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시즌이 끝나면 무슨 재미로 사나 걱정했는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구미 당기는 각종 대회 소식이 날아든다. 스페인에선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등이 참가하는 피스컵이 열리고 미국에선 바르셀로나와 LA갤럭시가 맞붙는가 하면 첼시와 AC밀란의 빅매치도 준비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을 포함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을 돌면서 순회 경기를 한다. 공 좀 찬다는 유럽 팀들의 지구촌 여행인 만큼 세계 축구팬들의 입은 이미 귀에 걸려 있다.
유럽의 축구선수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달콤한 휴가를 떠나 스트레스를 풀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간 램퍼드는 6억원짜리 ‘잭팟’을 터뜨렸고, 패리스 힐턴과 로스앤젤레스에서 염문을 뿌리던 호날두는 연일 언론에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는 프랑스의 한 휴양지에서 뇌진탕 증세로 겪기도 했다. 지금쯤 선수들은 바캉스 후유증을 떨치며 훈련장에서 몸을 풀고 있을 것이다. 유럽 축구팀들이 시즌 준비를 위해 7월 초부터 저마다 훈련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외국인 선수들이나 다른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여분의 휴식을 갖기도 한다. 월드컵 예선을 뛴 박지성 선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방한하는 7월22일이 돼서야 팀에 합류하게 된다.
필자는 지난해 첼시 코리아 소속으로 첼시 팀과 프리시즌 투어를 떠난 적이 있는데, 중국·말레이시아·마카오·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시 발라크 등 유로 2008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은 중간에 합류했으며,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여행하기는 조금 무리라고 판단한 드로그바는 프리시즌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드로그바는 이후 이 결정이 시즌 막판 그가 환상적인 활약을 펼치게 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프리시즌에서 선수 운용과 컨디션 관리는 중요하다.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첼시의 안첼로티 감독도 프리시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프리시즌은 기본체력 훈련부터 선수들과 교감을 하는 데 무척 중요하다”며 “무분별하게 많은 경기를 뛰면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건 시즌 기간 중 체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선수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해 미국 투어만 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2009~2010년 시즌을 앞두고 어떤 프리시즌 경기가 펼쳐질까? 첼시는 우선 미국으로 가 시애틀, 인테르밀란, AC밀란 등과 경기를 한다. 인테르밀란은 첼시와 겨룬 뒤 대륙을 가로질러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라치오와 이탈리아 슈퍼컵을 치른다. 베이징올림픽 1주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팀과 코파 이탈리아컵 우승팀이 맞붙는 ‘수페르코파 이탈리안’(이탈리아 슈퍼컵)이 중국에서 열리는 것. 호날두와 카카를 동시에 영입해 화제가 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는 7월2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피스컵에 참가한 뒤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의 프로팀들과 친선전을 연다. 한편 7월29·30일 양일간은 독일의 뮌헨에선 아우디컵이 개최된다. 올해는 바이에른 뮌헨, AC밀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보카 주니어스가 아우디컵의 우승을 두고 쟁탈전을 펼친다.
그렇다면 이렇게 숨가쁜 해외 원정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반응은 어떨까? 별로 달갑지 않다.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이 몇 년간 부진했을 때 고된 프리시즌 일정을 지적한 바 있다. 필자 역시 지난해 첼시의 아시아 투어에 동행하는 동안 선수들이 피곤에 절어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걸 지켜봤다. 한국에 왔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몇몇 선수들도 여행은 좋지만 몸을 혹사시켜 컨디션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며 불평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구단들은 팀 성적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투어에 왜 그토록 몰입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팬서비스를 가장한 마케팅 효과 때문이다.
팬서비스 차원이라면 남미·아프리카는 왜 안 가나첼시는 지난해를 제외하고 줄곧 미국에서 프리시즌을 진행했다. 바르셀로나, AC밀란 등도 거의 매년 미국을 찾고 있다. 이처럼 축구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이 프리시즌 지역으로 인기가 좋은 건 스포츠 마케팅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 때문이다. 돈 잘 쓰는 미국인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아 유명 구단이나 축구 스타를 활용한 행사를 벌여 수익을 올리려는 계산인 셈. 하지만 지난 2003년부터 미국에서 3년간 프리시즌을 지켜본 결과, 관중이 시들한 건 물론 좌석도 다 차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팬서비스 차원이라면 입에 거품 물고 축구 스타에 열광하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지역을 찾아야 할 텐데 말이다. 투어에 참여하면 일단 두둑한 초청 비용이 들어온다. 거기에 각종 스폰서가 따라붙고 티셔츠 판매량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 미래를 위한 잠재력인 투자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 얽히고설킨 수익 구조야 자본가들의 관심사일 뿐, 이러한 관행이 매 시즌 반복되는 건 분명 우려할 만한 점이다.
물론 축구가 지구촌 축제로 추앙받는 오늘날, 우상처럼 떠받드는 축구 스타의 포스터를 보며 골목에서 축구를 하는 변방 국가의 소년이 그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글·사진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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