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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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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로 성큼 다가선 박지성

최근 두 경기 연속골 보이며 선전…
주변 여건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동양인 최초 선발출장 가능성 키워
등록 2009-05-12 11:34 수정 2020-05-03 04:25

‘준결승의 사나이’는 결승전에 출장할 수 있을까?
박지성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좋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FC바르셀로나(바르샤) 1·2차전에 풀타임 출장하며 최고 수준의 평점을 받았다. 2005년 5월5일(이하 한국시각) AC 밀란을 상대로 놀라운 중거리슛 골을 터뜨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이적하는 발판을 놓았다. 그리고 4년 하루 만인 2009년 5월6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아스널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이렇게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의 영웅이자 5월의 사나이다. 더구나 올해엔 아스널 경기에 앞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전에서 골을 터뜨려 맨유 진출 이후 최초로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스스로를 돕는 박지성을 5월의 여신은 그렇게 도왔다.

박지성. 사진  EPA 연합뉴스

박지성. 사진 EPA 연합뉴스

환희와 악몽 교차했던 5월의 성적

그러나 박지성은 지난해 잔인한 5월을 보냈다.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 선발출장은 물론 대기선수 명단에도 끼지 못하는 뜻밖의 시련을 겪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나중에 박지성 배제에 대해 “골을 넣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를 했다. 골결정력 부족은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박지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두 경기 연속골을 통해서 박지성의 골감각은 물이 올랐다. 월드컵 북한전 출장 뒤로 3월에 짧은 슬럼프를 겪었던 박지성은 미들즈브러 경기에서 환상적인 마무리로 골을 터뜨리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의 약점으로 꼽히던 골결정력 부족이 최소한 2009년 5월 현재로선 약점이 아닌 것이다. 한준희 한국방송 축구해설위원은 “골을 넣으라고 박지성을 투입한 것은 아니지만 골까지 넣어준다면 당연히 활용도가 올라간다”고 평가했다. 아스널 경기 뒤로 퍼거슨 감독도 “이번 결승전에서 박지성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장이란 한 해 동안 유예됐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이렇게 농후하다. 테베스 대신에 박지성, 퍼거슨 감독이 아스널과의 준결승 2차전에서 1차전과 달리 내보낸 유일한 선발선수 명단이다. 더구나 아스널 경기가 끝난 다음에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에 쏠린 관심을 돌리며 말했다. “박지성의 움직임과 플레처의 활동량을 눈여겨보면 누가 수훈 선수인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안팎의 기운도 박지성을 돕는다. 먼저 결승전 상대가 첼시가 아니라 바르샤인 것이 나쁘지 않다. 장지현 MBC ESPN 축구해설위원은 “바르샤는 숏패스가 많고 선수들이 많이 움직이는 게임을 하는 팀”이라며 “공격뿐 아니라 수비도 잘하는, 커버플레이에 능한 박지성 같은 선수가 더욱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무엇보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지지 않아야 하는’ 경기다. 올 시즌 안정적 운영이 필요한 경기에 박지성이 자주 출장했단 사실은 결승전 전망을 밝게 한다. 이렇게 바깥의 기운뿐 아니라 안쪽의 여건도 박지성을 돕는다. 맨유의 미드필더 플레처가 아스널 2차전 퇴장으로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한다. 장지현 위원은 “플레처는 중앙에서 커버플레이를 많이 하는 선수인데, 그가 나오지 못해서 박지성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플레처의 결장이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준희 위원은 “플레처 결장의 반사이익을 스콜스가 누릴 가능성이 크다”며 “플레처의 결장으로 박지성 선수가 출전선수 명단에 들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선발출장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지성 선수가 결승전 출전선수 명단에 들 가능성은 이미 농후하고, 선발출장이 관심인 상황에서 플레처의 결장이 출전 여부에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하나의 긍정적 기운은, 지난해 결승전에서 박지성 자리에 출전했던 하그리브스가 올 시즌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출전 여부는 감독이 아니면 모르단 얘기도 덧붙였다.

