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할 듯한 옷을 입었을 때(위)와 그렇지 않을 때의 〈범죄와의 전쟁〉 배우들. 엔드크레딧 제공
엄마는 큰 옷이 좋다고 하셨다. 나는 어린 시절에 꽤나 까탈스레 직접 옷을 고르는 애였다. 몸에 딱 맞는 옷이 좋았다. 왜냐면 같은 반의 큰 아이들은 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절대 나의 ‘핏’에 대한 취향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은 작지만 몸이 훨씬 더 클 테니까 큰 옷을 사야 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싫었지만 대충 마음속으로 동의를 했다. 그렇다. 나는 더 크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내 사진을 보면 제 사이즈보다 두 배는 큰 옷에 묻혀 있다. 엘프의 옷을 입은 호빗 꼴이다.
나는 전혀 크지 않았다. 조금 크긴 컸다만 한국 남자 평균 신장의 절대적 하위군이다. 그러나 자식에게 큰 옷을 입히려는 엄마의 마음은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고 부산에 내려가면 엄마는 여전히 ‘어깨가 왜 그렇게 딱 맞느냐. 갑갑하지 않느냐. 여름인데 바람도 안 통하고 땀띠 나겠네…’라고 연속 잔소리를 쏜다. 이유는 분명하다. 좀더 남자답게 덩치가 커 보였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렇다. 나는 작은 남자다. 하지만 큰 옷을 입는다고 작은 남자가 큰 남자가 되진 않는다. 큰 옷을 입은 작은 남자가 될 뿐이다.
서울의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는 한국 엄마들의 ‘내 자식은 크고 당당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오랜 마법의 주문이 한국 남자들에게 참으로 잘 먹혀들었구나 싶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 남자들은 절망적일 정도의 ‘옷 사이즈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게 틀림없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자기 사이즈보다 적어도 한두 사이즈가 큰 옷을 고르고 입는다. 46을 입어야 할 남자는 48을 입고, M을 입어야 할 남자는 L을 입는다. ‘약간 헐렁하게’. 이게 마치 옷을 고르고 입는 모토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스키니진을 입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옷은 자기 사이즈에 딱 맞을 때 가장 멋지다. 옷이 멋지다는 소리가 아니다. 당신이 멋져 보인다는 소리다. 옷이 약간 헐렁해야 편안한 거 아니냐고? 그게 당신을 망치고 있다. 편한 옷이 좋다면 사시사철 등산복을 입고 다니면 된다. 옷은 실용을 위한 아이템만은 아니다. 다이소에서 옷을 팔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옷은 당신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명함과도 같다.
게다가 남자의 몸에는 여자에게는 없는 ‘각’이라는 게 있다. 배가 엄청 나온 과체중의 중년 남자에게도 각은 있다. 남자의 옷은 그 각을 제대로 살려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사실 큰 옷을 걸친 중년 직장인들은 나에게 ‘아줌마’와 비슷한 종족으로 보인다. 비록 당신이 밤에는 비아그라가 없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중년 무성애자일지라도, 대낮에는 그걸 숨기고 진짜 남자처럼 보일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가장 쉽고 근사하게 당신에게 덧씌워주는 것이 바로 몸에 잘 맞는, 남자의 각이 드러나는 옷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이즈면 되냐고? 추석에 고향을 내려갔을 때 당신의 어머니가 “아이고, 너는 왜 그렇게 몸이 터질 것 같은 옷을 입었니. 남자가 풍채가 떡 벌어진 것처럼 보여야 남자답지 이게 뭐니…(이하 15분 정도의 잔소리 생략)”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성공이다. 그건 당신이 옷을 정확한 제 사이즈로 입었다는 소리다.
김도훈 공동편집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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