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6일 막을 내린 제25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끈 이는 신동파 단장, 김동광 부단장, 허재 감독이다. 이 셋은 1960년대 중반부터 대략 10년 주기로 한국 농구를 대표한 스타들이다. 신 단장이 1944년생, 김 부단장이 1953년생, 허 감독이 1965년생이니 만으로 각각 65살, 56살, 44살이다. 셋은 또 한국 농구를 삼등분한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출신이기도 하다.
한국 농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인 세 사람이 지난 8월7일 저녁 아시아농구대회가 열린 중국 톈진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필자도 운 좋게 이 자리에 끼었다. 셋의 이야기는 옛날 에피소드로 시작됐다. 신동파 단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과거 외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 있었던 이야기였다.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는데 당시 대표팀 동료 선수였던 곽현채 현 한국여자농구연맹 심판위원장이 유니폼 반바지를 잘못 입고 나왔어요. 그걸 내가 발견하고 손으로 곽 위원장 바지를 가리켰더니 곽 위원장이 고개를 숙여 바지를 쳐다보며 깜짝 놀라더군요.”
신 단장의 말이 이어졌다. “감독한테는 혼쭐이 날까봐 얘기 못하고 급히 사람을 시켜 유니폼 바지를 가져오도록 했어요. 경기는 시작됐는데, 다행히 곽 위원장은 스타팅에서 빠졌죠. 유니폼이 도착하고 곽 위원장이 후반에 투입됐는데,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슛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입담’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허재 감독이 말을 받았다. “국가대표 시절에 최병식 전 국민은행 감독과 강동희 동부 감독이 한방을 썼는데, 걔들 방은 돼지우리 같았어요. 트레이닝복과 유니폼이 마구 뒤섞여 있었죠. 한번은 걔들 방에 갔는데 트레이닝 바지를 서로 바꿔 입어서 키가 큰 최병식 감독은 발목까지 다 보였고, 키가 작은 강동희 감독은 바지가 길어서 질질 끌고 다니더군요.”
김동광 부단장은 대표팀 절도 사건을 꺼냈다. “손버릇이 안 좋은 선수가 있었는데, 툭하면 선수들 돈이 없어졌어요. 나중에 범인을 잡았는데도 오리발을 내밀더군요. 하지만 물증을 딱 들이대니까 실토했죠.” 손버릇이 안 좋았던 이 선수는 농구계를 떠나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화제는 과거에서 요즘 선수들 얘기로 옮겨졌다. 셋은 요즘 선수들이 너무 착하고 순진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동광 부단장은 “우리 때는 외국 선수들과 경기할 때 눈도 찌르고 팔꿈치로 때리기도 했다. 특히 ㅅ선수와 ㅇ선수가 그걸 잘했다”며 웃었다.
허재 감독이 가장 할 말이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스리랑카·필리핀·쿠웨이트 경기 때 상대의 과격한 플레이에 한국 선수들이 잇따라 쓰러졌기 때문이다. 양동근과 김주성은 눈이 찔렸고, 주희정·양희종·이정석 등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허 감독은 “선수들이 코트에 쓰러질 때면 등줄기에 소름이 오싹 돋는다”고 표현했다. 그는 “선수들이 너무 순해서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리지는 못할망정 한 대 맞고 또 한 대를 더 맞으니 답답하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당하기만 하니까 어떨 때는 내가 들어가 혼내주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그보다 더 분통이 터진 것은 개최국 중국과 아시아 농구를 좌지우지하는 중동 국가들의 횡포다. 중국은 자신들의 경기 시간을 저녁 7시로 고정 배치했지만 우승 후보 중 하나인 한국팀의 경기 시간은 들쭉날쭉 배정했다. 아침 9시에 경기를 치른 뒤 다음날엔 밤 9시에 경기를 치르니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일 리 없었다. 허 감독은 “아침 9시 경기 때 김주성과 양동근 등 일부 선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해먹더라”고 전했다. 김 부단장도 “국내 프로리그에서 저녁 7시 경기에 익숙한 선수들이 아침 9시 경기를 해봤겠느냐”면서 “훈련 시간은 전날 저녁 8시에 배정해놓고 다음날 아침 9시에 경기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텃세는 홈 어드밴티지로 이해한다 해도 중동팀들의 편법은 도가 지나치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대회 규정은 귀화 선수 1명과 국적 회복 선수 1명만 뛸 수 있다. 그런데 요르단·레바논·카타르 등 중동팀들에는 미국이나 아프리카 출신이 여럿 있다. 요르단은 주전 4명을 포함해 6명이, 레바논은 3명이 이중국적 선수다. 카타르도 2005년 자국에서 개최한 대회 때 미국 선수를 대거 귀화시켜 3위에 입상한 바 있다. 허 감독은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네 나라가 아시아연맹에 중동팀들의 부정 선수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이게 어디 요르단·레바논과 경기를 하는 것이냐. 미국과 하는 것이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최 쪽 농간에 아침 9시 경기 배정받기도해답은 스포츠 외교력에서 찾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신 단장이 국제농구연맹(FIBA) 고위직을 맡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허 감독은 “단장님에 비하면 나나 동광이 형은 어디 가서 농구 했다고 얘기도 못한다”며 신 단장을 치켜세웠다. 실제로 신 단장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필리핀에서 인기가 높다. 필리핀에서는 현역 시절 한 경기에서 혼자 50점 이상을 올리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친 한국인 신동파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일이 잘 풀리면 ‘동파’라고 말할 정도다. 신 단장은 “각종 대회에 초대받아 1년에 네댓 차례 필리핀에 간다. 한국에서는 못하는 시구도 종종 한다”며 웃었다.
한국 농구가 낳은 세 스타는 “한국 농구가 더는 국제대회에서 푸대접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잔을 부딪혔다. 스타 선수와 스타 감독에 이어 스포츠 외교에서도 한국인 스타가 탄생하길 바라는 톈진의 밤이었다.
톈진(중국)=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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