때 너무 누르면 커서 집착하게 된다고. 잘못하면 다 커서 총기 마니아가 될 수도 있다고.

내가 꼭 그렇다. 운동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릴 때 못한 운동량을 채우겠다는 듯이 이 운동 저 운동에 매달린다. 집 창고에 처박힌 축구화 몇 켤레와 유니폼, 테니스와 배드민턴 라켓, 인라인스케이트, 검도 호구, 등산 장비에 아직 입문하지 않은 골프채까지. 딱히 잘하는 것은 없으면서 종목을 가리지 않고 껄떡댄다.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아내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저 인간, 얼마나 가나 보자.’

이런 날도 있었다. 오후에 야유회를 겸해 북한산 산행이 예정돼 있었고, 아침엔 기자협회 축구대회를 앞두고 와 연습경기가 있었다. 등산복을 입고 유니폼을 챙겨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촌천살인의 대마왕, 아내께서 한마디 하셨다. “당신은 운동하러 회사 다니는 거 같아.” 기자로 복귀하기 전 2년 동안 한겨레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언론운동과 노동운동에도 몰두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지지 않고 대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하는데, 알아서 하니까 좋잖아? 나 살기 위해 이러는 거야.”

새로 시작한 야구는 그동안 해온 운동에 비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었다. 평소엔 짠돌이면서 글러브 같은 야구용품을 사는 데는 돈을 펑펑 쓰는, 예전에 비해 주말까지 밖으로 나도는 남편이 아내에게는 점점 더 ‘남의 편’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온갖 압박과 설움을 뚫고 야구 좀 해보려는데 도와주지를 않는다. 야구 얘기를 해도 모자랄 소중한 지면에 흰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우리팀 비비언스가 가입된 투타리그에 문제가 생겨 4월17일 첫 경기 이후 게임을 못했기 때문이다. 투타 일산리그에는 130여 팀, 투타 하남리그에는 80여 팀이 가입해 대략 200여 팀이 270만원씩 가입비를 냈다. 그런데 리그 운영자 중 한 명이 돈을 갖고 튀었다고 한다. 하남리그는 구장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우리 팀이 속한 일산리그는 팀당 한두 경기만 한 채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리그 운영진이 구장 공사비, 사용료, 심판 기록비를 내지 못해 생긴 일이다. 각 팀 대표들이 리그 운영자를 고발했지만, 경기도 하지 못하고 가입비도 돌려받지 못한 채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가입비만 쳐도 5억원이 넘고 피해자가 수천 명이다. 내막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면 사회인 야구 인기에 편승한 사기 사건이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최환서 감독은 미안해하며 다른 구장을 구하고 연습경기를 잡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야구를 계속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투타리그가 정상화되길 바라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리그 홈페이지에는 프로야구 선수들 기록표처럼 개인기록이 나온다. 딱 한 게임, 두 차례 타석에 섰던 나의 타율은 0.00. 나, 야구 하는 사람인데 이 타율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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