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앞두고 개최국 앙골라에서 믿기 힘든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네이션스컵을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던 토고 대표팀이 앙골라 무장단체의 총격을 받아 대표팀 관계자 3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이 소식은 앙골라 방문을 생각하고 있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2008년 가나 네이션스컵을 방문했던 필자로서는 더욱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들이 혼란을 즐기기 때문에”
현재 앙골라에 있는 가나 대표팀 연락관 프린스 예부아에 따르면, 앙골라의 치안은 상당히 불안하다고 한다. 시내에 나가는 것조차 위험하다며 앙골라 치안에 대해 불만을 털어놨다. 게다가 테러 사건 이후 앙골라 입국이 힘들어져 가나 대표팀 소속 프린스조차 비자를 갖고 있어도 쫓겨날 뻔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불안한 치안 상태는 앙골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나에서도 번잡한 축구장 주변에는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려 외국인은 가방을 아예 앞쪽으로 매야 할 정도다.
치솟는 물가도 문제다. 앙골라의 경우 호텔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싱글룸이 무려 500달러(약 70만원)이며 콜라가 5달러(약 7천원)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사정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만한 가격이다. 내가 2008년에 갔던 가나에서도 형편없는 호텔의 싱글룸이 200달러를 호가해서 기가 막힌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더 심각한가 보다.
사실 아프리카의 무질서와 혼란은 치안이나 물가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숙함과 혼란스러움은 축구 대회 운용에까지 미친다. 가나 네이션스컵 때는 프랑스의 스포트파이브라는 회사가 미디어 관리를 맡고 있는데도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기자실에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미디어패스가 있음에도 당일 경기 티켓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디어룸만이 아니라 관중 입장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질서 개념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인들은 입장 때마다 압사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게다가 축구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싸움으로 끝나는데, 이런 점들을 불평하는 나에게 프랑스의 기자 호아킴은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혼란을 즐기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치안 부재 등의 문제로 아프리카의 많은 축구팬들이 앙골라 방문을 꺼리고 있다지만 현지 축구 열기는 대단하다고 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축구는 곧 삶이고 살기 위해 축구를 즐기기 때문이다. 토속신앙이 강한 아프리카에는 팀마다 주술사가 있을 정도로 축구는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특히 하킴이라는 주술사는 항상 칠면조를 들고 다니며 내내 주술을 외우면서 경기를 예측했는데, 그 예언(?)이 항상 들어맞아 나중에는 나도 믿을 정도였다. 선수들 역시 훈련 전후로 원을 만들어 기도를 하곤 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믿는 사람에게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항상 춤과 노래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아프리카 축구 문화에서는 춤과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아프리카 경기를 볼 때 관중이 타악기 연주와 함께 흥겨운 가무를 즐기는 것을 누구나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경기 내내 주술을 외우며 기도하는 건 다반사고, 심지어 온몸에 보디페인팅을 하고 물동이를 지고 뛰어다니면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기도하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선수들도 춤과 노래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경기를 하러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춤과 노래로 긴장을 풀고, 축구도 리듬감 있게 한다. 가나 대표팀은 한밤중에 선수들이 호텔에서 몰려나와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했으며, 카메룬 대표팀이 묵던 호텔에는 카메룬 국립연극단이 방문해 위문공연을 할 정도로 그들에게 축구와 춤·노래는 뗄 수 없는 관계다. 아프리카인들은 비록 가난과 싸우지만 이처럼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놀라울 정도다. 몸에 밴 춤과 노래를 보는 것은 축구 경기를 보는 것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파파라치가 찍은 자기 사진을 사다아프리카 축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흥겨운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축구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함을 나누고 있다. 대표팀 호텔에는 도우미가 2명 있는데, 선수들은 그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의 데스크 위에 놓인 티셔츠와 공에 사인을 해줬고 도우미들은 이것을 내다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또한 프리랜서 사진사들은 호텔에 실시간 인화기까지 마련해두고 선수들 사진을 찍어 여러 경로로 판매한다. 이 정도면 파파라치도 뺨칠 정도다. 유럽에서라면 당연히 소송감이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초상권을 주장하기는커녕 자신도 돈을 내고 사진을 구매하는 인간미가 있었다.
가나에서 만난 마이클 에시엔(첼시)에게 ‘아프리카에 축구는 어떤 의미냐’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축구는 아프리카의 꿈이며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축구 덕분에 인간다운 삶의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고, 어른들은 축구를 통해 삶의 애환을 녹이기 때문일까. 어찌됐든 저들에게 축구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기에 대부분의 아프리카 아이들이 축구선수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맨발로 흙바닥에서 축구를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들에게서 삶의 희망과 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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