내년 끝나는 맨유와의 계약 연장도 관심

박지성에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뒤로도 중요한 결정이 남아 있다. 바로 2010년에 끝나는 맨유와 계약을 연장할지 여부다. 한준희 위원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벤치로 돌려도 불만을 토로할 선수도 아니며, 몸값이 특별히 비싼 선수도 아닌데, 박지성을 싫어할 감독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더구나 중계료 등 한국에서 들어오는 수입도 있으니 버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장지현 위원은 “맨유가 재계약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라며 “박지성 선수로선 큰 경기에서 무언가 보여줘야 할 동기부여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전세계 에이전트가 보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야 할 상황이 최근의 활약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부쩍 강해진 공격 의지에 함정 요인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위원은 “아무리 ‘산소탱크’라고 하지만 박지성 선수도 체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다가왔다”며 “지금까지 특기에 한계가 오면서 다른 재능을 보이려는 의지가 읽히지만, 최전방에 박히는 경향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골도 넣어야 하지만, 골을 위주로 하는 선수로 가기에는 위험하단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박지성의 도전은 서른에도 계속된다.



‘완벽에 가까운 지휘관’ 퍼거슨 감독
챔피언스리그 세 번째 우승하면 ‘유일무이한 명장’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 사진 EPA / LINDSEY PARNABY NO

알렉스 퍼거슨 감독. 사진 EPA / LINDSEY PARNABY NO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008~2009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진출을 확정짓고, FC바르셀로나(바르샤)와 첼시의 준결승 경기를 앞둔 가운데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다. “바르샤의 중앙수비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첼시가 결승에 올라올 것이다.” 이 발언을 과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결승전을 염두에 둔 심리전으로 볼 것인가? 한준희 한국방송 축구해설위원은 단호하게 “퍼거슨이 더 두려워할 상대는 아무래도 바르셀로나였다”며 “누구나 아는 바르셀로나의 약점을 자극해 실수를 부추기는 심리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귀재 퍼거슨에게 고도의 심리전은 어떤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오래된 습관이란 것이다. 그래서 한 위원은 퍼거슨 감독을 “지장이고 용장이지만 덕장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장지현 MBC ESPN 축구해설위원도 퍼거슨을 “꼬리가 10개도 아니고 20개 달린 여우”라고 불렀다. 23년간 맨유를 이끌어온 68살의 퍼거슨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능력도 커지는 놀라운 감독이다. 한준희 위원은 “유망주 발굴, 선수단 관리, 그라운드 용병술, 비즈니스 능력 등 감독에게 필요한 능력을 고루고루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명장들도 어떤 대목엔 강한 반면에 어떤 대목엔 약한데, 퍼거슨 감독은 빈틈없이 강하단 것이다. 장지현 위원도 “국내 리그와 유럽 리그를 함께 치르는 빅팀 감독에겐 전체 일정을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경험이 풍부한 퍼거슨은 다음 다음에 어떤 경기가 있는지 보면서 미리 프레임을 짜놓고 이 경기에 이 선수를 투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작은 차이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퍼거슨 감독은 올 시즌 축구협회(FA)컵 준결승에서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 1.5군을 내보내는 결단을 내렸다. 그의 결단은 비록 그날 승부차기에 져서 실패했지만, 그날 이후론 성공했다. FA컵 준결승 포기로 달콤한 휴식을 얻은 선수들은 다시 살아나 잇따라 호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미 명장인 퍼거슨이 유일무이한 거장이 되려면 챔피언스리그 트로피가 필요하다. 한준희 위원은 “만약 퍼거슨이 올 시즌 세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린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카펠로, 리버풀의 섕클리 같은 명장들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위대한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고 보았다. 지금 기운은 퍼거슨의 편이다. 바르샤의 포백 라인은 완전히 무너졌다. 마르케스, 푸욜, 알베스, 아비달 등 주전 수비수들이 부상과 경고 누적 등으로 결승전에 나서지 못한다. 반면 맨유의 전력 손실은 플레처 한 명이다. 4 대 1, 그래서 맨유의 공격진이 바르샤의 수비진을 상대하기는 수월하지만 바르샤의 공격진이 아무리 막강해도 맨유의 견고한 수비진을 뚫기엔 수월하지 못하다. 이렇게 세 번째 트로피를 들어올리면, 퍼거슨의 은퇴도 놀랄 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누가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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