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글맨〉에서 톰 포드의 안경을 쓴 콜린 퍼스. 한겨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직장인도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을 구입하는 호사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 나는 지금 남자 직장인을 말하는 거다. 여자 직장인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한 달 월급에서 기십만원씩을 모아뒀다가 백을 사면 된다. 1년 동안 열심히 번 돈을 조금씩 모아뒀다가 700여만원짜리 샤넬백을 사는 것에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일단 샤넬백은 아름답다. 티셔츠와 청바지에 들어도 어울리는 꽤 전천후 가방이다. 한 달에 샤넬백을 하나씩 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자신을 위해 부릴 법한 호사로서 샤넬백은 나쁘지 않은 목표다. 게다가 몇몇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 가면 거의 새것이나 마찬가지인 샤넬백이 20만~300여만원이나 저렴한 가격에….(쉿!)
그렇다면 남자들은? 사실 남자를 위한 백도 있다. 발렌시아가나 지방시 같은 브랜드는 보통 슈트 차림에도 정말이지 멋지게 어울리는 백을 매년 만든다. 하지만 당신은 아마 그걸 사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남자에게 백이란 조금 부끄러운 물건이니까. 사실 서구 남자들도 가죽으로 만든 브랜드의 토트백 같은 걸 매는 걸 여전히 조금 여성스러운 일로 여긴다. 오죽하면 그런 백들을 ‘맨백’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부르며 민망함을 상쇄하겠는가 말이다.
백은 부끄럽고 옷과 신발은 사봐야 매치할 게 없고, 그래도 뭔가 명품이라는 걸 한번 사서 스타일을 바꿔보고 싶다고? 안경을 사면 된다. 맞다. 한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매일 쓰고 다니는 그 안경 말이다. 안경은 생존을 위한 생활용품일 뿐인데 굳이 명품을 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디자이너 톰 포드가 감독한 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거기서 주인공인 콜린 퍼스가 쓴 톰 포드의 안경은 압도적으로 우아하게 남자의 얼굴을 매만져준다.
벗겨진 머리마저 귀티가 나는 디자이너 톰 포드는 1990년대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사실 이 직업은 요즘 과도하게 많아진 탓에 뭐하는 직업인지 점점 아리송해지는데, 대충 총괄디자이너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로 활동했다. 그는 옷과 백과 구두를 끝내주게 팔아치웠지만 내 보기에 가장 많이 팔린 아이템은 안경테였던 것 같다. 40만~50만원으로 톰 포드라는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호사품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안 믿긴다면 일단 아무 안경 매장이나 들어가 톰 포드(혹은 모스콧이나 올리버 피플스도 좋다!)가 생산한 묵직한 뿔테나 날렵한 은테를 써보시라. 옷차림은 아무래도 좋다. 안경 하나만 바꿔도 뭔가 댄디한 남자로 변해버린 착각이 느껴지는 걸 떠나 의 콜린 퍼스가 된 것 같은 망상에 빠지게 될 텐데, 그 정도 망상과 착각은 누구나 누리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안경테는 샤넬백보다 저렴한데도 매일 쓸 수 있다. 얼마나 실용적인가!
김도훈 공동편집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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