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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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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은 와이프만 보는 거라고?

‘두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위’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트렁크 대신
브리프를… 묘한 힘이 자신감을 솟게 하리니
등록 2014-10-25 16:39 수정 2020-05-03 04:27

이 칼럼은 중년의 직장인 남자들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멋져 보이게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겉만 멋져서는 곤란하다. 남자는 겉도 멋지고 속도 멋져야 한다. 옷만 번들번들하게 잘 입는다고 멋진 남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옷은 잘 입는데 속은 뼛속 깊이 ‘K저씨’(요즘 신조어다. K팝, K푸드에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 중인 이런 신조어도 미리 알아두면 좋다!)인 남자는 오히려 더 매력이 없다.

‘K저씨’들이여, 트렁크는 실내복 정도로 이용하고 브리프를 입기를. 하반신만은 데이비드 베컴이 된 듯할 것이다. SPA 제공

‘K저씨’들이여, 트렁크는 실내복 정도로 이용하고 브리프를 입기를. 하반신만은 데이비드 베컴이 된 듯할 것이다. SPA 제공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대체 한국 남자들의 속을 어찌하면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이 없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수십 년간 만들고 빚어낸 남자들의 마음을 내가 무슨 수로 더 근사하게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건 칼럼이 아니라 유리 겔라의 초능력에 가깝다. 사기라는 소리다.

대신 다른 종류의 ‘속’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속옷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렇게 불평하고 있을 것이다. ‘속옷? 내 속옷은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 혹은 와이프나 파트너에게만 보여주는 건데 굳이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있어?’라고 말이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함께 일한, 일하는, 일할 남자들의 속옷이 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체로 한국 남자들은 마흔이 넘어가는 순간 허리가 굵어지고, 배바지를 입지 않는 이상 벨트를 매도 허리춤은 내려간다. 당신들이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집어올리는 순간, 뒤에 있던 직원들은 당신들의 속옷을 본다. 100% 본다. 무슨 브랜드인지도 알고 무슨 색깔인지도 알고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도 안다. 중년 남자의 누렇게 바래고 늘어진 속옷을 훔쳐보는 게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묘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야 그런 스펙터클을 견디기가 용이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취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속옷을 입을 것인가. 나는 아메리칸어패럴이라는 미국 회사의 속옷을 입는다. 색상이 수십 가지나 되고 가격도 2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선호하는 디자인은 브리프다. 브리프는 다들 익히 아는 ‘삼각팬티’를 의미한다. 물론 중년 직장인들이 브리프를 입기란 쉽지 않다. 대신 대부분의 남자들은 ‘트렁크’를 입는다. 전립선 및 그 ‘당신이 두뇌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위’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트렁크를 집에서 반바지 대용으로 입는다는 걸 잘 안다. 트렁크는 실내복 정도로 이용하고 브리프, 혹은 브리프와 트렁크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드로어즈를 입어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멋지고 섹시하니까.

남자는 겉만큼이나 속이 중요하다. 속을 섹시하게 만드는 건 겉을 섹시하게 만드는 것만큼 고도의 기술과 돈이 들지 않을뿐더러, 의외로 자신감을 솟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속옷에 큰돈을 들이기가 싫다면 SPA 브랜드 매장으로 달려가서 구입하시라. 적어도 하반신만은 데이비드 베컴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걸 입고 몸을 숙여 뭔가를 집어올린다면, 당신 뒤에 서서 중년 남자의 등살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팬티 라인을 봐야 하는 직원들도 분명히 용서할 것이다. 뭐, 적어도 예전만큼 불쾌해하지는 않을 거다. 보장한다.

김도훈 공동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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