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사람들의 정념 가운데 하나는 ‘환멸스런 세상과의 깨끗한 단절’이었다. 세상은 혼탁하고(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사후 수습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빈회의에 따른 구체제의 복권), 진부해졌으며(빈체제 이후의 지극히 평범하고 나른한 일상문화), 삶의 내면을 충동질하는 ‘사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보바리 부인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기를 언제나 기다렸다. 마침 한 사람이 등장한다. 법학도 레옹이다. 마담 보바리는 순풍을 거스르고 제 삶의 일방통행로를 여지없이 역주행해버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영혼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법학도 레옹은 보바리 부인에게 말한다.
등산, 정념의 한 조각을 품는 것
“호수의 시적인 아름다움과 폭포의 매력과 거대한 빙하의 맛은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나무들이 급류를 가로질러 무성하고, 천애절벽에 걸려 있는 듯한 오두막집들에다, 구름이 반쯤 열려지기라도 하면 발아래 천 길 밑으로 골짜기가 완전히 보이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풍경은 틀림없이 우리를 열광시킬 것이고, 기도의 세계나 법열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줄 겁니다.”
과연 19세기 사람들은 그같은 정념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이를테면 니체가 있다. 그의 철학사상은 논외로 하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산악문학에 조예가 깊은 심산씨에 따르면, 20세기 초반과 양차 대전 사이에 많은 산악인이 니체의 저작을 읽었다. 그 시절에는 ‘단독 등반’이 대세였고, 산악인들은 가이드 없이(심지어 자일조차 쓰지 않고) 홀로 저 아득한 산정을 지향하며 암벽을 올랐다. 조난당한 그들의 배낭에서 니체의 책이 꽤 많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 염세주의이면서, ‘진정한’ 염세주의가 대체로 그렇듯이, 삶에 대한 지독한 사랑의 다른 방식이었다. 비루한 일상을 벗어나 고결한 영원성으로 깃드는 것, 아득한 산정에 올라가 인간은 어차피 단독자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는 것, 그래서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정화된 영혼과 육신으로 거듭나는 것, 혹시 그 와중에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삶과 죽음이란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하는 심원한 허무주의, 그것이 당시의 산악문화를 지배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산을 오른다는 것은 이러한 정념의 한 조각을 마음에 품는 일일 것이다. 탈속의 경지란 일순간 주어지는 비현실의 낭만이거나 ‘참된 고독’일진대, 그것은 오래 주어지지 않는다. 오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누구나 그것을 손쉽게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산정 위의 고독은 금단의 과실이 된다. 산에 왜 오르는가? 이 한반도의 질박한 산들이나 저 히말라야의 아득한 고봉이나, 그곳을 오르는 데 수많은 답변이 있을 수 있는데, 아마도 그 순간의 매혹적인 고립감(달리 표현해 대자연에 홀로 안기는)이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정념일 것이다.
그가 수도 없이 오르내린 산정의 길과 바위처럼 단단한 시를 오랫동안 써온 시인 이성부는 ‘나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보다/ 밖에서 내가 풍경의 한 점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썼는데, 이런 것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이다. 시인은 언젠가 한번은 산을 내려오는 중에 ‘풀섶에 버려진 나무 지팡이’ 하나가 쓸 만해서 그것을 집어든다. 그 순간, 시인은 감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내 왼손을 거쳐/ 땅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시인은 감지한다. 그 느낌이란 ‘내 손가락 발가락 끝 모세혈관까지/ 힘이 실려 도는 소리 같은 것’이다.(이상 이성부 시집 에서 인용)
원정대라니? 사전이나 펼쳐봤는가저 아득한 히말라야 8천m! 그 높은 곳의 14개 봉우리를 다 올랐다가 내려온 오은선씨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도전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인간 승리의 과정이었다. 정말 장하고 자랑스럽다”는 축전을 보냈다. 나는 ‘도전정신’이나 ‘인간 승리’라는 진부한 표현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는 대통령 개인의 언어 습관이나 취향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정념을 함축한 것이다. 과학·교육·문화·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정한 성취를 내면 곧장 ‘불굴의 한국인’으로 포장되는 직선의 국가주의 말이다. 이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도 아니고 산악문화와 무관한 일도 아니다. 당장 히말라야 높은 봉우리에 오르겠다는 단체들을 보라. 대학이나 기업의 이름을 앞세운 ‘원정대’들 아닌가. 원정대라니? 그 말의 제국주의적 그림자는 고사하고 사전이라도 펼쳐보고 쓰는 것인가?
아마도 오은선씨는 자신의 등정에 대한 국내외 산악계의 ‘논란’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칸첸중가 등정에 대한 시비가 있고 상업주의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다.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히말라야 고봉이 오은선씨 같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돈만 내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바뀐 세태를 한탄한다. 수많은 등정 회사들이 히말라야 중턱에 진을 치고 기다린다. 초모룽마(일명 에베레스트) 등정에는 산소를 포함해 6만달러 정도, 초오유나 가셔브룸Ⅱ는 2만달러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해발 6천m가 넘는 곳에 샤워용 텐트나 온수 보일러가 세팅돼 있다. 이런 현황에 치를 떠는 순수파들은 오은선씨 같은 상징적 인물이 한국방송 중계팀과 함께 안나푸르나에 오른 것(그 과정과 경쟁들)을 염려한다. 그 말들은 오은선씨의 마음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유명 강사가 되지 마세요그래서 나는 오은선씨에게 정중히 부탁하고자 한다. 나는 제발 오은선씨가 여러 기업이나 학교를 돌면서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이나 ‘한국인의 쾌거’ 같은 흰소리를 하는 강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정말로 14개 봉우리를 ‘정복’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할 얘기이며 그처럼 ‘한국을 빛낸 유명 강사’가 되는 순간 오은선씨는 환호하는 군중이나 사진 찍기 좋아하는 기관장들을 얻는 대신 진지한 산악 동료들을 잃게 될 것이다.
대신 다른 얘기를 듣고 싶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그것을 듣고 싶다. 이는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냉혹한 질문이 아니다. ‘어떻게’ 올랐느냐는 논란에 뛰어들 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 어쨌든 오은선씨는 그 높은 곳 14봉우리를 오른 사람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14개 봉우리들이 저마다 달랐을 것이다. ‘인증샷’을 찍어야 하는 그 찰나의 느낌들이 달랐을 것이다. 시인 이성부는 산의 ‘고요함이 무서움’이라고 쓴 적 있다. 그런 절대적인 무서움에서 살아돌아온 오은선씨에게 그 높은 봉우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어떤 공기가 흘렀는지, 그 광대무변한 세계는 어떤 경지였는지, 그 아득한 산정에는 어떤 절대 고독과 외로움과 서글픔이 있었는지 정말로 들어보고 싶다. 그 높은 곳에 홀로 섰을 때,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을 헤치며 내려올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지 들어보고 싶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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