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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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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스타는 패션스타

연예인보다 인기 높아 모델 유치 경쟁… 여성잡지 표지에도 자주 등장
등록 2009-07-02 09:17 수정 2020-05-02 19:25

얼마 전 인테르밀란의 주장인 차네티가 주최한 자선 행사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인테르밀란 소속 선수들의 부인들(혹은 애인들)이 아르헨티나의 불우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련한 패션쇼였다. 독특한 건 이들이 베르사체 같은 브랜드에서 협찬한 드레스를 입고 직접 런웨이를 걸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간혹 연예인 부부가 패션쇼에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패션과 절친한 이탈리아에선 유명세를 타는 축구스타들의 뮤즈조차 주목의 대상이 되곤 한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어린이 돕기 자선 패션쇼에 출연한 프로축구팀 인테르밀란의 선수와 부인들. 사진 서민지 제공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어린이 돕기 자선 패션쇼에 출연한 프로축구팀 인테르밀란의 선수와 부인들. 사진 서민지 제공

이탈리아의 TV 방송을 보더라도 축구선수와 패션모델들이 한자리에 모인 버라이어티쇼가 많다.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 축구스타들을 연예인처럼 대접하는 이탈리아의 문화적 풍토는 영국과 비교해도 정도가 더 심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콧대가 높은 게 괜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이탈리아에선 축구선수가 웬만한 영화배우나 모델보다 인기가 많기 때문에 패션계 또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축구스타들은 등의 남성잡지는 물론, 와 같은 여성잡지의 표지모델로도 자주 등장하면서 전문 패션모델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은 유럽의 축구스타들을 자기 브랜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내세운다. 잘 알려졌듯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데이비드 베컴을 모델로 기용했고, 히카르두 카카는 돌체앤가바나의 전속모델로 활동 중이다. 이들을 패션계의 아이콘으로 만든 패션디자이너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축구스타들은 얼굴도 잘생겼을 뿐 아니라 건강하고 부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축구스타들이 현대 패션의 새로운 스타일을 이끌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몸매 잘 드러나는 ‘아주리군단’ 유니폼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축구선수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패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를 지나치게 화려하고 과시적인 성향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이탈리아의 생활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잉글랜드 포츠머스 소속으로 지난해 인테르밀란으로 이적한 문타리는 밀라노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멋을 부리는 일상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자신을 가꾸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라커룸에 머무는 시간도 영국에 비해 월등히 길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을 살펴보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푸른색 유니폼을 입어 ‘아주리(azzuri)군단’으로 불린다. 운동선수의 몸매가 잘 드러나는 날렵한 이 유니폼은 퓨마가 특별 제작한 옷으로 가볍고 땀을 잘 흡수하는 재질로 만들어졌다. 구치 등에서 명성을 날린 유명 패션디자이너인 닐 바렛이 제작한 것이다. 영국 출신인 바렛이 이탈리아 선수들의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이탈리아 태생인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맡고 있는 건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타리의 말을 들어보면 축구선수라서 패션계에서 받는 혜택이 많아 보인다. 인테르밀란 선수들은 질 샌더에서 매년 일정량의 옷을 무료로 지원받고 나머지도 60% 할인 혜택을 누린다고 한다. 돌체앤가바나에서 지원받는 AC밀란 선수들도 비슷한 혜택을 가진다. 문타리는 지난 3월 열린 밀라노 패션쇼에서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등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VIP 초대장을 받았고 개중에서는 현금이나 현물을 주고라도 초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축구선수들이 그들의 옷을 입어주기만 해도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리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탈리아에선 선수뿐만 아니라 축구와 관련된 다른 직종 사람들도 패션에 신경써야 하나 보다. 인테르밀란의 팀 닥터는 경기 중에도 말끔한 정장에다 구두를 갖춰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중간에 선수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구두 신은 발로 뛰쳐나간다. 이탈리아 기자들도 AC밀란 경기를 취재할 때 선수들 유니폼 색깔과 옷차림을 맞추는 등 최대한 패션에 성의를 표한다.

팀 닥터도 말끔한 정장에 구두

패션 관계자들 또한 유난히 축구팬이 많다. 아르마니는 잉글랜드 축구대표팀과 첼시의 스폰서를 맡고 있고, 유명 패션 브랜드인 토즈의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은 피오렌티나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축구와 패션 모두 활력 넘치는 에너지가 필요한 분야인 듯싶다.

최근 AC밀란으로 임대왔던 베컴이 패션디자이너로 변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디다스의 추동 컬렉션에 디자이너 자격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인데, 나름대로 이탈리아의 기운을 받은 눈치다.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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