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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 구장

등록 2010-04-09 21:07 수정 2020-05-03 04:26
공포의 외인 구장

공포의 외인 구장

계획대로라면 내가 속한 팀 비비언스(Bbans)는 2월20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네 경기를 마쳤어야 한다. 우리 팀이 속한 리그는 ‘슬러거배 투타베이스볼 리그’ 중 일산 토요3부 리그 A조. 일곱 팀이 8월까지 12경기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팀과 아직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운동장 사정 때문이다. 첫 경기는 구장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경기 전에 큰 비나 눈이 오면 어김없이 미뤄졌다. 3월13일, 경기가 취소된 줄 모르고 일산 외곽에 있는 경기장에 가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일산 가구공단과 아파트 공사장 사이의 공터. 도톰하게 솟은 마운드와 홈 플레이트, 각 루의 베이스가 없었다면 누가 여기를 야구장이라고 생각할까 싶었다. 내야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외야는 뻘밭이었다. 외야로 날아간 공은 구르지 않고 땅에 박혀버렸다. 야구 문외한조차도 휩쓸릴 만큼 달아오른 야구 열기 때문에 신생 리그가 많이 생겼고, 구장을 급하게 만들다 보니 빚어진 일이었다. 공격할 때 선수들이 대기하는 더그아웃은 의자 몇 개가 놓인 천막이었다. 심지어 화장실 같은 기본 편의시설조차 없었다.

우리만의 문제일까. 사회인 야구 경험이 많은 최환서 감독(페이퍼하우스 대표)은 “구장 문제는 사회인 야구팀 대부분이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말했다. 다른 팀원들의 증언도 비슷했다. 여기는 마운드라도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야구팀이 있는 학교 운동장을 빌려 쓰던 어느 리그는 주민 민원으로 운동장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 경기장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아, 이놈의 인프라는 어디나 문제다. 리그에 들어가려면 팀당 300만원 가까이를 내는데도 그렇다.

경기장 사정 때문에 살짝 우울했지만, 모든 경기가 취소된 덕분에 우리는 구장을 독점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눈치 보며 연습할 때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두 팀으로 나눠 7회까지 연습 경기를 했다. 덕분에 실력은 후보급인 나도 주전으로 뛸 수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했던 팀원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7번 타자에 2루수. 긴장됐다. 우리끼리지만 경기다운 경기는 처음이었다. 마음은 시원스럽게 외야까지 날려버리고 프로야구 선수들처럼 멋진 수비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몸을 고려해 목표를 낮춰 잡았다. 에러(실책)하지 않기, 삼진 당하지 않기. 기억에 의존한 기록을 보면 일단 목표는 달성했다. 전 회 출루에 전 회 득점. 두 번은 포볼을 얻어 걸어 나갔다. 한 번은 나를 대신해 주자가 죽어줬고, 또 한 번은 안 그럴 것 같던 ‘적군’ 유격수가 에러를 해서 간신히 살았다. 내용은 2타수 무안타. 수비할 때는 전 회를 통틀어 공이 한 번 왔고 빠르지 않은 땅볼이어서 초짜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결과는 20-10으로 우리 팀 승리였다. 핸드볼 경기와 비슷한 점수가 났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정한 목표는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이지만, 역시 이기니까 좋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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