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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볼’이란 별명을 날려버리리~

핸드볼 전용 경기장 건립 착수·세계대회 유치 이어 슈퍼리그 출범…
경기장 찾아 ‘우생순’의 감동을 느껴보자
등록 2009-09-16 16:51 수정 2020-05-03 04:25

지난 9월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2009 다이소 핸드볼 슈퍼리그 코리아 챔피언결정전에서 여자부 삼척시청이 벽산건설을 꺾고 극적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서로 부등켜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지만, 어쩌면 ‘한데볼’ 선수라는 서러움의 눈물이기도 했다.
영화 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우승을 차지한 뒤 기쁨의 눈물은 잠시뿐. 삼겹살집에 모인 우승팀 감독과 선수들은 해체를 앞둔 팀 걱정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날릴 그날이 올 것인가. 지난 9월8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2009 다이소 핸드볼 슈퍼리그 코리아 챔피언결정전 여자부 경기에서 벽산건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삼척시청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연합 임현정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날릴 그날이 올 것인가. 지난 9월8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2009 다이소 핸드볼 슈퍼리그 코리아 챔피언결정전 여자부 경기에서 벽산건설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삼척시청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연합 임현정

우승해도 짧은 기쁨 뒤엔 오랜 썰렁함이 남는 비인기 종목

다행히 현실의 삼척시청은 ‘핸드볼 메카’라는 별칭답게 삼척시의 지원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해체될 걱정은 없다. 이계청 삼척시청 감독은 우승 소감 인터뷰에서 “고교 선수들이 삼척까지 오려고 하지 않아 스카우트에 어려움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삼척시청의 지원으로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도 삼척 시민들은 50인승 버스 한 대를 대절해 경기장을 찾았다. 이들은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삼척시청이 수비할 때는 “디펜스! 디펜스!”를 연호했고, 승리가 눈앞에 다가오던 후반 막판에는 더디게 흐르는 시계를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했다.

우승 뒤의 체육관은 썰렁하다. 여자실업 핸드볼대회에서 우승을 여러 번 경험했던 이재영 대구시청 감독은 “고통은 길고 영광은 짧다”고 했다. ‘한데볼’로 잘 알려진 핸드볼에선 이를 더 실감한다. 88서울올림픽 여자 금메달과 남자 은메달을 기념하고 겨울 스포츠로 정착시키려 만든 핸드볼 큰잔치 때는 대회 내내 기자 한 명 보이지 않다가 결승전이 열리는 딱 하루만 핸드볼 담당 기자들이 죄다 몰린다.

핸드볼인들은 지난해 말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동안 핸드볼계는 한데 힘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파벌로 얼룩졌던 게 사실이다. 한때 대기업이 협회를 맡았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을 뗐다. 그 뒤 정치인들이 주로 협회장을 맡다가 이번에 다시 대기업 회장이 협회장직을 맡게 됐다. 핸드볼인들은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해졌다며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유동화 전 대한핸드볼협회 상임부회장은 “어쩌면 핸드볼인들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단합’을 강조했다.

다행히 대한핸드볼협회는 올 들어 핸드볼계의 숙원이던 전용 경기장 건립에 착수하고 20년 만에 세계대회를 유치해 스포츠 외교력도 강화하는 등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핸드볼 슈퍼리그의 출범이다. 장장 5개월 동안 펼쳐진 핸드볼 슈퍼리그는 핸드볼 사상 처음 시도하는 장기 레이스다. 축구·야구·농구·배구 등 프로로 발전한 종목들이 그랬듯이 프로화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세미 프로리그를 표방했다. 김태훈 대한실업연맹 전무(충남도청 감독)는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핸드볼도 인기 종목으로 서서히 발돋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팀도 많이 늘었다. 남자의 경우 88올림픽 때만 해도 실업팀이 없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고도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군대(상무)를 스스로 찾아 들어갈 정도였다. 지금은 남자가 다섯 팀이나 된다. 여자도 한때 10개 넘는 팀이 있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5개까지 줄었지만 이제는 여덟 팀으로 늘었다.

슈퍼리그는 남자 다섯 팀이 5라운드, 여자 여덟 팀이 3라운드를 벌여 남녀 각각 3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2·3위전 승자가 1위 팀과 챔피언 결정전을 가졌다. 스포츠계에선 “핸드볼도 플레이오프가 있다”며 화제가 될 정도다.

축구·야구·농구·배구·럭비 장점 섞어놓은 듯

핸드볼 경기 관람은 축구·야구·농구·배구·럭비 등 5개 종목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축구처럼 양쪽 골문에 골키퍼를 세우고 공격과 수비를 반복한다. 핸드볼의 패스는 야구의 던지기와 받기를, 그리고 사이드암슛이나 언더슛은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스로 투수의 투구를 연상시킨다. 농구처럼 드리블이 있고, 오버슛은 배구의 스파이크와 같다. 수비할 때 상대와 격렬하게 부딪히는 몸싸움은 바로 럭비 경기다.

해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스타도 많아졌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최우수선수와 득점왕을 밥 먹듯 했던 윤경신(36·두산), 스위스 리그 최고 스타로 우리 나이로 마흔인 노장 조치효(39·인천도시개발공사), 차세대 에이스 ‘사자머리’ 정수영(24·웰컴크레디트 코로사), 188cm의 ‘꽃미남’ 정의경(24·두산) 등이 있다. 여자 선수 중에는 루마니아에서 귀국한 ‘속공의 달인’ 우선희(31·삼척시청), 오스트리아에서 뛰다가 복귀한 김차연(28·대구시청), 88년생 ‘귀염둥이’ 김온아(21·효명건설), 신인상을 받은 ‘얼짱’ 윤현경(23·서울시청) 등이 꼽힌다.

핸드볼은 재미있다. 빠르고 호쾌하다. 격렬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스카이슛, 스핀슛, 속임 동작 등 묘기도 속출한다. 골도 쏠쏠하게 터진다. 골문 뒤에서 보면 수비의 움직임과 선수들의 가쁜 숨소리까지 만끽할 수 있다. 공격이 안 풀릴 때는 10분 넘도록 한 골도 못 넣는다. 그러다가도 속공 몇 개만 먹히면 4~5점 정도는 후딱 뒤집는다.

핸드볼 스타들은 올가을 전국체전에 이어 올겨울 핸드볼 큰잔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올림픽의 재미와 ‘우생순’의 감동, ‘월드스타’가 있는 핸드볼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어떨까.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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